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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Nov 04. 2021

나는 거기 없고 여기 있습니다.

엄마라서

“오늘 하루는 괜찮았지만, 내 마음에는 슬픔이 있어요.” 저녁 식탁에서 오늘은 별일 없었는지 묻자 딸이 답한다. 내 자식이 겪는 아픔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다. 겪어보면 별거 아니라던가, 남들도 그렇다던가, 좋은 면을 나열하던가, 앞으로 나아질 거라고 아이를 달래는 말들을 하지만, 실은 내 아이 슬픔에 내가 머물러 있기 겁이 나서 벗어나려고 외는 주문일뿐이다. 눈이 크고 속이 깊은 딸을 키우는 동안, 아이의 눈이 흔들리고 밤에 혼자 깨어 우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딸 이야기에 내 마음이 아플 때면, 달래기보다는 같이 견뎌주자고 여러 번 마음을 먹어왔다. 되도록 평온한 표정으로 어떤 슬픔이냐고 물었다.

 


여기 오기 위해서 거기의 나는 없어졌어요. 나는 그곳의 나였어요. 인사하던 친구들, 나를 아는 선생님들과 반가워하고 시작할  있었던 시간이 사라져버렸어요. 거기의 나는 이제 없어요.” 마음 먹은대로 하려면, 원래 는 게  그런 거라고 겪지도 않은 일을 가르치려 들지 말아야 하고,  친구를 사귀면 된다고 슬픔을 느낄 시간을 빼앗지 말고, 제주에 와서 좋은 것들을 줄줄이 열거해서 아이가 느끼는 가치의 무게를 바꾸어 놓지 말아야 했다.

 


“맞아. 거기의 나는 없지. 엄마도 오늘 하루는 같은 이유로 좀 슬펐어.” “엄마도요?” “응, 외로운데 잘 지내는 것처럼 친구들에게 소식 전하기도 어색하고. 친구들 일상을 방해하는 것 같아 망설여지고. 오늘은 제주도 예쁜 사진이 아니라 혼자 먹는 김치 쪼가리 사진을 올리는 게 더 정직한 하루였어.” 딸 눈은 여전히 초롱하다.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딸의 슬픔을 방해하지 않았나 보다. “너는 학교생활까지 해야 하니까 엄마보다 더 힘들지.” “학교에서 나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선생님도 친절하고 친구들 번호도 저장했어. 학원 친구들이 재밌는 것도 알려주고.” “다행이야. 엄마가 좋은 걸 찾아서 제주에 왔지만, 그런 것까지 너에게 약속할 수는 없었거든.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 진짜 다행이다.” “응, 난 슬픔을 마음에 둔 채로 살고 있어요.” “그래, 우리 슬픈 채로 어떻게 사나 해보자.”

 


슬픔을 인정받은 딸은, 그 마음 그대로 미소를 띤 채 밥을 다 먹었다. 딸의 슬픔에 머무르고 나서, 나는 오전 중에 인스타 기록과 ‘거기’ 친구들과의 카톡 글짓기에 들이던 힘을 바라보았다. 딸아이처럼 그곳의 내가 사라진 슬픔을 통과하기보다, 과거의 사람들에게 나를 여전히 보아달라는 신호탄을 쏘고 있었던가. 글과 사진을 올릴 때마다 주저하고 허전했다. 나는 딸아이만이 아니라 내 마음도 피해 살고 있었나 보다. 제 마음을 고백해 놓고 밥을 먹고 잠드는 아이가 낯선 곳에서 나보다 앞서가고 있다. 이쁜 사진으로 옛사람들에게 봐 달라고 칭얼대는 대신 자기 슬픔을 통과하고 있으니 말이다. 딸에게 어떻게 되나 함께 살아 보자고 말해 놓고 다른 길로 가버리면 안 되지. 나도 아이처럼 그곳에서 사라진 내 존재가 전하는 슬픔을 고스란히 받기로 한다.

“나는 거기 없고,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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