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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Jan 18. 2021

Moo'tice

#39, 국문학보다는 다른 학문을 해보는 건 어때?


시간은 무던히도 빠르게 흘러 금요일이 됐다. 출발하기 전 선생님께 12시 도착 예정이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내게 학교 앞 맛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사실 맛집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곳은 아니었다. 그저 대학생들에게 조금 비싼 퓨전 일식집이었다. 나 또한, 4년 동안 대학생활을 지내며 가본 횟수를 손으로 꼽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대학교 친구들과 다시 학교를 찾아간다면 더 나은 음식점을 찾았겠지만, 우리 학교의 교직원인 선생님에게는 그곳이 남을 대접하기 좋은 곳이었으리라.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의 분위기는 여전하셨다. 넉넉하게 나온 배는 선생님의 인심을 표현했고, 서글서글 웃으며 상대해주시는 웃음은 기분 좋은 넉살을 느끼게 해주셨다. 또한, 여전히 차분하며 날카로운 말투는 남의 편일 때는 칼날이 되어 다가왔겠지만, 나의 편이라는 측면에서 무엇보다 따뜻햇다. 우리는 스몰토크를 통해 잠깐의 근황을 주고 받았다.


나는 내 근황을 남과 쉽게 공유하지 않는 편이라 어디를 가든 말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람들과 있을 때, 생각을 깊게 하고 말을 꺼내는 편이라 더욱 그랬다. 근황을 이야기하며 어디까지 이야기 해야 하는지를 고심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쉽게 자신의 근황을 털어놓으셨다. 가령 다음과 같은 이야기다.


"아침에 와이프 차를 수리하러 갔는데, 이게 말이야 오래 걸리더라고, 그렇게 크게 고장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 사람들 말로는 정비하는 시간과 차를 고치는 시간까지 더해야 한다나? 그래서 졸지에 차를 맡기고 오게 된 거 있지. 이게 얼마나 귀찮냐면 출근길에 동선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거지. 게다가 차를 맡겼으니까 대중교통을 타야 하잖아. 이중으로 귀찮아지는 거 있지. 또 갈 때는 거기 들러서 차를 찾아가야 하니까, 이게 얼마나 귀찮아. 안 그러니? 차가 사람이 편하려고 타는 건데 오히려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귀찮게 하는 거 보면, 이게 진짜 편한 건가 싶기도 하고, 운전할 때는 신경써야 할 것도 많고, 유지비도 많이 들고, 이게 또 돈 먹는 기계잖아. 그래서 참 그렇다니까"


어쩌다보니 우리는 음식을 시키지도 않고 근황토크를 5분간 이어갔다. 중간에 그 말을 끊어야 하는데, 쉽사리 끊어낼 수가 없었다. 되려 직원이 다가와 무엇을 주문할 것인지 먼저 물었다.


"무엇을 드릴까요?"


선생님은 이야기를 끊고 답했다.


"저는 이 돈까스 주시고, 너는 뭐 먹을래?"


나는 이전에 먹었던 음식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벌써 1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선생님이 드시는 것을 따라서 먹기로 했다.


"저도 같은 거로 하겠습니다."


무슨 돈까스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주문을 했다. 선생님은 이어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아, 맞다. 오늘 왜 만나자고 한 거지? 무슨 일 있니? 진로에 관한 고민이니? 아니면 다른 고민이 있어?"


선생님은 갑자기 본론으로 들어가셨다. 그에 맞춰 나도 바로 본론을 꺼냈다.


"네, 선생님. 앞으로의 진로에 관한 고민입니다. 사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미래가 보이지 않잖아요. 제가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해도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생활은 이어나갈 수 있을지 너무 고민이 됩니다. 아니면 독일이나 미국, 호주 쪽으로 유학을 가볼까 하는데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새 너무 고민이 돼서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나의 질문을 듣더니 한참을 고민을 하셨다. 그리고 답해주셨다.


"유학을 가는 게 좋은 거 같은데, 국문학보다는 다른 학문을 해보는 건 어때?"




ps.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놀랐다. 여태까지 해오던 공부가 국문학인데, 다른 분야로 돌려보라고 말씀하셔서 말이다. 하지만 곧 납득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왜 그런 제안을 하셨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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