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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Apr 07. 2022

� 클리셰 범벅이 클래식을 넘어섰다고?

#사내맞선 #클리셰 #두가지


� 한 줄 요약

- <사내맞선>을 관통하는 두 가지 클리셰


✔️ 혹자는 <사내맞선>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클리셰로 범벅된 B급 드라마라고. 하지만 그 클리셰가 클래식을 넘어서는 폭발적인 힘을 내재하고 있는 점을 간과하는 듯하다. 


✔️ 아, 이 글은 아티클이 다루는 <브리저튼>은 생략한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내가 안 봤기 때문이다. <사내맞선>은 나의 월화 밤 10시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고 싶다. 마침 본 아티클을 읽었기에 더욱 글을 쓰고 싶어졌다. 


✔️ 우선, <사내맞선>에 나타난 대표적인 클리셰를 살펴보자. 하나, 신데렐라 신드롬. 극 중 신하리는 재벌가 사장과 연애를 한다. 우여곡절 끝에 만남을 이어 가는데, 역시나 남주가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간단하다.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재벌가에서 볼 수 없는 로망을 가진 사람'이다. 능력은 있지만 사회생활은 하지 못해 '아싸'다. 결국, 사회성이 떨어지니 사람을 많이 만나지 못한다. 


✔️ 그러다 보면 당연하게도 자신처럼 '돌+I'에게 끌린다. 그게 마침 신하리였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진부한 신데렐라 클리셰다. 무엇 하나 빠진 남주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단 하나의 매력을 가진 여주. 그렇게 여주는 재벌가의 며느리가 된다. 


✔️ <사내맞선>에는 이에 대비되는 한 가지 클리셰를 더 가지고 있다. 바로 서브 역할로 등장하는 영서와 성훈의 관계. 신데렐라 신드롬을 보충하듯, 재벌가 딸 영서와 보육원 출신 성훈은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이건 신데렐라맨 신드롬이라 해야 하나? (영화와 드라마 신데렐라맨과 다른 이야기)


✔️ 다른 하나, K장녀의 끊임없는 노력이다. 부모님이 제대로 일하지 못한다. 그러면 K장녀가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 과거 공순이로 일했던 그들의 사명이었고, 시다로 일해야 했던 그들의 사명이었다.


✔️ 하지만 50년 이상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클리셰는 '사라지지' 않고 그렇게 '살아지고' 있다. 이 K장녀의 클리셰는 아직도 발휘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겨우 걸치고 있는 80년 초중반 K장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 하지만 많은 MZ세대들은 이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82년생 김지영>을 보며 논쟁을 일으켰던 이유이기도 하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MZ세대는 절대 통칭해서 부르면 안 된다. 기성세대가 그들을 정의 지어서도 안 된다. 


✔️ 엄연히 M과 Z는 다른 선상에 서 있고, 이를 넘어서는 알파 세대는 다른 차원에서 분석을 진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기성세대가 구분지은 틀에 갇혀 새로운 시야를 밝히기에 부족하게 된다. 


✔️ 다시 작품 이야기로 넘어가 <사내맞선>에서 신하리는 쥐꼬리만한 월급(연봉 4,900 추정)으로 집안을 먹여 살리고 있다. 즉, K장녀 혼자 힘겹게 돈을 벌어 가업(치킨집)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 이에 따라 가족은 짐이 된다. 부모님은 사업을 잘못했고, 동생은 천둥벌거숭이로 등장한다. 반면 K장녀는 일 끝나고 집에 와도 푹 쉬지 못한다. 집안일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과 설정은 왜 하는 것일까?


✔️ 극적인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 극적 연출을 더 극적이게 하기 위해서, 더불어 시청자에게 익숙한 장면을 내놓기 위해서 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흐름으로 흘러간다면 어떨까? 우리가 새로운 서비스를 접하는 것과 동일하지 않을까?


✔️ 우선 흐름이 달라지면 '낯섦'을 느낄 것이다. 그 낯섦으로부터 대부분은 '주저'를 마음속에서 꺼낼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그 작품과 멀어지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익숙한 것을 꺼낸다.


✔️ 아티클에서 말하는 고정된 성역할도 이와 같다. 여성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남성이 도와주지 않고 홀로 문제를 해결한다면? 우리는 '낯섦'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대단한 능력을 가진 남성이 해결해준다면? 우리는 '설렘'을 느끼게 된다.


✔️ 우리가 기대했던 바이고, 고대했던 바이기 때문이다. 그럼 성역할의 명확한 구분을 거부하는 세대들은 어떨까? 그들은 낯섦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잠깐, 우리는 이 고정된 성역할이라는 문제를 다른 말로 치환해보면 어떨까? 


✔️ 무엇으로 치환하느냐? 바로 '고구마'와 '사이다', 이 둘이다. <사내맞선>에 등장하는 클리셰를, 여주의 위험이 고구마, 남주의 행동이 사이다라고 한다면? 앞서 말했던 MZ세대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클리셰가 된다. 


✔️ 그렇기 때문에 <사내맞선>을 볼 때, 우리가 클리셰 범벅이라 말하면서도 재밌게 즐기는 이유가 된다. 그래도 혹자는 '문화를 다루는 드라마를 아무 생각 없이 감상하면 되느냐'라고 말할 수 있다. 


✔️ 허나, 이 클리셰는 한국에 국한되어 통하는 것이 아니다. 만국 공통의 클리셰로 통하고 있다. <사내맞선>이 넷플릭스 비영어 TV 프로그램 주간 시청률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https://alook.so/posts/kZtBl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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