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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Jan 26. 2021

과거회상 #그 어린애는 컵라면을 좋아하지 않았다.(2)

한 초등학생의 추억

 주전자 손잡이가 뜨겁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 아이는, 끓는 물이 가득 찬 주전자를 힘겹게 들어 올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노른자가 올라간 컵라면에 물을 붓는다. 물을 붓다 방심한 사이, 용기를 탈출한 물들이 방안을 적신다. 방을 적시며 흐르던 물이 얄밉게 계란 옷을 입은 휴지로 스며든다. 


 물은 얄궂게도 휴지에 쌓인 계란에 형체를 입혀준다. 아이는 그것도 모르고 물이 차오르는 컵라면에 집중한다. 흐릿하게 보이는 선에 물을 맞추고 나서야 아이는 주전자를 가볍게 내리기 시작한다. 방바닥에 놓으면 안 된다는 걸 아는 아이는 한순간 쉬어가려, 휴지와 계란이 쌓아 올린 탑 위에 올린다.


 아주 잠깐 낡은 주전자를 올렸을 뿐인데, 계란의 형체는 더욱 선명해진다. 게다가 계란은 자신의 영역을 더욱 넓히고 싶었던지, 낡은 주전자에 달라붙어 아이에게 자신을 봐달라고 아우성친다. 그 아우성에도 아이는 컵라면에 집중하여 쳐다보지 못한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낡은 주전자를 올린 아이는 나무젓가락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주변에 나무젓가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낡은 구멍가게 주인은 아이에게 나무젓가락이 필요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건네주지 않았다. 구두쇠처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는 구멍가게 주인의 속셈 이리라.


  아이는 허탈한 마음을 안고 다시 한번 보이지 않는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러 주방을 향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젓가락을 찾아야 하는 숙명을 가진 아이는 비장한 마음으로 까치발을 든다. '3분 내로 젓가락을 찾지 못하면 라면은 퉁퉁 불어서 본래의 맛을 즐길 수 없다.' 그렇게 속으로 3분을 세어본다.


 아이는 3분 내에 손이 닿지 않는 미지의 영역에 손을 닿게 하는 중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주변에 아이를 도와줄 도구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작은 발판도 없다. 방부터 화장실까지 모조리 뒤져보지만, 딱히 도움이 될 수 있는 도구가 없다. 그러는 사이 벌써 1분이 지났다.


 조급해진 마음을 깊은 한숨으로 돌린 후, 아이는 뛰어본다. '펄쩍, 펄쩍'. 하지만 아이의 필사적인 몸짓에도 수저통은 쉽사리 자신의 영역을 내어주지 않는다. '닿을락 말락'하는 아이의 손짓은 한 마리의 나비가 '팔랑팔랑'거리는 것처럼 힘이 없다. 그렇게 또 1분이 흘렀다. 


 아이는 라면이 잘 있나 방안을 한 번 훑어보고는 결심했다는 듯이 방으로부터 달리기 시작한다. 그 후, 싱크대 앞에서 도약한다. 아슬하게 수저통에 손이 닿는다. 하지만 수저통은 자신을 끝까지 내주지 않았다. 수저통을 스치고 지나온 손이 싱크대  서랍 손잡이에 걸린다. 그렇게 싱크대 서랍이 열린다.


 잠시 짜증 난 아이는 싱크대 서랍을 쳐다본다. 그 안에는 아이가 기대하지 않았던 여분의 나무젓가락이 쌓여있다. 아이는 짜증도 잠시, 기뻐서 속으로 환호성을 지른다. 그 안에서 자신이 보기에 가장 이쁘게 생긴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고, 방 안으로 향한다. 그렇게 3분이 흘렀다.


 아이는 속으로 하나님을 외치며 기쁨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컵라면 뚜껑을 단 번에 찢어 잘 벼려진 브이라인의 일회용 컵을 만든다. 그 안에 차곡차곡 라면을 쌓아 올리고, 단 번에 호로록 삼킨다. 그 맛을 음미하며 아이는 '행복감'을 느낀다. 그렇게 또 '혼자만의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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