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투트가르트
스위스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로 넘어왔다. 세 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버스 안에서 곤한 몸을 추스르며 스위스의 마지막 마을들을 통과할 때도 계속 창밖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독일로 가까이 갈수록 집들의 모양과 느낌이 조금씩 달라져 갔다. 독일은 잘 정돈되어 있고 어두운 목조 건물이 큼직큼직 마을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 가지 비슷한 것은 어느 마을이나 마을 중앙엔 예배당이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하나의 그림처럼 어느 마을을 지나가도 비슷한 형태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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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마을마다 희미한 불빛이 한 집 두 집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처럼 밝은 불빛이 아닌 희미한 가로등과 불빛이 묘하게 목조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독일로 넘어오면서부터 날씨가 심상치가 않았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해서 내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걱정스러운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대한항공 홈페이지엔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비바람으로 인해 결항이 많다고 올라와 있어 여행 막바지에 유럽의 매서운 겨울 날씨를 톡톡히 느끼게 해 주었다. 가이드는 이게 유럽의 진짜 겨울 날씨라며 여러분들이 그동안 너무 좋은 날씨에서 여행해서 실감이 안 나실 것이라고 했다.
어둠이 완전히 내린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한 우리는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배정받은 방으로 올라갔다. 독일의 호텔은 크고 널찍할 뿐만 아니라 EV도 아주 커서 캐리어를 들고 몇 명이 타도 될 만큼 넉넉했다. 호텔 방 안도 아주 넓고 밝아 스위스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어제 스위스에서 마지막 호텔방이 너무 좋아 그게 최고인 줄 알았는데 이곳은 더 넓고 좋았다. 방에서 짐을 풀고 모바일로 대한항공 체크인을 하고 호텔 레스토랑으로 식사를 하러 갔다. 시형이네가 벌써 내려와 자리를 맡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팀들도 이미 다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이라 내가 맥주를 시켰다. 독일 맥주가 유명하다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고 또 그동안 시형이 어머니가 너무 많이 우리에게 와인과 맥주를 대접해서 오늘은 꼭 내가 사 드리고 싶었다. 뒤 테이블에 앉은 프린세스 가족에게도 맥주를 사 드리려고 했는데 웬걸 카드는 받지 않고 현금만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했다. 가지고 있는 유로가 얼마 없어 우리 것만 시켰는데 굉장히 미안했다. 어젯밤 피자랑 와인도 얻어 마셨는데 대접도 못하고 우리만 시켜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언니도 가진 유로가 별로 없어 빌리지도 못해 식사 내내 신경이 쓰였다. 물론 프린세스 가족은 전혀 개의치 않으셨지만 마지막 저녁 식사인데 참 아쉬웠다.
저녁은 간단한 뷔페식이었는데 이상하게 음식이 다 짜고 맛이 없었다. 종류는 스위스보다 많은데 입에 맞는 음식이 하나도 없어 가져온 음식은 거의 먹지 않고 맥주만 마셨다. 여행 내내 맥주나 와인을 마셔 정말 술꾼이 다 된 것 같다. 레스토랑도 크고 테이블도 크고 독일 사람들도 키가 커서 거인의 왕국에 온 느낌이다. 다만 독일 사람들은 스위스 사람보다 더 무뚝뚝하고 표정이 딱딱하며 약간의 우월감이 느껴졌다. 시형이네랑 맥주를 마시며 식사를 하다 보니 어느새 다른 팀들은 다 자리를 비우고 우리만 남아 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 아쉬운 마음이 가득해서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이미 직원들이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어서 우린 조금 서운한 마음을 뒤로한 채 방으로 올라왔다.
몇 팀은 호텔방에서 한잔하면서 마지막 밤을 보낼 거라며 맥주와 먹을 것들을 사러 갔다. 시형이네와 인사하고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마지막 짐을 정리하고 대한항공 홈페이지를 계속 들여다보며 내일 무사히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체크해 보았다. 어느새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국내 뉴스는 그 사이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 시끄러웠고 밖에는 비바람이 불고 있어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커피를 한 잔 끓여 마시며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동안 마스크 없는 세상 중국인과 코로나 없는 청정지역에서 너무나 잘 지냈는데 내일 한국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다시 스위스로 넘어가 체르마트로 가서 알프스를 한 번 더 가보고 싶다. 눈 덮인 알프스의 봉우리들과 마태 호른을 한 번 더 보고 싶다. 여러 가지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언니는 벌써 잠들어 있다. 원고라도 좀 쓰고 싶은데 잠든 언니를 깨울까 싶어 불을 끄고 어둠 속에 가만히 누워 있다. 테쉬에서의 밤처럼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고 말똥말똥 생각만 왔다 갔다 하며 슈투트가르트에서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깊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