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기혜 Aug 22. 2024

26 달리기

제주에서 만난 김밥

한라산 등반 여행객들의 숙소가 많은 곳 서귀포시, 김밥 맛집이래서 찾아갔는데 메뉴판에 ‘김치 김밥’이 있다. 김밥 전문점이 막 들어서던 시절에 메뉴판에 흔히 보였던 것도 같은데, 어느새 매운맛의 자리를 제육김밥, 땡초김밥, 진미채김밥, 멸치고추김밥 등에 내어주고 한동안 드물어졌다.      


그럴만한 짐작이 된다. 물이 흥건하고 주변 재료들을 물들여 군냄새를 피우는 김치를 김밥의 속으로 다루기란 쉽지 않겠다. 남들이 안 하는 일을 이 집 사장님은 어찌 하고 계신가? 김치김밥을 주문했다. 받아 든 굵직한 김밥 중심에는 붉은 김치가 엄지손가락만큼 두툼하게 들었다. 배추가 말갛게 보일 만큼 국물은 꽉 짜냈고, 기름이 겉돌지 않게 볶아서 남은 수분도 날렸다. 깻잎에 돌돌 말아 붉은색과 냄새가 다른 재료에 옮아가지 않도록 해두었다. 손이 많이 갔겠다. 오랜만에 맛본, 김치맛 그대로 개운한 김밥이다.      


맛이 좋아 다음날도 들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이제 사장님 두 분이 보인다. 구부정한 자세로 고개 들 새 없는 여자 사장님, 두 팔 두 다리를 사방팔방으로 뻗으며 조리 보조부터 포장, 결제, 전화 주문까지 받아내는 남자 사장님. 1m 남짓 각자의 자리에서 몸짓이 깔아내는 무한한 트랙이라도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은 벗어날 생각을 않고 달린다. 웅크린 어깨에 구부정한 허리였다가 두 발을 내딛는, 양팔을 휘두르는, 달려 나가는 육상선수들처럼. 김치 한 줌을 장만한 긴 시간을, 길가에 차를 아무렇게나 대고 막 들어온 손님의 얄팍한 시간에 담아준다. 그러려면 이 방법뿐이라는 듯이, 두 사람은 달리기를 쉬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25 진밥과 고두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