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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기혜 Jun 27. 2024

02 김밥은 감각이다

김밥이란 무엇인가

<꼬리김밥>



툭, 탁, 달그락.

부엌의 소리는 둥그런 엄마의 몸이 움직일 때마다 난다. 

흔들어 날 깨우는 딸랑이처럼. 

오늘 엄마는 싱크대 앞에 서지 않고 바닥에 앉았다.

보송한 파마머리 꼭대기가 식탁 넘어 흔들흔들.

참기름 냄새는 부엌에 켜진 백열등 불빛처럼 짙다.

나는 반쯤 뜬 눈으로도 정확히 좋은 자리에 가 앉는다. 

물기 뺀 단무지, 기름 도는 당근채, 군데군데 누릇한 맛살, 소금에 절여 색 짙어진 오이, 지금 막 썰리는 지단, 모서리가 뭉그러진 우엉조림, ‘너희 햄 안 먹이려고’로 시작되는 고기볶음, ‘너희 시금치 많이 먹이려고’가 따라붙는 시금치. 시금치는 물기를 짠 손 모양을 그대로 머금어 두 주먹만큼 동그랗다. 김 펄펄 나는 밥과 반듯한 김은 엄마의 좌우를 지키는 백호 현무쯤 되나. 엄마는 학익진을 지휘하는 장군처럼 주저 없이 손을 뻗어 저게 다 들어가나 싶게 밥 위에 재료를 쌓는다. 김 끄트머리 살살 들어 올려져 손아귀에 딱 쥐어질 참이면, 엄마 얼굴 양옆으로 어깨춤이 실린다. 꾹꾹 눌리는 속들 육즙 뿜는 소리가 김발 사이로 비어져 나온다. 쿵 찍- 쿵 찍-. 오늘의 김밥 1호가 굽 달린 나무 도마에 놓이고 등 푸른 식칼로 썰린다. 엄마는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재료들 끝에 빈 접시를 놔두었다. 오마카세 세팅이다. 알알이 누운 김밥의 색에 잠은 다 물러갔다. 엄마는 꼬리가 맛있다고 하는데, 길고 짧은 채소가 무작위로 걸리는 꼬리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온전한 몸통만 골라 먹는다. 엄마는 ‘너희 골고루 먹이려고’ 김밥을 얼마나 열심히 쌌던 가를 말하고, 나는 오늘의 시금치가 입안에 맴돌아 ‘엄마 때문에’ 참고 먹는다. 예쁜 김밥은 내가 먹고, 내 도시락에 담기고, 내 선생님 도시락에 담긴다. 접시는 고개를 거꾸로 처박은 김밥 꼬리로 그득하다. 거기서부턴 기억이 없다. 그 많던 꼬리는 누가 다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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