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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개미핥기 Jan 25. 2021

과거회상 #그 어린애는 컵라면을 좋아하지 않았다.(1)

한 초등학생의 추억

 

 한 초등학교 저학년생은 모두가 밖으로 나간 후에, 집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밖을 쳐다봤다. 창문을 세차게 때리는 빗물에 귀를 기울이며 점차 곯아오는 배를 움켜잡고,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다. 고민 끝에 한 평 남짓한 방을 나서 주방을 뒤적였다. 하지만 결국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낡은 계란 하나'. 이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밖을 나서기로 한다.


 강하게 내리는 빗물을, 한쪽은 꺾여버린 한쪽은 빠져버린 낡은 우산을 들고 받아본다. 낡은 우산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발을 굴린다. 자그마한 발을 굴려 집 앞에 있는 조그마한 구멍가게에 들러 엄마의 이름을 댄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컵라면 하나를 집어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낡은 우산이 아닌 자신의 옆구리를 연신 때리는 빗물을 견뎌내며 추적추적 걸어간다. 춥지는 않았지만 차갑게 스며드는 냉기를 온몸에 담아내고 나서야 집에 도착한다. 낡은 주전자 안에 물을 담으려고, 닿지 않는 팔을 뻗어 애를 써본다. 애를 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화장실로 가 물을 담는다.


 그 아이는 물이 가득 찬 주전자를 들고 두리번거린다. 여느 집에나 있을 법한 가스레인지는 온데간데 없이 텅 비어있다. 심지어 가스레인지에 연결'될' 가스관 조차 없어 그곳은 무엇을 끓이기 어려운 곳이다. 결국 그 아이는 주방 위가 아닌 방구석에 있는 휴대용 가스레인지로 향한다. 


 가스레인지 위에 물이 가득 찬 주전자를 올리고 전원을 돌린다. '탁' 소리가 나더니 아무런 반응이 없다. 불이 솟아올라야 할 곳은 텅 빈 정적만이 남아있다. 그 아이는 다시 한번 전원을 돌린다. 이번에는 '타 다다닥' 소리가 나더니 불이 1초간 피어올랐다 진다. 그럼에도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전원을 한 번 더 돌린다. 


 '타 다다다닥' 소리와 함께 불이 하나, 둘 피어오른다. 아이는 이번에는 그 불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전원에서 손을 떼지 않는다. 아이는 파란 동그란 원이 완성되고 나서야 손을 뗀다. 손을 떼고 옆에 놓여있는 라면을 집어 든다. 그리고 하얀 플라스틱을 감싼 투명 비닐을 잡고 '빨리 먹겠다는 일념'으로 잡아 뜯는다. 잡아 뜯은 투명 비닐은 옆으로 던지고, 컵라면 '뚜껑'을 뜯는다. 


 그 아이는 능숙하게 안에 들어있는 두 개의 봉지를 잡아 한 번에 뜯는다. 한 번에 탈탈 털어 넣고 두리번거린다. 두리번거리다, 계란이 주방에 놓여있음을 인지하고 가지러 간다. 깨알 같은 손에 계란을 꼭 쥐고 돌아와 '바닥'에 계란을 깬다. '탁' 한 번, '탁탁' 두 번, 그렇게 계란은 깨진다.


 하지만 그 아이는 계란을 바닥에 빼앗겨 버린다. 처참하게 깨진 계란은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아이는 흘러내리는 계란을 붙잡으려 애쓰지만, 그 작은 손을 부드럽게 지나친다. 결국, 그 아이 손에는 계란 껍데기밖에 남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도 아이는 필사적으로 바닥에 흘러내린 계란을 집어 들어본다. 하지만 이미 흘러내린 계란은 다시 주워 담아지지 않는다. 아이는 계란 노른자만이라도 넣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주방으로 향한다. 숟가락 하나를 챙겨 와 그 위에 노른자를 얹는다. 그리고 컵라면 용기 안으로 집어넣는다.


 하지만 바닥과 하나가 됐던 노른자는 더 이상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아이는 어쩔 수 없이 휴지를 가지고 온다. 자기 대신 많이 먹으라는 듯 휴지에게 계란 옷을 입혀준다. 그 사이 물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혹시 뜨거울지 몰라 아이는 낡은 주전자의 손잡이를 '살짝살짝' 건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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