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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희 Jul 20. 2021

무너진 섭생

 갯새암 < 내 어머니의 샘>>


무너진 섭생          

엄마의 장례식이 끝나고 우리는 다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다. 시골 엄마 집은 그대로 비워 놓은 채 엄마의 유품만 정리하고 우린 아무 기약도 없이 흩어졌다. 다들 슬픔이 너무 커서 어떠한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섣불리 서로의 슬픔을 만질 수 없었다. 조금만 잘못 터치하면 슬픔이 쏟아질 것 같아 서로 조심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우리 자매들인지라 어느 누구라 할 것 없이 마음속에 후회와 안타까운 마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부산으로 온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한 날들이었지만 내 속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제대해서 잠깐 같이 있던 재림이도 연주활동이 많아지면서 대구로 가고 난 다시 혼자 남게 되었다. 난 마음속의 후회와 슬픔 때문에 제대로 먹고 자지도 않고 끼니도 대충 때웠다. 체질에 맞는 섭생은 고사하고 가끔씩 반항하듯 입에서 당기는 대로 폭식하고 어떨 땐 며칠씩 안 먹기도 했다. 아침마다 챙겨 먹던 과일과 야채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굶다가 수업이 끝나면 김밥 한 줄이나 라면 빵 같은 것으로 대충 허기만 면했다.   

       


무엇보다 마음의 우울감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엄마의 마지막 가시는 길에 곁에 있지 못했던 죄책감이 나를 내리 눌렀다. 음식을 함부로 먹으니 그동안 섭생으로 잘 관리해 오던 건강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가끔씩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으로 폭식을 하니 다시 살이 찌고 뒷골이 당겼다.


 또한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한 죽음의 공포감이 늘 엄습해 와서 조금만 기침을 해도 감기약을 먹었다. 아마 평생 먹어야 할 약을 이 몇 달 동안 다 먹은 것 같다. 엄마에게 제대로 된 섭생을 해 드리지 못한 죄책감에 난 반항하듯 음식을 더 함부로 먹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엄마의 부재 안에서 난 갈 바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었다


. 여름 내내 비는 얼마나 내리던지…. 하늘이 뚫린 듯 비가 내렸다. 폭우로 인한 피해가 전국적으로 속출하고 8월에 김천에서 모이기로 한 우리 자매들의 모임에도 난 갈 수 없었다. 폭우로 부산역이 범람하고 지하철도 정상적으로 운행하지 못했다. 경부선 열차도 곳곳에서 철로에 문제가 생겨 움직이는 게 너무 위험했다.


동생들을 만나 수다라도 떨고 얼굴이라도 보았으면 마음에 위로가 되었을 텐데…. 그 마저도 무산된 나는 갑자기 이 세상에 혼자 된 것 같은 철저한 고립감속에 빠져 버렸다.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고 마음의 공허함을 덜어 내기가 힘들었다. 산책도 나가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점점 매사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으로 변해 가는 나를 보며 내 섭생은 너무나 어이없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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