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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가족

알프스의 노래

by 박민희



리기산을 내려와 호텔로 온 우리는 방을 배정받고 곧바로 호텔 옆 이태리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배정받은 호텔은 지금까지 여행하며 들어온 호텔 중에 가장 좋았다. 시설이 깨끗할 뿐 아니라 방도 넓고 화장실 샤워부스도 너무나 크고 깨끗해서 태쉬에서의 고달픈 이틀간의 잠자리가 한꺼번에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침대도 크고 폭신하고 깨끗한 침구와 커피포트 커피와 각종 차가 준비되어 있어 즐거운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는 잠시 호텔 방을 감상했다. 언니와 캐리어를 잠시 정리한 후 우리는 로비로 내려가 식당으로 향했다.


시형이네는 이미 도착해 우리 좌석을 준비해 놓고 있었고 우리 옆 테이블엔 프린세스 가족이 앉아 있었다. 여행하며 이 가족과 한번 같이 식사를 하며 담소를 나누고 싶었는데 오늘 드디어 가까이 같이 앉게 되었다. 이 가족은 딸 셋과 부부가 함께 오셨는데 여행 내내 혼자 오신 분이나 다른 분들을 잘 챙겨 주셔서 참으로 고마웠다. 따님 세분이 다 너무 예쁘고 착해서 내가 프린세스 가족이라고 이름을 지어 드렸다. 부부 두 분도 얼마나 보기가 좋으신지 여행 내내 다른 분들의 부러움을 사셨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 가족을 부러운 눈으로 많이 쳐다보았다. 모든 것을 공급하는 아빠와 함께 여행하는 따님들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우리도 딸부자 집인데 어렸을 때 한 번도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으니 사실은 그럴 시간이 없었기도 하다. 또 그 시절은 먹고살기도 빠듯해서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기도 했다. 6학년이 되기까지 난 한 번도 태어난 김천을 나가 본 적이 없었으니..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처음으로 우리를 데리고 추풍령에 데리고 가신 적이 있었다. 60명이 넘는 반 아이들을 데리고 총각 선생님이 기차여행을 시켜주신 것이다. 그때 비둘기호를 타고 추풍령까지 30분 조금 넘는 거리를 여행했는데 그전 날부터 잠을 잘 수가 없을 만큼 많이 기다렸다. 처음으로 친구들과 타본 기차 안에서 재잘재잘 거리며 추풍령 고개를 넘어갔던 기억이 새롭다. 추풍령에 내려 넓은 풀밭에서 가져온 김밥 도시락과 계란을 나눠먹고 함께 둥글게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노래 부르고 놀았던 그 여행...


난 지금도 6학년 때 그 담임 선생님이 참 고맙다. 기차 한번 못 타본 우리 촌 애들을 60명이나 데리고 추풍령까지 데리고 가 주신 선생님.. 지금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를 태워 주실 생각을 하셨는지 정말 보통 정성이 아니셨다. 왕복 차비도 선생님이 다 부담하셔서 우리를 데리고 갔다 오셨으니 평소에 그렇게 말 안 듣고 말썽장 이인 3 수생 남자애들도 그날은 아무도 사고 치지 않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 무사히 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우리 담임 선생님은 지금 프린세스 가족의 아빠처럼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었다. 오늘 이 가족을 보니 그때의 우리 선생님이 생각난다.



저녁으로 나온 샐러드와 스파게티를 기다리며 우린 포도주라도 시키려고 메뉴판을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프린세스 가족의 사모님께서 뭐 시키지 말라고 하시며 우리 것도 이미 같이 시키셨다고 했다. 이태리 식당이라 원래 피자가 전문인 집이어서 화덕피자와 음료를 우리 것도 같이 시키셨다며 낮에 리기산에서 비싼 초콜릿을 주시지 않았냐고 웃으신다. 세상에나.. 6프랑짜리 초콜릿 한 봉지로 하나씩 나누어 먹었을 뿐인데 비싼 피자와 포도주까지 사주시다니...



건너편 테이블에 앉으신 분들도 우리가 먹는 피자를 보고 덩달아 시키신다. 그날 우린 덕분에 이태리 정통 피자와 포도주를 맛나게 먹으면서 서로 어디서 왔는지 서로의 얘기들을 했다. 이분들은 대구분들인데 서울에 이사 가신지 몇 년이 되었다고 하셨다. 아직도 서울 생활이 잘 적응이 안 된다고 하시며 대구에서 학교를 나왔다고 하니 반가워하신다. 공주님들의 아버지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시고 대학생인 줄로만 알았던 공주님들은 나이들이 제법 많아 깜짝 놀랐다. 온 가족이 동안이어서 비결이 뭔지 궁금했다. 아마 이 분들을 볼 때 항상 웃고 행복한 에너지를 발산하시는 게 젊게 사시는 비결인 것 같았다



여행기간 내내 이 가족 덕분에 많이 웃고 마음이 따뜻할 때가 많았다. 함께 늘 같이 밥을 먹은 시형이네도 참 따뜻한 가족이었다. 조용하고 과묵하던 시형이, 매 식사 때마다 우리를 챙기며 포도주와 맥주도 많이 사 주셨던 시형이 어머니... 다음에 다시 스위스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이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 순천에서 온 대학생 오누이와 홀로 여행 오신 멋진 삼촌 울산에서 온 엄마와 딸, 또 그때 함께 여행한 우리 팀의 모든 분들과 가이드님께도 이 글을 쓰며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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