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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Jan 27. 2021

Moo'tice

#43, 선배는 유아독존


이튿날 오후,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중에서 골라봐."


그 당시 입맛이 뚝 떨어져 있던 때라서 최근 들어 먹지 못한 중식을 골랐다.


"누나, 저는 중식이 좋습니다. 이런 날은 기름 진 중식 아니겠습니까?"


나의 어이없는 말에도 선배는 반응해줬다.


"그렇지. 이런 날은 중식이지. 마침 내가 최근에 가보고 싶었던 중식집 있었는데, 주소 여기로 오면 돼. 내일 차 끌고 오니 아니면 대중교통 타고 오니?"


예상하지 못 했던 반응이지만, 선배의 적극적인 반응에 뇟속까지 감화됐다. 그리고 대답했다.


"차 수리 맡겨서 내일은 대중교통 타고 가야할 거 같아요."


사실은 아니었다. 선배가 보내준 주소를 보니 차를 댈 수 없는 장소였고 또한, 서울에서 특히 복잡하고 좁은 장소라 차를 끌고 가지 않는게 좋다고 판단했다.


"아 그래? 주차장 협소하고 그래서 대중교통 타고 오라 하려 그랬는데 다행이네? 아 다행이 아닌가? 여튼 내일 보자."


선배는 미리 내 불편함을 고려하여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넵, 누나! 내일 늦지 않게 갈게요! 내일 뵈어요!"


그렇게 연락이 끝난 후, 네이버에 심심해서 선배의 이름을 쳐봤다. 내가 들은 바로 최근 선배는 책 한 권을 기획했고, 단독 저서의 책을 한 권 더 출판했다고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선배의 이름을 검색하자 뉴스가 많이 떴다. 이달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문학연구자 중 단연 돋보이는 존재이기도 했다.


특히, 문학에서 소외된 여성의 서사를 집중적으로 비평하고, 이야기하며 목소리를 냄으로써, 그들이 생존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어떤 인터뷰어는 '고독하지 않았냐?'라는 질문을 던지곤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선배는 고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본 선배는 '유아독존'이었다. 같은 동기, 같은 선배들로부터 받는 평도 '자신들의 논문을 봐주는 지도교수'같은 존재라 여겨졌다. 특히, 내 논문을 쓸 때 도움을 받은 측면에서, 선배는 누구보다 핵심적인 질문을 던지며 완벽한 조언을 내줬다. 그로 인해 내가 석사논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선배가 없었으면 내 석사학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내가 살아가는 지금 현재(그 당시에는 미래)가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선배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항상 너무나도 큰 도움을 받았고, 의지를 했던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배는 술을 좋아했다. 여느 국문학도처럼 술을 잘 마시는 분이었다. 하지만 맛 없는 술, 그냥 마시는 술이 아니라, 분위기에 따라 취향에 따라 '분위기에 취해' 마실 수 있는 '맛있는 술'을 좋아했다. 여기서 말하는 맛있는 술은 비싸다고 맛있는 술이 아닌, 누군가의 정성이 담기거나, 분위기가 담긴 술이었다.


내가 최대한 낼 수 있는 분위기와 정성은 그 당시 최대한 구할 수 있는 좋은 술이며, 이전에도 선배가 마셔서 맛있다고  인증한 술이었다. 혹시 몰라 일을 관두기 전, 쟁여둔 몇 가지가 있어 챙기기로 했다. 물론,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는 나랑은 마시지 못 하겠지만, 혼자서라도 아니면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도 마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특별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담아 보내고 싶었지만, 그것까지는 부담이라 생각하여 예쁘게-술이 아닌 듯- 정성껏 포장하기로 했다.


마침 집에 남아있는 포장지, 포장끈 등을 활용하여 포장했다. 포장을 다하고 나니 어느 덧, 잘 시간이 다가왔고 혹시라도 놓고 갈까봐 꼭 챙기는 내 에코백과 함께 옆에 두고 잠을 청했다.  





ps. 술을 포장하며 생각했다. '와, 역시 나 포장에 소질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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