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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Feb 23. 2022

� 답은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정답 #답안 #힘들다 #알잘딱깔센

� 한 줄 요약

- 늘 그렇듯 답을 실행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 가끔은 자고 일어나면 하루의 컨디션을 예측할 수 있는 날이 있다. 그 예측은 좋은 예측은 아니고, 아주아주아주 나쁜 예측이다. 그 예측은 잠을 잘 때 발생한다. 밤 동안 발생하는 그 일은 내가 알 수 없고, 왜 그러는지, 왜 때문에 그러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 단순히 다음과 같이 생각할 뿐이다. 


'잘 때 자세가 안 좋아 일자목이 심해지는 그런 날'


✔️ 그날은 아침부터 진통제를 챙겨 먹는다. 엄청 심하면 진통제도 들지 않아 하루 종일 무거운 머리와 나를 괴롭히는 편두통과 함께 해야 한다. 또한, 음식도 마음껏 먹지 못한다. 위 속에 무언가 드러 찰 때마다 몸과 함께 머리가 무거워지니까 말이다.


✔️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항상 나는 먹는다. 무언가를, 왜? 맛있으니까! 그러고 나서 소화제를 마구 욱여넣는다. 그런다고 소화가 되나? 이미 신경이 잔뜩 눌려서 소화불량이 발생했는데? 이럴 때는 저절로 소화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소화가 돼야 진통제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 결국, 그런 날의 답은 잠을 더 자는 것인데, 일정이 있으면 그러하지 못한다. 또한, 가족과 함께 있으면 내가 아파서 누워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자는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아주 잘 아는데, 가족들은 자면 안 된다고 한다. 아니, 단 하나의 해답이 잠인데 잠을 못 자게 한다.


✔️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면 더 안 좋다네~!', '이렇게 해야 더 좋다네' 등등 말이다. 아니, '나는 그 통증을 가라앉히는 답을 알고 있다니까요? 자는 거요!' 그래도 가족들은 강요한다. 자신들의 말이 답이라는 듯. 이 강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생각이 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답은 자세교정이다. 추가로 운동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많이 했었다. 운동을. 하지만 항상 붙어있는 가족이 생기다 보니 불가능하다. 그 사람과 함께 있는 것 또한 내 의무이기 때문이다.


✔️ 혼자 무언가를 행할 시간이 많을 때는 나 혼자 하고자 하는 바를 하면 된다.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의무가 생겼을 때는 내가 시간 조절을 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어떠한 하나를 택했을 때, 기회비용이 나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온전히 떨쳐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도 그것을 떨쳐냈을 때, 집중이 오롯이 발휘된다. 


✔️ 모든 일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다. 다양한 일 중에 어떠한 것을 택하고, 어떠한 것을 나중으로 버릴지 또한, 어떠한 것을 우선 처리하고, 어떠한 것을 나중에 처리할 것인지, 일하는 사람이라면 항상 마주하는 문제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모두 답을 알고 있다.


"알잘딱깔센"


✔️ '알아서 잘하고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하나 쉽지 않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모두 신경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환경' 때문이다. 앞선 예시처럼, 내가 처한 환경은 나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 나는 머리가 아파서 눕고 싶은데, 밥 먹었으니 누우면 안 돼!라는 규율이 나를 옥죈다. 이 규율은 그 말을 던진 상대방에게만 효력이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속한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율로 작동한다. 결국, 나는 그 규율에 적용되어 머리가 아픔에도 불구하고 앉아 있어야 한다.


✔️ 이 규율이라는 것이 나를 통제하는 그 상황 속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내 의사는 무시되고, 규율이라 언급된 그 통제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끔 우리는 반항한다. 그 규율보단 내가 생각하는 '답'이 우선이라 여기면서 말이다.


✔️ 여기서 발생하는 규율과 답의 줄다리기는 어느 하나가 놓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는다. 결론은 한쪽이 '포기'했을 때 나는데, 이를 프로덕트(서비스)와 연계하여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다. 제품을 만드는 자와 제품을 이용하는 자, 우리는 어떤 것을 우선할 것인가?


✔️ 기본적으로 제품을 만드는 자의 의견보단 제품을 이용하는 자의 의견이 중시된다. 아니, 중요시 여기는 '척'한다. 제품을 만드는 많은 대표님들, PM, PO 등을 만났을 때, 데이터보단 자신의 생각으로 결론을 짓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따르는 것은 보통 '규율'인데, '자신들이 그렇게 정했다'는 것이 주된 근거이다.


✔️ 하지만 이럴 경우, 서비스를 이용하는 자들은 많이 떠난다. 그들은 답을 알고, 그 답을 실행하기 위해 프로덕트에 온보딩 했는데, 규율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서비스라면 달라지지만) 고객을 위해, 고객의 페인 포인트를 해결해주기 위해 만든 서비스가 '규율'만 강요한다면? 이탈이 예견된 일이다.


✔️ 보통 규율을 강요하는 서비스는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초보 대표님들이 많은데, '저기서 이렇게 하니까 잘 되더라', '이렇게 해보면 될 거 같은데?'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서비스를 만든다. 데이터와 같은 지표도 없이, 다른 '환경'에 놓인 기업과 비교하면서 '잘 되더라, 될 거 같은데?'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보통 스터디를 통한 것이 아니라, 주워들은 말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 또한 규율을 강제하거나 강요하는 서비스는 고객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직원에게도 똑같이 대한다. 자신이 가진 생각이 답인 양, 그것이 곧 전부인 양 말을 하기 때문인데, 생각 이상으로 '아주 많이' 스타트업 대표님들로부터 발현된다. 나는 과거에도 경험했고, 현재도 그렇다. 


✔️ 그들이 지닌 특성을 살짝 이야기하자면 '자존심'도 있지만, '자부심'도 그 안에 내재돼 있다. 자신이 아니면 이 일을 못할 거라는 착각이다. 이 자부심은 있으면 좋다. 단, 곁들여야 할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겸손'이다. 이 겸손이라는 기제는 자신의 상황과 위치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나의 대학교 은사님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나를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일이 가장 어렵다."


✔️ 나는 이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살고 있는데, 어떠한 일을 하고 나면(사소한 일이라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게 업무이든, 남과 사소한 일이라든, 만남이든 말이다. 가끔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과거에는 일일이 다 기록했는데, 현재는 생각으로 돌아보고 짧게나마 교훈처럼 가슴에 새기는 편이다.


✔️ 그러다 보니 다음과 같은 모토도 생겼다.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의 총체다."


✔️ 내가 만나왔던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은 크건, 작건 내게 (어떤) 영향을 줬다고 여긴 탓이다. 아니, 덕이다. 탓이 아니라 덕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이 나를 만나고, 만나주고, 이야기하고, 이야기해주고 하는 모든 상황이 고맙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 그들은 나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속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것이 나쁜 이야기든 좋은 이야기든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함께하는 그 '시간'과 '공간'이 중요하다. 또한, 그 상황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 어쩌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주제에 벗어난 내용도 많고, 쓸데없는 이야기도 많다. 이 상황을 짧게 요약하자면, 우리는 답을 안다고 쉽게 실행할 수 없다. 우리가 놓여있는 환경도 고려해야 하고, 주변 사람과의 협의도 진행해야 한다. 단지, 그 안에서 최상의 답안을 내리는 것이 내 역량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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