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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희 Sep 01. 2021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특수교사 이야기

이진식 작가님<<더불어 사는 사회>>


이진식 작가님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특수교사 이야기>>를 읽으며



<<더불어 사는 사회>> 이진식 작가님의 특수교사 이야기를 읽으며 잔잔한 감동이 몰려왔다.

우리가 별로 관심 가지지 않았던 특수아동들을 가르치며 느끼고 부딪힌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풀어놓으셨다.

사람들에게 촉망받던 연구원의 자리를 박차고 마음속 열정을 쫓아 교사의 길을 택한 작가님의 선택....

쉽지 않은 길이 었을 텐데  묵묵히 소외된  특수아동들을 마음으로 끌어안으며 특수교사의 길을 가고 계신 작가님의 심성이 전해져 왔다. 특수아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부당한 대우에 굴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대변하시는 작가님의 모습을 볼 때 같은 교사로서 나의 상태를 돌아보게 된다.



오래전 숙대음악치료대학원에서 음악치료 전문가 과정을 공부한 적이 있다.

그때는  음악치료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참 꽃을 피우고 음악을 전공하는 많은 학생들이 한 번쯤 음악치료를 꿈꾸어 보는 시기였다.  대학원에 들어가 내 전공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기울이던 나는 음악치료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밤잠을 설칠 정도로 가슴이 설레었다. 남들보다 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힘들게 첼로라는 악기를 경쟁 속에서 공부해야 했던 나는 처음의 각오 와는 달리 많이 주눅 들고  힘들었었다

특히 지도교수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부담감은 악기를 그만둘까 하는 고민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학부 때는 열심히만 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대학원에 와서는 정체기에 머물고 실력은 월등이 나아지지 않아 이게 내 길이 맞나 싶은 생각에 전공에 집중하지 못했다. 매번 이번 학기만 하고 그만두어야지 하고 버티곤 했다. 그러다가 음악치료를 알게 되고 대학원을 두 군데나 다니는 열성 학구파가 되었다. 부산에서 일주일에 한 번은 대구 두 번은 서울을 오가며 공부를 했다. 음악치료를 공부하는 2년의 기간은 정말 흥분과 설렘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예술대학원의 첼로도 덩달아 열심히 하게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부산역으로 가서 ktx첫차를 타고 숙대에 가면 항상 일등으로 도착해서 교수님들이 우스갯소리로 제일 멀리서 오는 사람이 서울에 사는 사람보다 더 일찍 온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때 같이 공부하던 선생님들은  다 전국구였다. 부산 목포 강릉 광주 대전 순천... 사실 교통편으로 치면 나는 비교적 수월하게 다닌 편이었다. 전라도나 강원도에서 오는 선생님들 중엔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정말  힘들게 오는 분들이 많았다. 어쨌든 우리는 음악치료라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 전국에서 올라왔다. 대부분 음악을 전공했고 더러는 물리치료사나 타 전공을 졸업한 분들도 있었다



연령대도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해서 공부하면서 에피소드도 많았다.  마지막 학기에 인턴을 나가면서 음악치료에 대한 호불호가 많이 갈렸다. 모두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음악과 치료, 예술과 과학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접목시켜야 할지 임상현장에선 많이 어리둥절했다. 특히 정신과나 특수아동센터에 인턴으로 나간 선생님들은 많이 힘들어했다. 예술이라는 조금은 고상하고 우아한 영역에서 정신과나 특수아동센터에서  만나는 클라이언트와 음악치료는 현실 그 자체였다. 나는 마포구 치매노인센터에서 인턴을 했는데 그래도 이곳은 경증 치매이고 인생의 연륜이 있는 분들 이어서  비교적  잘 호응하고 지지해주셔서 수월하게 인턴기간을 보냈다. 그러나 공부가 끝나고 부산에 와서 특수아동을  대상으로 음악치료를 해야 하는 기관에 나가게 되었을 때는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외모와 생김부터 조금은 다른 아이들과 자폐아동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덩치 큰 아이들 속에서 난 내가 공부한 음악치료와 임상현장에서 만나는 현실의 차이점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몰랐다. 특히 음악치료에 앞서 특수아동에 대한 이해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했던 나는 매일매일이 너무 힘들고 에너지 방전이었다.

기관에 출근할 때마다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해 가지만 그 프로그램을 해 보기도 전에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시간을 다 써 버렸다. 매번 아이들에게 몇 대씩 머리를 맞을 때도 있었고  돌발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3인 1조씩 근무하는 인턴 때와는 달리 혼자서 특수아동 서너 명을 데리고 프로그램을 진행하여야 하는 임상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한 아이가 문제를 일으켜 좀 진정시키고 나면 또 다른 아이가 돌발상황을 일으키고  또 때로는 아이들끼리 서로 때리고 울고 하는 교실에서  제대로 된 음악치료는커녕 아이들이 그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분주히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정말 흰머리가 나고 내 얼굴엔 웃음이 사라지고 수심이 가득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내 그릇은  음악치료를 담기엔 부족한 심성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행복해지기 위해 음악치료를 시작했는데 매일 고민과 수심이 늘어갔다.

내가 음악치료사인지 레크리에이션 교사인지 의문을 가질 때도 많았고 특수아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내게 그 시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드디어  한 학기가 끝나   다시 일반 학생들에게 돌아왔을 때  그들을 대하는 내 마음과 생각은 많이 달라져 었다.  그전보다 훨씬 학생들을 잘 이해하게 되었고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음악을 가르치며 고민하고 힘들었던 시간은 특수아동들과의 음악치료 덕분에 너무 수월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정체기에 있던 내 첼로 실기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제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두 군데의 대학원을 다니며 특별히 음악치료를 공부하고 기관에서 특수아동들을  만나면서  내가 가고 있던 음악의 길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길인지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특수아동을 가르치는 교사들의 수고와 헌신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특수아동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학생들의 문제와 어려움을 그냥 잠깐의 관심으로 지지하는 것이 아닌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끝까지 학생들을 원하는 길로  이끌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님의 모습에 많은  감동이 왔다. 나는 절대로 할 수없었던 그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작가님의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돌아봐져서 부끄럽다. 이 사회의 조금은 그늘지고 외로운 특수아동을 향한 작가님의 헌신과 사랑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들, 사춘기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님들께 이 책을 곡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나 기관에서 특수아동들을 담당하는 분들도 곡 한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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