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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Dec 16. 2020

Moo'tice

#21, 환상의 나라와 팬더월드

"오랜만이야"


웃으면서 건넨 당당하지만 쑥쓰러운 그 사람의 한 마디가 내 마음에 꽂혔다. 단순히 꽂혔다는 말로 설명이 불가능한 그 느낌은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 


'봄날이었지만, 쑥쓰럽게 그 사람의 몸을 감싸 안은 검은색 트렌치코트가, 그 사람을 더욱 시크하게 만들었으나 표정과 몸짓에서 뿜어져 나오는 쑥쓰러움은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향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볼은 딸기처럼 발갛게 물들어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올라오는 그 사람의 눈을 마주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멍하니 쳐다보는 일 뿐이었다. 움직임이 굳어서 무엇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우리는 '얼음, 땡' 놀이를 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사람이 다가와 나를 쳐줄 때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앞으로 다가와 내 몸을 터치해줬을 때,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말을 건넸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이제부터는 제가 책임질게요."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쑥쓰럽게 내 차로 이동했고, 다음 행선지인 '환상의 나라'로 떠났다. 그 사람이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고, 오기 전부터 내게 끊임없이 이야기 했던 장소였다. 어렸을 때 이후로 가 본 적이 없으며, #남자친구 와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때부터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사귀는 상태였는지도 모른다. 마치 요즘 #Z세대 들이 사귄다는 말 없이 만남을 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과의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때부터 함께 미래를 그렸던 것 같다. 물론 머지 않아 그 미래는 쉽게 깨졌다.


우리는 환상의 나라로 가서, 그 사람이 가장 보고 싶었던 것들을 구경했다. 그 사람은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여 #사파리 위주로 돌아다녔는데 특히, 그 사람은 #팬더 를 가장 좋아했다. 그 당시 환상의 나라에 #아이바오 와 #러바오 가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 인기가 많았다. 또한, 그 안에는 #랫서판다 가 함께 있어서 더욱 인기가 많았다.


그 사람은 그 안에서 떠날줄 몰랐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면서 팬더를 구경했다. 한 발자국 움직여 팬더를 보고, 나를 바라보며 무언의 몸짓을 보냈다. '이리오세요'라는 표현이었다. 그래서 내가 다가가면 그 사람은 열심히 팬더를 보다가, 아이들에 가려 안 보이면 또 이동했다. 그리고 내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며 다시 무언의 몸짓을 보냈다.


이 반복된 행위로 인해 우리는 자이언트 팬더와 랫서팬더를 보느라 2시간을 소비했다. 주변 아이들도 그 정도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팬더를 조금 더 보겠다는 '몸짓'을 이겨내지 못하고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팬더보다는 그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으로 기억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판다월드 를 나와 우리는 동물들을 둘러봤다. 열심히 둘러보다가 벚꽃과 함께 아름다운 색을 간직한 홍학의 무리를 마주쳤다. 그리고 우리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ps. 그 사람이 수서역에서 내린 시간은 오후였다. 우리는 환상의나라에서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하여 금방 저녁을 먹으러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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