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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Nov 04. 2021

포개다

딸이라서

2009.7.30

이십  년의 서울을 떠나 경기도에 온 지 두 달이 되었다. 방충망까지 완전히 열어젖히고 흔들의자에 앉아 음악은 이십까지 볼륨을 높이고 앞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휴가지에 와서 푹 쉬고 있는 기분이 든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을 틀어 놓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노라면 생애 최고의 시간들인 것 같다.   

그저께는 엄마의 첫 제사였다. 엄마가 안 계신 일 년이 살아서 같이 산 육십 년 보다 더 많이 엄마 생각이 났다. 몰라도 된다고 툭 쏘아 붙이고… 내 인생에서 엄마는 몇 번째로 생각했을까. 귀찮아 한 적이 너무 많았는데. 아버지 제사에 가면 이 음식 저 음식 일주일은 먹을 만큼 싸 가지고 왔었는데. 여덟 집이 넉넉히 싸 갈 만큼을 혼자서 다 준비하고도 힘들다 한마디도 안 하시고…저 살기 바빠 부모한테 무심한 자식들을 보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엄마 정말로 미안해요. 왜 그렇게 냉정하게 굴었는지. 살아 계실 때는 내가 잘한 것만 생각나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모르는 척 못 들은 척 넘긴 것이 너무 많아 엄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네요. 다음 주에는 산소에 들를게요 편히 쉬세요     


2020. 1. 11

엄마는 몸이 피곤해서 혼자 전철을 타고 검사를 받으러 갔다가 곧장 입원을 했다. 이 검사 저 검사에 엄마 몸을 내어주고 있을 때, 나도 엄마 옆에서 무얼 할지 모르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해댔다. 주로 내 아이들 이야기였다. 엄마가 말했다.

“제일 중요한 이야기다.”

“뭐가 중요해?”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성경도 그 얘기 아니니?”

“난 그게 젤 지루하던데.”

“그게 젤 중요하지.”     


2020. 2. 26

엄마를 치료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엄마 옆에서 나를 위해 물었다.

“엄마, 엄마는 외할머니 떠나고 나니까 다 이해되고 용서되고 그런 게 있어?”

“아니. 죽어서도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묻고 싶은 거 있어.”

“진짜?”

“응, 내 인생 젤 기쁜 날 왜 그랬냐고. 아, 죽으면 하늘나라 가서 엄마 만나나? 나 불러다 또 일 시키면 어떡하지?”

예상했던 답은 아니었지만, 내게 엄마는 엄마의 엄마만큼 멍에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자 필요한 답을 얻은 마음이 되었다.     


2020. 3. 15

엄마가 떠났다. 20년 전 즈음, 엄마는 따뜻한 마루에 앉아서 빨래를 개고 있었나? 달그락거리며 지나던 내게 말했다.

“죽을 때는 밤 10시 반 쯤 죽는 게 좋아.”

“왜 10시 반이야?”

“그래야 한 시가-안 정도만 있으면 3일 장 중에 하루가 가거든. 그래야 자식이 안 힘들어.”

그 후 외할머니는 새벽 4시쯤 떠났다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로 겪은 상처를 우리에게 말로 전한 적은 없지만,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 무언가를 해 준 뒤, 허공을 바라보던 굳은 침묵 뒤에 “그게 엄마지.” 툭 뱉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밤 10시 21분. 엄마가 떠났다. 

   

2021. 1. 22

‘엄마가 블로그를 했었는데,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를 찾을만한 키워드를 이것저것 넣어 보았다. 찾았다. 엄마는 2009년 7월에 흔들의자에 앉아 방충망도 열어놓고 할머니 생각을 마음껏 했구나. 언니가 엄마 원망을 했을 때, 엄마는 가꾸던 마당 소나무 아래에서 목 놓아 울었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 했다. 형부가 말없이 쓰러졌을 때, 엄마는 50년 넘게 서울에 살았으면서 할머니에게 배웠을 부산말로 “와! 엄마 보고 싶노?” 하고 물었다. 사춘기 딸이 나에게 화를 집어 던질 때 나는 이제 엄마가 없는 게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어쩜 할머니는 엄마의 기억보다는 더 좋은 엄마였을 지도 모른다. 엄마가 울 때, ‘엄마아-‘하고 찾은 걸 보면.  

   

2021. 2. 24

엄마는 겨울이면 남쪽 바다에서 살고 싶다 했다. 왜 새겨듣지 않았을까? 엄마가 올레길을 걸을 때 메었던 배낭과 통영에 놀러 갈 때 신었던 꽃신을 제주에 싸 왔다. 당근에서 제주의 바깥 풍경과 어울릴 하늘색 소파도 샀다. 소파는 새벽 여명이 제일 예쁜 방에 바깥이 잘 보이도록 두었다. 엄마의 배낭과 꽃신도 올려 두었다. 엄마 가까이 지내던 시간, 남편이 말해 왔었다.

“당신 장모님이랑 진짜 똑같은데, 왜 장모님 말씀은 다 싫어해?”

“나 엄마랑 하나도 안 똑같애. 그런 소리 하지도 마!”

하늘색 의자방은 나랑 다른 엄마가 할머니를 그리워하게 두고, 나는 매일 아침 거실 창문을 연다. 방충망까지 완전히 열어젖히고 무어 더 내 엄마를 닮을 게 없나,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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