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이란 무엇인가
서로 다른 집에서 자란 사람 여럿이 모여 김밥 백 줄을 싸 보자.
속재료를 정하다 보면 ‘김밥이란 무엇인가?’하는 깊고도 철학적인 질문으로 빠져든다. 누군가는 햄 없는 김밥은 김밥이 아니고, 누군가는 우엉이 들어가야 김밥이란다. 누군가는 우리 아이가 오이를 안 먹어서 빼야 하고, 다른 이는 평소에 안 먹으니 김밥에 만큼은 꼭 넣는단다. 누군가는 속이 많을수록 맛있으니 들어갈 건 다 들어가야 김밥이라 하는데, 조용히 있던 이가 이것저것 많이 넣기보단 간이 맞아야 하는 거라며 고수인 듯 툭 흘린다. 사공이 늘 때마다 김밥의 기준은 충돌한다. 누군가의 상식과 기준은 걷어내야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러니 이 일의 진행자라면 재료 합의를 첫 단계로 두어선 안 된다. 그저 ‘네, 그렇죠.’, ‘네. 알겠어요.’ 상대방의 김밥 부심에 진심으로 동의하고 장보기 목록에 성실히 받아 적는다. 그러나 장 볼 때는 장바구니에 담길만큼, 또는 예산이 허락하는 만큼, 혹은 내 기분 따라 담는다. 시작도 안 했는데 김밥 옆구리부터 찢을 순 없지 않은가.
여럿이 모인 부엌에서도 진두지휘는 사실 필요 없다. 목록과 무관하게 있을 건 있고 없을 건 없는 재료들을 가까이 선 사람들 무리마다 쓱 밀어주고 담 넘는 구렁이처럼 빠져야 한다.
“두 분은 당근 맡아주세요. 저랑 맛살 까실래요? 아, 계란 깰 그릇 얼른 드릴게요.”
조리법을 명시하지 않는 게 요령이다. 엄마가 모두 다르니 김밥의 기준이 태초부터 달랐을 이들이다. 오이 앞에만 해도 송송 채를 써는 사람, 길쭉하게 썰어 소금에 절이자는 사람, ‘나 오이 싫어하는데.’ 하는 사람이 만났을 수 있다. 어묵도 만만찮다. 기름기 빠지게 끓는 물에 데치려는 사람, 간간해야 좋다고 간장 넣어 졸일 준비 하는 사람, 매콤하게 자작자작 볶고 싶은 사람이 모였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입맛이 조종하는 두 손으로 백짓장을 맞든 이들의 옥신각신이 잠시 오간다.
“햄을 볶을까요?”
“데치는 줄 알고 물 올려 놨어요.”
“어묵(을 든 손이 절반쯤은 내가 원하는 양념을 향하는 채로) 어떻게 하실거에요?”
“제가 혹시 몰라 양념 챙겨 왔어요. 일단 썰죠.”
“지단 잘 부치세요?”
“김밥에 들어가는 건 두꺼워야 맛있으니까.”
당신의 기준은 의외요, 내게는 이런 비법이 있다는 대화들이 조심히 오가고, 한쪽에는 이견 없이 척척 합을 맞추는 팀도 있다. 그들 몸짓 속에는 “기준 같은 건 없는 게 김밥의 기준”이란 뜻이 들었을 거다.
재료 준비가 끝나면, 모두가 ‘아무튼 말아야 김밥이다.’ 생각에 이르는 순간이 온다. 여기서부턴 밥을 알맞게 까는 요령, 터지지 않을 만큼 재료를 가늠하는 눈썰미, 재료들이 한 덩이로 딱 조여들게 가하는 악력이 고루 필요하다. 각자의 부엌에서 풀어져 봤고, 터져 봤고, 칼 좀 갈아봤을 실패의 짬들을 모은다. 이 모든 것들이 김밥으로 수렴토록 하는 일에 무게를 싣느라, 한데 모인 사람들은 제 입이 김 끄트머리라도 되는 냥 꾹 여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