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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Jun 07. 2022

#09, 지옥을 벗어나고 싶다면 10명 안에 들어라!

#ten #샤크 #카카오페이지 #이은재작가

플랫폼: 카카오페이지

웹 툰: TEN

글작가: 이은재

그 림: 이은재





"살아남고 싶다면 끊임없이 발버둥 쳐라."


여러분 웹툰 <샤크>를 아세요? 인기가 많은 작품으로, 현재 카카오페이지에서 173만 명이 보고 있어요. 인기가 많은 IP라 영화로도 제작되었죠. 제목은 <샤크: 더 비기닝>, 하지만 웹툰과 다르게 영화는 흥행하지 못한 것으로 보여요.

원작을 잘 살리지 못해서일까요? 저도 아직 확인을 못 해서 딱히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네요. 그럼 <샤크: 더 비기닝>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바로 TVING이에요. TVING 오리지널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이죠.


여러분 혹시 이번 첫 문단 소제목과 <샤크>의 관계를 눈치채셨나요? '샤크'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바로 '상어'죠. 상어의 기본적인 특성은 '끊임없이 헤엄을 쳐야 한다'라는 거예요. 상어는 아가미나 부레가 없기 때문에 산소를 빨아들이기 위해, 가라앉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헤엄을 쳐야 해요.


<샤크>의 주인공 차우솔도 상어처럼 죽지 않기 위해 '교도소' 안에서 끊임없이 발버둥 쳐요. 그 발버둥이 멈추는 순간, 차우솔은 성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누군가의 먹이로 전락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빵셔틀'이었던 그 혼자선 불가능한 일이겠죠.


이를 도와주는 조력자로 '정도현'이 나와요. 그는 종합격투기 챔피언으로 누구도 넘어서지 못하는 피지컬과 정신력을 지니고 있죠. 정도현은 선수로서 최고지만, 스승으로서도 최고예요. 선의를 가진 사람으로, '격투'라는 행동을 좋은 의도로 활용해야 함을 각인시키죠.


이러한 행위가 차우솔에게도 전달되어 그대로 행하게 돼요. 물론, 원래 차우솔이라는 캐릭터의 성격이 '착하고 착한 바보'로 설정이 되어있죠. 시합 중 폭주하면 돌변하긴 하지만, 성선설을 믿을 수 있게 만드는 캐릭터예요. 둘의 시너지를 통해 차우솔은 MMA 신인왕을 차지하며 격투계의 혜성으로 떠오르죠.



"지옥을 벗어나고 싶다면 10명 안에 들어라!"


아, 그래서 이번 레터는 <샤크>가 그 대상이냐고요? 아니예요.� 오늘의 웹툰은 바로 <TEN>이에요. 원래 작품이 너무 늦게 나왔죠? <TEN>은 제가 최근에 접한 작품인데 사실 나온지는 꽤 오래됐어요. '16년 10월 06일에 1화가 발표됐죠. 약 6년이 됐네요.


<TEN>은 6년이나 됐음에도 최근 작품들과 비교하여 오래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워낙 유명한 이은재 작가님의 작품이라 그럴 수도 있고요. 그럼 왜 <TEN>을 얘기하는데 <샤크>를 가지고 왔냐? <TEN>과 <샤크>의 플롯은 상당히 비슷해요.


<샤크>의 주인공 차우솔이 정도현의 가르침을 배워 교도소에서 살아남았듯, <TEN>의 주인공 김현은 복싱 챔피언 김성빈에게 가르침을 배워 '폭력학교'에서 살아남죠. '폭력학교'는 <TEN>의 배경이 되는 학교로, 인생의 모든 것을 잃은 김현이 전학 가게 된 학교예요.


이곳은 소제목처럼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하는 곳이죠. 이 학교는 수업을 듣는다고 고학년으로 진학할 수 없어요. 주어진 폭력적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최후의 10인이 고학년으로 진학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즉, 그들에게 시험이란 '필기'가 아닌 '실기'로 점철된 형식이죠.



"자위(自衛)를 위한 폭력은 지성이다."


자위(自衛)

[명사] 몸이나 나라를 스스로 막아 지킴.


폭력학교에서 폭력은 '지성'이죠. 사회에서 폭력을 '반지성'이라 말하는 것과 반대되는 사회예요. 작가는 왜 이런 장치를 만들어 놨을까요? '폭력'이 지니는 정당성에 대해 사회에 반문하기 위해서예요.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죠.


              폭력은 복수를 위한 최고의 도구인가?            

              폭력은 자기방어 수단으로 사용 가능한가?            

              폭력은 사람을 교화할 수 있는가?            

              약자는 폭력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            


'폭력'은 '폭력학교'에서 살아가는데 최고의 '도구'가 돼요. 폭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죠. 아니, 폭력을 통해 정점에 설 수 있다면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해요. 자위(自衛)의 뜻처럼, 나 자기 몸을 나아가 '우리가 속한 나라'를 스스로 막아 지킬 수 있어요.




"자본주의는 자본이 지배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폭력이란 단어를 자본으로 변경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죠. 자본보다 강한 힘은 없어요. 물론, 자본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분들이 많이 있겠지만, 명예보단 자본으로 흘러가는 시대이죠.


우리는 자본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자기가 가지고 싶은 거,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모두 할 수 있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이 있다면 '더욱 편리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죠.


하지만 '자본'이 있다고, 모든 행위에 대해 프리패스가 되지 않아요. 지켜야 하는 선이 있고,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중심축'이 있죠. 그 중심축이 윤리를 기반으로 할 수도 있고, 관습을 기반으로 할 수도 있죠. 다만, 자본을 활용해 나를 지키거나, 나라를 지키는 데는 정당한 방법으로 받아들이게 되죠.


"폭력학교는 폭력이 지배하지만, 사회는 아니다."


그러면 다시 자본을 폭력으로 치환해볼까요? <TEN>의 폭력학교에서 폭력은 '최고의 도구'로 작동해요. 하지만 <TEN>은 폭력에 대해 조심히 접근하죠. 절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아요. 일반적인 사회에서 말이에요. 다만, 폭력학교라는 통제된 변수 안에서만 정당한 행위로 그려내죠.


그에 따라 웹툰 <TEN>은 폭력을 미화하지도 않고, 폭력을 가볍게 사용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나를 지키는 최고의 도구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아직 저는 마지막 화를 보지 않았지만, 시즌2로 진입하지도 못했지만, 작가가 어떤 말을 던지는지 대략 추정할 수 있어요.


이은재 작가가 사용하는 '비행기'라는 메타포, 그리고 비행기가 추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를 통해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 모든 것이 피해자인 '김현'을 중심으로 세세한 묘사가 들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폭력의 세계' 속에서 발버둥 치는 김현의 비극적인 현실, 이 모든 것은 마치 내가 주인공인 김현이 되어 '지옥 같은 현실'을 버티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해줘요. 그래서 그런지 '김현'이라는 캐릭터가 단순히 학교폭력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를 모두 다룰 수 있는 캐릭터가 되지 않나 생각이 되기도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폭력이라는 '도구'를 다양하게 변용하면 그것이 곧 '현실'과 마주한 '진실'이 되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저는 느끼게 돼요.


"아, 언제든지 내가 김현이 될 수 있고, 김현처럼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발버둥 쳐야 하겠구나"





"나는 두려웠다. 두렵고, 두렵다는 게 지겹다."


프랑수아즈 사강

- 독약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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