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개미핥기 Dec 01. 2020

Moo'tice

#11, 환상


다음 날 일어나 출근 준비를 힘겹게 했다. 나는 그 사람을 잊기 위해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니. 잊기 위함이 아니라, 1달 후 다시 도전할 그 연락에 내 소망을 담았다. 물론, 그때 그 사람이 나의 번호를 차단 목록에서 지웠을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냥 견뎌보기로 했다.


새벽 6시, 지방으로 내려가는 차에 몸을 겨우 욱여넣고 엑셀에 발을 얹었다. 차를 몰고 가는 길에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아직도 꿈에 빠져서 깨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된 그 현실도, 믿기지 않았고 내가 이렇게 피곤한 상태라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그래도 난 꼭 출근을 해야했다.


남들보다 이른 출근 시간이었음에도 고속도로에는 차가 가득했다. 운전을 해가면서, 이 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단순히 직장을 향해 가는 것인지, 자신들이 원하는 곳을 향해 가는 것인지, 저 사람들은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 참 별걸 다 생각하면서 차를 몰고 일터로 향했다.


다와가는 일터 앞에서 지각은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봤다.하지만 시간은 내 출근시간 보다 30분이나 빠른 시간을 가리켰다. 순간 들어가지 말까 라는 고민을 했지만, 나는 네모난 공간에 내 몸을 그냥 의탁하기로 결정했다. 네모난 공간 모퉁이에서 수평으로 꺽어들어갔다. 그리고 막다른 곳에 다다랐을 때, 수직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3번을 반복하니 나의 조그마한 공간이 눈에 보였다. 


나름 '연구실'이라는 공간을 지니고 있던 내게, 어쩌면 그곳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혼자 가 될 수 있는 장소였다. 물론, #사람성애자 라는 별명을 가진 내게 그 감회는 5분도 안 돼서 깨졌다. '똑똑'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닝커피 를 즐기는 동기들이 들이닥쳤고, 그렇게 쉬지 못하고 사람을 상대했다.


기분이 더 축처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과 달랐다. 더 활기찬 내가 되어버렸고, 더 신나보이는 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꿈같은 10분이 스치듯 지나갔다. 동기들이 각자 연구실로 돌아가자마자 내 기운은 사라졌다. #환상 처럼 말이다. 심연의 끝에 닿아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했다. 이게 #회광반조 인가? 그러면서 기계적으로 일터를 향해 나아가는 내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다시 돌변하는 내 모습에 나는 놀랐다. 아무렇지 않은 척, 멀쩡한 척 말이다. 하지만 #척 은 척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 했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그렇게 발을 돌려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ps. 그 #일터 에서 과분하게도 나 혼자 쓸 수 있는 #연구실 을 제공 받았고, 3년 간 근무했다. 좋은 동기들과 좋은 선배들을 만나서 행복하게 지냈었다. 또한, 실질적으로 나를 인간적으로 대접해준 유일한 곳이 #그곳 이기도 했다. 그곳을 나온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축하하고 있다.


#현실 #연애 #사랑 #이별 #글귀 #글감 #사랑해요 #보고싶다 #보고싶어요 #환상 




작가의 이전글 Moo'tic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