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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Sep 15. 2021

나의 살던 나무

나는 신도시 인간이다. 정부의 신도시 발표는 지금도 계속되니까 내가 자란 신도시를 변별해야겠다.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차례 시행해 미래의 사회 교과서 암기내용을 늘려가고 있던 시절, 내가 자란 동네가 태어났다. 신생 도시노동자를 위한 대규모 주거지 개발이 목적인 한강 아래 땅이었다. 그 시절 정부는 국민에게 좋은 걸 줄 수 없었다. 학교와 놀이터는커녕, 나무 그늘조차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집장사에게 땅을 팔았다. 물장사 같은 땅장사였다. 대신, 아파트에 학교도 넣고 놀이터도 넣고 나무도 심으라 명했다. 나는 내 기억보다 먼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건설회사 사장님은 학교 하나를 끼고 두 개의 아파트 단지를 지었다. 은마와 미도. 6학년 반장은 아이들 주소록을 만들었는데, 우리 이름 앞에 ‘은’과 ‘미’를 표기했다. 담임선생님의 학급 운영을 위해서란다. 1년을 지내보니, 선생님용 영국제 커피잔을 구입 할 때에는 ‘미’ 엄마에게 전화하고, 커튼을 빨아올 때는 ‘은’ 엄마에게 전화하는 거였다. 나는 ‘은’이었다. 학급에선 적당하고 미도 놀이터에선 끼워주지 않는 ‘은’. 하교 시간이 되면 은마 무리에 섞여 걷는데, 아파트 광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계층은 또 나뉘었다. 지하주차장 없는 광장을 지나며 저게 우리 차라고 얘기한다. 아이들이 각자 속한 곳으로 가고 나면, 내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결국 혼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 13호에 들어가 거실에 눕는다. 나는 누굴까? 아파트가 생길 때부터 심어졌던 나무가 나를 보려고 까치발을 한 것처럼 꼭대기를 흔든다. 저 나무는 어디까지 자라는 걸까?


돈을 내고 아파트를 산 어른들은 놀이터나 벤치처럼 돈이 든 기물을 담장 안에 두었다. 그들은 내돈내산 기물들을 감시했고 덩달아 그곳에서 노는 아이들도 감시했다. 아장아장 살러 온 나 같은 아이들이 10대가 되었을 때, 우리는 아파트 안에 지어진 놀이터에 없었다. 새로운 일이 고픈 날이면 아파트를 벗어났다. 그러나 길은 아프리카 국경선처럼 나뉘어 있어서 모험은 그저 다음 아파트로, 또 다음 아파트로만 이어졌다. 벤치가 없는 그 길에서 오후 잠깐 꽤 멀리 가볼 수 있었다. 유리빌딩과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구역에 다다르면 몸에서 땀과 먼지 냄새가 났다. 플라타너스가 빛과 그림자의 길을 만들었다. 고개를 젖혀 음각이 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짜증이었다. 무엇이든 지나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호기심은 모눈종이 같은 세상 안에서 점점 줄었다. 나는 네모의 경계에 맞추는 것이 자라는 것인 줄 알았다. 집은 남들처럼 되려고 뛰어나가는 새벽과 지쳐 꼬부라져 돌아오는 밤의 장소가 되었다.


남편과 내 노력으로 집값을 쫓아갈 수 없게 되자, 엄마는 급히 노후자금을 털기로 했다. 은마와 미도 중에 초등학교를 품은 미도를 놓쳤던 엄마는 학교 정문에 붙은 아파트를 보고 여기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내게 나머지 집값을 감당할 의지가 있는지 몰라 조마조마한 목소리였다. 베란다에서 나무가 보였다.신도시를 개발하느라 끊어진 산자락이었다. 잘려나간 숲의 나무도 크는 걸까? 아름드리로 자라서 내게 올까? 뒤엉킨 나무에 취했다.

“응, 엄마. 저기 나무 보고 살면 소원이 없겠어.”


나무를 따라 내 가족이 살 곳을 정하고 보니, 결국은 신도시다. 아이가 물어오는 학교 친구와의 이야기도내 어릴 때와 비슷하다. 부모 직업과 평수 이야기다. 아이는 우리가 부자냐고 묻는다. 나는 감사하게 산다고 답했다. 아이는 다시 우리가 부자냐고 묻는다. 너는 남에게 상처 줄 말은 하지 말라고 답했다. 아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아파트를 벗어나 걸어보는데, 어릴 때 보던 풍광과 닮았다. 나무만 조금 어리다.

‘내 아이랑 같이 크는 나무겠지.’

70년대의 내 나라가, 빈약한 개발 정책이, 사회적 기여를 모르던 기업이, 경제적 성장과 부모의 성숙을 구별하지 못하던 어른들이 만든 세계에 머물고 만 내가 못마땅하다. 정부가 3기 신도시를 발표했다. 두 발로 네모만 따라 걷다가 호기심을 잠재운 아이가, 네모의 이름을 얻는 것을 꿈으로 여기는 어른들이 또 생겨난다는 소식인가 싶어 마음이 아프다. 그만, 내가 자란 동네의 이름을 외면하고 만다.


새로운 서울시장이 당선되고, 재개발 시장이 들썩 한다. 그곳이 또 조롱당하겠다. 관련 기사 제목에 ‘나무’가 눈에 띄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옆 동네에서 자란 이성민이란 사람이 재개발이 예정된 옛 아파트 단지를 찾았단다. 나무를 기억하는 사람들을 모아 나무를 돌며 산책하고, 나무에 이름 붙이고, 사진을 찍었단다. 그가 내 말을 한다.

“자라온 곳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시간이에요. 그런데 도시에 사는 우리는 고향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어요. 나무들 앞에 서니 비로소 느꼈던 것 같아요. 내가 바로 여기에서 자랐구나.”


나에게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나무였구나. 외로움을꾹 참고 집으로 돌아온 초등학생을 머리 흔들어 아는 체해주던, 강남대로를 혼자 걷는 고등학생을 빛과 그림자의 터널로 위로해주던, 남처럼 사느라 마음이 곪아가는 줄 모르는 청년의 시간을 굵고 어두운 밑둥치로 함께 버티던 나무들이 고향이었다. 고향을 떠난 게 자랑이던 부모에게서 난 우리와 터무니 없는 곳에 심긴 나무는 함께 자랐다. 나는 그 동네를 떠나왔는데도, 사교육과 부동산 투기를 조롱하는세간의 말마다 마음이 아팠던 이유도 찾았다. 여전히 그곳엔 나무들이 남아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치동을 말할 때 플라타너스의 아늑함을, 거실을 기웃대는 메타세콰이아의 이마를 얘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무를 알아채지 못하면 지금의 나 역시 잘려나간 모습이 된다.

 

나무가 고향인 사람은 그리움을 누구와 나누어야 할까. 다른 아파트 생일파티에 초대받지 못해 빈 놀이터를 배회하던 작은 아이를, 몇 동 몇 호 각자의 집으로 사라지던 뒷모습을, 현관방에 앉아 모험은 접고 문제집을 펴던 머리 숙인 그림자를 기억해 낸다. 우리는 같은 나무 옆을 지나쳤겠다. 그들 마음에도 고향이 자랐겠지. 내가 살던 아파트 재개발 소식이 들리면 나도 나무 보러 가고 싶다. 그러면 같은 고향을 가진 낯선 이들을 만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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