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쉬로가는 길

알프스의 노래

by 박민희


몽트뢰를 떠나 테쉬로 가는 버스는 스위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스위스의 산길을 달렸다.

처음 평지를 달려갈 때만 해도 스위스의 목가적인 풍경과 예쁜 마을들을 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는데 차는 점점 산악마을로 올라가며 아찔한 경치를 보여주었다. 좁은 산길을 그 긴 버스가 요리조리 잘도 올라갔지만 눈을 돌려 아래를 보면 아찔한 낭떠러지 길이었다


외줄과도 같은 외다리 아래로 아득한 절벽이 펼쳐지고 도저히 이 큰 차가 지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맞은편 차가 올 때는 서로 비켜섰다가 가기를 반복하며 투어버스는 산간마을 테쉬로 헉헉 거리며 올라갔다. 차에 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어서 다행이지 만약 우리가 가는 산길을 다 같이 보았다면 비명과 함성소리가 동시에 울려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몽트뢰에서 테쉬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그 광경을 다 보고 온 나는 아마 이런 길인 줄 알았다면 여행을 좀 고려해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폴란드 기사님이 워낙 운전을 잘해 다른 분들은 잘도 자는데 깨어있던 나는 반대로 내려가는 길은 어찌 갈지 미리 걱정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를 한 시간 가량 반복할 때쯤 드디어 버스는 테쉬에 도착했다. 알프스의 중턱에 올라온 것이다.


겨울이어도 날씨가 너무 좋아 다행히 길이 얼지 않았고 해가 지자마자 도착해서 여간 다행히 아니었다. 와서 보니 이곳에 기차역이 있어 내려갈 때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여간 겁이 많은 나와는 달리 다른 분들은 알프스의 산허리 마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주위를 둘러보고 계셨다. 호텔에 도착해 방을 배정받고 객실로 올라가는데 좁은 ev는 두 사람이 캐리어 하나씩 들고 겨우 탈 수 있었다.


낡고 작은 산장 같은 객실에 들어서니 정말 산악마을에 딱 어울리는 소박한(?) 객실이었다. 아마 산악마을 현지인이 사는 모습에 거의 가깝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이곳에서 이틀을 잔다고 하니 한편으론 한숨이 절로 나왔고 또 한편에선 내일 다시 아까 왔던 길을 당장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좀 안심이 되었다. 방에 짐을 가져다 놓고 식당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알프스 험한 산간마을에서 공수할 수 있는 소박하고 간단한 음식들로 저녁식사를 했다.


커피 한잔도 이곳에선 귀한 재료 이리라.. 주인 할아버지가 딱 서서 소시지 반개씩을 배당해 주셨는데 그게 유일한 동물성 음식이었고 약간의 야채와 빵 그리고 밥과 감자요리가 있었다. 그래도 한국인이 온다고 푸슬푸 슬한 밥이지만 스파게티 소스와 함께 먹도록 배려해 놓았다. 이날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가지고 온 컵라면을 가져와 함께 먹었다. 식당에서 아예 컵라면을 먹도록 뜨거운 물을 끓여 주었다. 언니도 내가 한국에서 가져간 멸치국수를 아주 맛나게 먹었다.


식사 도중 주인 할아버지가 스위스 목동 복장과 모자를 쓰고 전통악기를 들고 오셔서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시며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 함께 여행하던 프린세스 가족의 사장님께서 10프랑을 할아버지에게 주셨다. 우리도 얼마를 드려야 했는데 사실 프랑을 딱 20프랑만 가지고 가서 물만 사 먹으려고 했던 터라 드릴 프랑이 없어 조금 죄송했다


. 아무튼 조금 별나기도 하시고 잔소리도 많으신 할아버지였지만 우리가 떠나 올 때 버스 앞에까지 와서 인사하고 가시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참 인상이 깊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호텔이었는데 저 연세가 되도록 저토록 유쾌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비결 같았다.

테쉬로 오던 험악한 산악 길을 생각하면 이런 환경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보통일은 아닐 것 같다. 산 중턱이라 밤이 되니 정말 오싹오싹 추웠다


식당 안에 오래된 피아노가 있어 한번 쳐보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쳐 객실로 돌아왔다. 객실 창을 여니 바로 오픈 테라스가 있어 잠시 나갔다가 너무 추워 방안으로 얼른 들어왔다. 언니는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더니 일찍 잠이 들었다. 인터넷도 되지 않고 외부와의 연락도 끊긴 알프스 산간마을에서 누워 있으니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이다. 객실에 포터 주전자도 없어 차도 한잔 못 마시고 잠도 오지 않는 방에서 말똥말똥 잠은 더 달아나고 있었다.


혼자 조용히 알프스를 보며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했는데 알프스 산간 마을에서 어둠 속에 고립되어 누워 있으니 갑자기 한국이 너무 그리워졌다. 내일 드디어 마태 호른을 보러 올라가는데 잠은 오지 않고 온갖 생각들만 머릿속을 왔다 갔다 하는 사이 알프스의 새벽이 찾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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