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개미핥기 Dec 02. 2020

과거회상 #모란시장

한 초등학생의 추억

<모란시장>


1. 복날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모란시장 앞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나타난다. 한 무리는 복날을 위해 오며, 또 한 무리는 시장상인을 향하여 비난의 화살을 날리기 위해 온다. 뒷사람들은 연례행사 하듯이 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없던 이 퍼포먼스는 무엇을 위한 것인지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잔인함에 대해 이야기 하자는 것인지, 개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자는 것인지 말이다.



2. 모란시장 입구는 푸르른 식물들과 꽃들이 있으며, 그 옆에는 지저귀는 새들이 새장 안에서 꺼내어 달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길에는 개들이 살고 싶어서 발버둥 거리기도 하며, 불에 탄 듯이 숯검댕이처럼 누워있는 개들은 사람들을 향해 도열해 있기도 했다.

 

가끔 이벤트성으로 사육된 개들이 도축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잔인하기 그지없다. 그러한 행위는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이루어 졌었다. 물론 요새는 도축장으로 끌고가 따로 행한다. 이벤트성으로 이루어지는 이 도축의 행위는 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가령 납치된 사람을 찾는 장면에서 포대 자루 안에 넣어져 공중에 매달려 있는 돼지의 모습이다. 그 자리에서 도축된 개들은 핏물을 빼기 위해 공중에 매달려 있고, 옆으로 삐져나온 혀나 축 늘어진 개들의 몸뚱아리는 인간의 폭력성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아이와 할아버지 <인스타 Hash Tag 모란시장구경>

3.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때에는 부모님과 아이들이 함께 모란시장을 자주 찾고는 했는데, 아이들은 두 눈으로 생생히 개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봤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돼지랑 다를 바 없는 '고기'였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보양을 하기 위해 찾아왔었다. 모란시장은 항상 4일과 9일에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었고, 지역축제처럼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맛있는 것들을 찾아 돌아다니는 그런 장소였다. 나 또한 '아빠'와 함께 맛있는 것을 찾아 돌아다니는 그런 곳이었다.     


모란시장의 먹거리 '옛날 국화빵', '핫도그', '장터 칼국수'


4. 모란시장을 찾아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초등학생의 감각으로 모란시장까지 가는 길은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또한 그 초등학생에게 그곳은 '신세계'였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가판대에서 물건을 사라고 호객하는 상인들의 목소리와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뽕짝의 선율,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개들의 비명소리가 더해져 모란시장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초등학생은 새생명을 찾기도 했으며, 죽어가는 동물들로부터 '맛'을 기대하기도 했다.


모란시장의 병아리들

    

모란시장의 초입을 지나 해산물들과 오리, 거위, 닭들이 있는 곳을 지나가면 바다 위에서 새끼 새들이 삐약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냄새는 포구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반면 병아리(오리새끼, 거위새끼, 닭새끼)의 울음소리는 어느 초등학생의 집안 구석 박스에서 힘없이 울어대다가 죽어가는 병아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곳에서 무수히 많이 놓여있는 시들어가는 수산물들과 활발하게 울어제끼는 병아리들을 쳐다보면서 아빠에게



쟤들은 튼튼해서 학교 앞에서 파는 병아리들과는 다르게 잘 자랄거야. 사줘.


라며 한 초등학생은 떼를 쓰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등학생의 언변은 초등학생의 눈을 굳건히 그리고 지그시 쳐다보는 아버지의 묵묵한 눈빛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초등학생은 마음으로 '다음'을 외치며 지나갔으리라.

    

모란시장 각설이 예술단 '품바'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은 초등학생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했던 잡화들의 천국이었다. 시골에서 입는다는 몸빼바지는 물론 동대문 시장에서 파는 최신 유행의 옷과 누구나 한 번쯤은 신어봤을 삼디다스 쓰레빠에 책가방, 실내화가방까지 모두 다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생은 그보다는 바로 건너에 있는 잔치국수나, 떡갈비의 향에 취해있었으며, 각설이의 신나는 타령과 함께 초등학생의 이를 썩어버리게 만든 '엿'에 시선이 팔려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어느 하나 건져내지 못하고 지나갈 수 밖에 없는 그 상황을 무던히 받아내고 넘기기도 한다.


그 이유는?


돌아올 때 하나 쯤은 건질 수 있을 거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선택권은 '아빠'에게 있었다.

     

모란시장의 유명한 그 '개새끼'


바다의 냄새와 고기의 냄새를 거치면 이제 야생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어디서 줏어온 것인지 모를 잡종 아닌 잡종같은 잡종 새끼 강아지와 새끼 고양이들 그리고 늠름하게 서 있는 흑염소, 산에서 납치한 다람쥐 등 다양한 동물들이 자신의 몸관리 하나 하지 못하는 좁은 철장 안에 갇혀 팔려나가길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사람들은 그들에게 호기심 어린 눈빛과 함께 키우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영계의 미에 빠져들어 집으로 데려간 동물들은 며칠을 가지 못하고 픽 쓰러져 죽어갔으며, 그로 인해 한 아이의 동심은 파괴됐으며, 그 아이를 보는 부모님의 심장을 '송곳'으로 찔러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에 그 부모님은 모란시장에서 '산짐승'이 아닌 '죽은짐승'만 사가기도 했다.  

   

그렇게 두 시간 가량의 시장탐험은 초등학생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 를 직접 느끼게 했으며, 인간과 자연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이제 다시 재현할 수 없는 '과거'이며, 손에서 느껴지던 온기가 떠나갔음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모란시장 예측도

     

5. 초등학생은 그 과거를 지니고 '미래'에 재현해보는 것이 하나의 꿈이기도 하단다.


2015. 11. 03. 작성




2020. 12. 02 현재


0. 모란시장의 이전은 과거의 추억을 잊게 할까?

 

대답은 아직 모르겠다. 이전 이후 모란시장을 가본 적이 없었다.

사느라 바빠 가 볼 생각을 못 해봤을 뿐더러, 같이 갈 사람이 부재한다.


과거와 분리된 현재에 '아빠'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의 부재'는 나를 추억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게 한다.

 

그 공간은 과거 그대로 놓여있어야 한다.

새롭게 재연하기에는 아직 나의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가봐야 한다.

나도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Moo'tic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