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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는 인간 Jul 29. 2024

어색한 우리, 형제들

여덟 번째 이야기;  닮은 듯 닮지 않은

나는 평소에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 말라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어김없이 소설을 집어든다. 소설 속 인물의 감정을 좇아 울고 웃다 보면 말라비틀어진 내 감정에 근육이 붙는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통찰이 뛰어난 작가들의 작품을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위화 <형제>, 박완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여러 공통점이 있다. 인간 본성을 가장 깊이 이해한 작가의 형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소설 속 형제들 모두 그들만의 사정으로 갈등을 겪다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비극의 결말을 맞는다. 그리고 읽는 내내 무척 힘들었다.


내게 있어 형제는 가까우면서도 상처를 주는 존재였다. 너무나 익숙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해자이고 피해자가 되는 불편한 관계였다. 이런 이유로 소설 속 인물들에 내 감정을 이입해 읽다 보면 기쁨, 분노, 사랑 그리고 절망에 휩싸였다. 몰입은 자각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자기에 대한 이해가 없는 자각은 또다시 망각되었다. 지금은 관조하는 힘이 생겼다. 오래전 나만의 방식으로 형제들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정리했다.

 

집안 분위기

아내와 아이들은 명절이나 휴가 때 본가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도 별스럽지 않다. 즐겁지 않단다. 만나면 반겨주고 챙겨주고 해야 맛이 날 텐데 대면대면하니 아이들이 싫어할 만도 하다. 우리 집 형제들은 모이면 별다른 말이 없다. 속 깊은 대화를 나눠본 기억도 없다. 그렇다고 서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지도 않는다. 이삼십때에는 굳이 말이 없어도 이심전심으로 통한다 생각했다. 살아보니 모두 착각이었다. 집안 분위기는 내밀한 얘기다 보니 주위 사람들과 나누길 꺼린다. 궁금했다. 다른 집 형제들은 분위기가 어떨까?


들숨과 날숨

우리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숨을 쉰다. 들이키고 내뱉는데 어려울 것도, 힘들 것도 없다. 하지만 억지로 참으면 숨이 턱 막힌다. 누님은 장녀로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극진했다. 특히, 어머니와 관계는 아직도 분리가 되지 않으신 분이다. "큰아들 가르칠 만큼 가르쳤으니 당당하게 받으시라." 누님께서 어머니께 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내게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동안 내가 할 만큼 했으니 이제부터는 네가 해라." 결혼하고부터 자주 들어왔던 터에 아내에게 민망하고 창피했다. 오래지 않아 누님의 속내를 알게 되었다. 맏딸로서 부모님 챙기는 것들이 스스로가 아닌 억지로였다. 어머니께 싫다는 말 한마디 못한 채, 억지 효녀 소릴 들으려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싶었다. 그 피해는 오롯이 동생들의 몫이었다. 들숨이든 날숨이든 억지로 참는 순간 이렇게 큰 문제가 생긴다.


대화가 필요해

크고 작은 가족 행사를 치를 때면 누님과 나는 항상 의견차를 보였다. 누님은 어머니에 대한 독심술의 신공을 보이며 내가 내린 결정을 반대했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건 그게 아닌데 너한테 말을 못 했나 보다.” 결국 상황은 누님의 의도대로 정리되었다. 문제는 모든 책임과 부담은 장남인 내 몫이고, 누님은 결정과 생색만 낸다는 거였다. 내게 비친 현실은 어머니의 투채널 소통과 누님의 억지 효심이 빚어내는 촌극이었다. 두 분의 촌극에 슬퍼졌다. 뭐든 본인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누님, 책임질 게 없으니 하릴없이 수수방관하는 동생들. 애초부터 우리 형제는 대화가 없었으니 상황은 악화되어 갔다. 아내와 시댁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은 단호함이었다. 누님께는 경제적 부담을 모두 책임질게 아니라면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했다. 어머니께는 뭐든 필요하신 게 있으면 내게 직접 통하시라 말씀드렸다. 대화가 아닌 통보였다.


출생서열과 삶의 무게

오래전 동생과 사소한 말다툼을 벌였다. 발단은 누님과 나의 의견차였다. 내 결정을 사사건건 뒤집는 누나의 태도에 대해 동생에게 토로했다. 한 집에는 중심축이 있어야 하고, 내가 장남으로서 그 중심축이어야 한다는 말도 곁들였다. 내 입장에선 여태껏 장남으로서 모든 책임과 부담을 다했으니 당연하다 싶었다. 하지만 동생의 생각은 달랐다. "형, 하늘에 태양이 두 개면 뭐가 문제야?" 형이든 누님이든 그 누군들 어떠하냐는 거였다. 동생의 대답을 듣고 나니 우리 형제들의 문제가 보였다. 뭐든 책임은 없고 맏이로 행세만 하려는 누님, 사소한 거라도 형에게 미루는 동생들. 우리는 옳고 그름이 없었다. 출생서열은 권리가 아닌 책임이다. 맏이는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 자란다. 그래서 동생보다 더 많은 부담과 책임을 갖는 게 순리다. 결혼해 가정을 꾸리면 형제들의 문제는 더 이상 형제들 만의 것이 아니다.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배우자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형제간 존중과 배려가 제일 중요한 이유다. 나 또한 동생들 태도에 서운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부모님께 좀 더 받은 것 나눈다 생각하면 서운할 일도 없다.


윗사람 노릇

흔히들 윗사람에게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이 있다. 윗사람은 바램과 기대는 좀 내려놓고 여유와 아량을 가지면 좋겠다. 며칠 전 아내가 시댁에 대한 아쉬움을 얘기했다. "시댁이 경제적으로 좀 넉넉했으면 좋겠고, 시어머니도 좀 따뜻하고 인자하고 자식한테 잘했으면 좋겠고, 시누들도 동생들 위하고 윗사람 노릇 잘하는 그런 세련된 사람이면 좋겠고, 시동생들도 본인들 잘 살아서 자기 몫을 좀 해주는 성숙한 사람들이면 좋겠고, 동서도 연락도 좀 하고 그런 사이면 좋겠고.." 아내의 아쉬움을 돌아보면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이다. 나 역시 동생이나 제수씨에게 그런 형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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