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박스에서
겨울과 봄을 잇는 눈발이 날린다
한 계절이 다른 계절의 어깨를 붙잡고
마지막 말을 건네는 순간처럼
눈은 속삭이듯 날리며 내린다
오리 떼는 논바닥에 내려앉은
얼음 틈을 부리로 두드리며
얼음 아래 잠든 흙냄새를 깨우려는 듯
작은 생명들은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먼저 맞이한다
차가운 수면 아래에도 씨앗은 숨을 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미 초록은 첫걸음을 시작했을 것이다
물을 머금은 흙이 낮게 숨을 고르고
어디선가 부서지는 얼음 소리가
꽃망울을 부르며 잔잔히 울려 퍼진다
흐린 하늘은
태양을 더욱 또렷이 빛나게 만들고
빛은 선명할 때보다
가려졌을 때 더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른 가지 끝에서는
연두가 고개를 내밀 준비를 하고
빈티지박스 안에도
그 향기가 스며들어온다
한때는 차갑게 굳어있던 날
상자 속에 쌓여 있던 시간들
어느새 향기를 띠고 다시 피어날 준비를 한다
겨울은 완전히 물러나지 않았지만
봄은 이미 들어와 앉았다
눈과 꽃이
같은 공기를 나누는 이 짧은 틈에서
우리는 지나간 계절과
다가올 계절을 동시에 품는다
빈티지박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