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난독증 그리고 (언어의) 장벽
"네? 다른 학문이요?"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처음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10년 가까이 해온 공부가 국문학이었는데, 타 학문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하시는 말이 나의 10년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나의 오해였다.
"응, 다른 분야. 내가 국문학계에 있으면서 계속 느끼는 일들은 미래가 밝지 않다는 점이야. 아, 그렇다고 아예 타 분야가 아니라, 국문학과 연관있는 분야를 말하는 거야. 대표적으로 하와이 주립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연구소'가 있지. '문화'라는 측면에서 니가 여태까지 공부해온 것하고 연관이 있긴 한데, 시대가 더 넓어지니까 쉽지는 않을거야. 그래도 해외로 나가면 그쪽에서 공부할 여건도 생기고 지원도 받을 수 있지.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에 속할거야."
선생님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또한, 나의 걱정을 적절하게 해소시켜주는 발언들이었다. 다만,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 신경쓰였다. 유학을 생각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해외에 체류한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압박했다. 적응 기간이 필요했고, 그 기간에 적응하지 못하면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과 시간을 버리는 행위가 된다는 사실이 신경쓰였다.
하지만 리스크가 높은 만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은 진로였다. 해외 대학교로 취업을 할 수 있으며 또한, 한류의 영향이 큰 동남아시아쪽으로는 미래가 창창했다. 확실히 한국에서 취득하는 박사학위보다는 나은 미래를 보장했다. 게다가 일은 그만둘 무렵에 한국어교원자격증2급 취득 과정에 돌입해 있었다. 2년 간 열심히 준비하면 한국어교원자격증2급에 더해 해외 유학길에 오를 수단이 생기는 것이었다.
만약에 이 결정을 내린다면 2년 간 언어공부와 한국어교원자격증 취득 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물론, 틈틈이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겸해야 했다. 일하면서 모아놓은 돈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를 생각한다면 필수적으로 해야했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생각해보니 단순히 공부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집에서 지원이 나오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러한 고민이 한 순간에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앞에 선생님이 계시는 데도 불구하고, 그 생각에 빠져 선생님이 묻는 말에 대답도 못 했다.
"다 먹었어? 이제 갈까?"
선생님의 첫 번째 물음이었다.
"갈까?"
두 번째 물음에는 나를 툭툭 치셨다. 내가 고민에 빠진 것을 알았는지, 선생님은 기분이 언짢다는 표현보다는 걱정어린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셨다. 그리고 한 마디 거드셨다.
"많은 부분이 걱정되는 거 알아. 유학을 다녀온다고 해도 내가 말한 것처럼 일자리가 보장되지는 않을 거야. 갑자기 세상이 급변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더 고민을 해봐. 나도 주변 교수님들께 여쭤보고 계속해서 정보 주도록 할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언가 명확한 조언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네."
선생님의 따사로운 햇살 같은 말들이 나를 감싸안았지만, 여전히 내면 속에는 거대한 빙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고민들을 쉽게 녹여내지 못하고, 심해 공포증처럼 갑자기 마음 속으로 밀려왔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선생님을 보며 말씀 드렸다.
"아니에요 선생님. 정말 좋은 말씀하고 조언 감사드립니다. 커피는 제가 대접할게요. 저도 직장 생활 조금 해서 선생님 커피는 대접해 드릴 수 있어요. 가시죠!"
그렇게 우리는 커피 가게로 자리를 옮겼다.
ps. 선생님의 진심어린 걱정과 조언은 아직도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다. 지금은 다른 길로 나아가 어쩌면 '짐'이라 느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