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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Nov 25. 2020

Moo'tice

#10-1, 우리 그만 만나요 - 담백한 거짓말


그렇게 당연한 듯이 거짓말을 한 후, 우리는 마지막 만남을 가졌다. 이번에도 내가 부산으로 내려갔는데, 부산에서 만난 그 사람은 건강해보였다. 반면 나는 그 사람을 보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연을 이어나가고 싶어서 #절실히도 연락을 시도했었다. 주변 동기들이 안쓰러워 할 정도로 연락에 집착했고, 무엇을 해도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때 나도 나를 불쌍해할 정도였으니 뭐, 더 말 할 필요가 없었다. 나만 놓으면 되는 관계를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그렇게도 열심히 쳤다.


다시 만난 그 날은 우리의 기념일이었다. 그 사람 몰래 전 날 미리 내려가 연락을 취했다. 물론, 답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왔다. 적어도 3시간의 텀이 우리 대화 사이에 껴 있었다. 나는 그래도 혹시 몰라, 그 사람이 만나주지 않을까? 라는 심정으로 그 사람 집앞으로 차를 몰고 갔다. 불길한 느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이 보고 싶었고, 집 앞이라고 하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나는 집앞으로 가는 중이라는 연락을 남겨놓고 숙소에서 차를 몰고 갔다. 그렇게 가면 안 됐을까? 그렇게 간 내 잘못일까? 보면 안 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선인지 소개팅 후, 남자가 꼭 집에 데려다주는 듯한 행위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며칠 전 그 사람이 내게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길가다가 어떤 남자가 나한테 전화번호를 물어봤어요. 귀여웠는데, 내 나이 듣더니 놀라더라구요."


그에 대해 나는 물었다.


"그래서 번호 줬어요?"


그 사람은 당황한 듯이 대답했다.


"아..아니 줄 리가 있어요? 당신이 있는데요. 게다가 어린 사람이었어요. 내 나이 듣더니 놀라는 거 보면 알잖아요."


사실 처음에 그 사람이 놀라는 지점부터 나는 눈치를 채버리고 말았다. 그 사람은 저 사람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넘겨준 것이다. 그리고 저 사람과 연락을 열심히 한 것이다. 나에게 숨긴다고 숨겼지만, 이상한 상황에서 들키고 만 것이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오히려 풀이 죽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 저 사람이 나보다 낫구나', '저 사람이 그 사람에게 더 어울리네'.


참으로 한심한 패배자의 속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었다. 지금 마주한 그 상황을 부정하기 싫었다. 덤덤히 받아들였다.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여기 온 적이 없다'라고 되뇌이며 숙소 침대에 누웠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난 후, 그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봤어요. 답장이 늦었죠. 미안해요. 1층에서 티비 보다가 올라왔어요. 왜 벌써 왔어요? 내일 올 줄 알았는데, 집에 오고 있어요? 나 다 씻어서 나가기가 좀 그런데."


참으로 #담백한거짓말 이었다. 그 사람은 저 사람과 2시간을 집에서 함께 보낸 것이다. 아마도 그 사람은 나와 이미 헤어졌다고 가족에게 통보하고 새로운 남자를 집에 소개시켜준 것 같다. 그 사람에게 나는 참으로 쉬운 '#존재'였고, '#교체'될 대상이었나보다. 그렇게 나는 그녀에게서 벗어나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숙소 침대에 누워 그녀에게서 온 연락에 뭐라고 답장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연락했다.


"아 출발 안했어요. 가려다가 일이 생겨서 다시 숙소로 왔어요. 그러니까 저 신경쓰지 말고 푹 쉬고 내일 만나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었다. 그 연락을 취한 뒤,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웠다. 자고 싶었지만 잠에 들 수 없었고,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숙소에 '#홀로' 있으니 무엇보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일이 오는 것이 너무 싫었다. 꼭 연휴 뒤 출근하는 직장인의 심정이었다.




PS. 마주하기 싫은 현실을 마주한 뒤, 부산을 다시 찾아가는데 2년이 걸렸다. 그곳을 가면 그 사람을 만날 것 같았고, 그 사람을 찾아 헤매일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2019년 9월에 부산을 다시 찾아갈 수 있게 됐다. 그 사람의 흔적도 찾지 않았고, 그 사람과 같이갔던 추억도 곱씹지 않았다. 그 후, '#부산'은 그저 부산으로 내게 남게 됐다.


#현실 #연애 #사랑 #이별 #글귀 #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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