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서 이루는 길 (22)

7-2. 7-3(1)

by 산바람

7-2. ‘나의 나무’가 있어요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나무가 있나요? 우리 반 친구들에게는 모두 ‘나의 나무’가 있어요. 3월에 우리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신 것이지요. 그 나무는 나만 알아야 하는 비밀 나무예요. 남에게 드러내거나 알리지 않기로 했거든요. 나의 나무가 내 친구와 서로 겹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잘 지켜내고 있기 때문에 괜찮아요. 학교에 올 때나 집에 갈 때, 심심해서 창밖을 볼 때, 체육을 하러 운동장에 나갈 때 ‘나의 나무’에게 눈길도 주고 속으로 인사도 해요.


나의 나무는 단풍나무예요. 나의 나무 근처에는 여러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어요. 그 가운데 나의 나무가 있는 거예요. 하지만 어떤 것인지는 더는 말하지 않을 거예요. 단풍이라는 말이 붉은 잎을 가진 나무라는 것을 일컫는 것처럼 가을이 되면 잎이 붉게 되지요. 나는 나의 나무와 많은 것을 나누었어요. 이름도 지어주고 하고 싶은 말도 하고 내가 잘못한 것도 밝히고 새로운 다짐도 말해 주었지요. 한 달에 한 번씩 친구들과 나는 ‘나의 나무’에게 편지도 쓰고 시도 쓰고 하고 싶은 말도 해요.


별명은 솔이에요. 내 동생은 거짓말을 하거나 핑계를 대거나 부끄러울 땐 얼굴이 붉어져요. 그래서 우리 식구들은 바로 알 수 있는데 동생은 그런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요. 가끔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지만 동생에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나의 나무도 거짓말을 하지 못해서 아니면 거짓말을 하면 부끄러워서 빨갛게 된다는 상상을 하니 왠지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동생 이름과 내 이름에 들어 있는 글자를 따와서 ‘솔’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생일은 처음 만난 날이 3월 9일이에요. 물론 진짜 생일은 아니지요. 나는 나무와 더불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있어요. 돌돌 말려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난 작은 잎, 아무도 몰래 떨어져 내린 연두 빛 꽃, 열매, 연두 빛에서 초록색, 초록색에서 짙은 초록색 그리고 붉은 색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모두 보았어요. 나의 나무도 이렇게 나무도 철이 드나 봐요.


사실 나에게는 외할아버지께서 심어주신 나의 오동나무가 있잖아요. 그런데 아직까지 이름을 붙여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주 많이 미안했어요. 나는 나의 오동나무에게 ‘우륵’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왜 ‘우륵’이냐고요? 오동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속이 비어 있어서 악기를 만들었을 때 떨고 울림이 잘 된다고 해요. 그래서 가야금이나 거문고를 만들 때 쓰인대요. 우리나라 악기인 가야금을 만든 우륵선생님의 이름도 기릴 겸 ‘우륵’이라고 지었어요. 학교 가는 길모퉁이에서 자라고 있는 오동나무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지 못하게 되었어요. 얼마 전에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면서 주차장을 만든다면서 오동나무를 베어버렸어요. 그것을 발견하던 날 너무도 마음이 아파서 하루 종일 슬펐어요. 그 오동나무가 있으면 그 가게 더욱 멋지게 보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오동나무가 없다고 차를 더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내가 막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어떨 때는 나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아요. 어쩌면 내가 나무에게 털어놓고 싶은 말인지도 모르지요. 그 전까지는 운동장에 있는 나무는 그냥 나무였지요. 아니 나무가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르고 지나쳤어요. 나는 나의 나무 덕분에 둘레에 있는 나무의 이름을 꽤 알아요. 느티나무, 무궁화나무, 대나무, 향나무, 은행나무, 회양목, 버드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감나무. 어떤 나무는 크기나 잎사귀만 봐도 알아맞힐 수 있는 것도 있어요. 우리 학교에는 나무들이 많아서 좋아요. 이제는 모든 나무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요. 내가 이렇게 나의 나무에 대해 말했어도 여러분이 우리 학교에 온다고 해도 어떤 나무가 내 나무인지 잘 모르겠지요? 내가 나의 나무에 대해 털어놓을 때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무인지는 비밀로 했으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꼭 말할 게 있어요. ‘나의 나무’라는 것은 나만의 나무는 아니에요. 어떻게 나무가 나만의 나무일 수 있겠어요. 나의 나무에서 ‘나’는 모든 난 것을 말해요. ‘나무’는 ‘나다’에서 온 말로 난 것임을 뜻하는 ‘남’이라는 말이래요. 세종대왕님이 계시던 시절에는 나무를 ‘남’이라고 했어요. 용비어천가라는 노래에 나오는 ‘불휘 기픈 남가ᆞ간’이라는 말은 오늘날 ‘뿌리 깊은 나무는’ 라고 해요. 사람인 나도 난 것이고 나무도 난 것으로 모두 나예요. 났나는 것으로는 사람인 나와 나무인 나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나의 나무는 나만의 나무가 아니라, 나인 나무라는 뜻이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지구가 나의 몸의 한 쪽이 되고 내가 지구의 한 쪽인 것처럼 나인 나무이기도 하고 나무인 나이기도 해요. 어쩌면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조금 깊게 생각해 봐요. 오롯이 나인 것이 있을까요? 오롯이 나라고만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나의 나무’를 갖게 한 것은 여러 가지 뜻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고, 나있는 모든 것이 나와 같은 뿌리라는 것을 알게 하고, 목숨을 지닌 것을 귀하게 여길 줄 알게 하고, 모든 것까지 고루하고 두루 하면서 어울리라는 뜻일 거예요. 처음에는 ‘나의 나무’에만 마음을 주지만 차차 주변에 있는 나무나 풀, 바람, 비, 햇살, 사철 그리고 나의 느낌과 생각이 마주하고 엮어지면서 것의 한 쪽인 나를 느끼고 생각하도록 하려는 것일 거예요. 이건 오로지 내 생각이지만 어쩌면 나무도 나를 가졌을지도 모르겠어요.

4월에는 나의 나무에게 동생도 생겼어요. 바로 교실에서 가꾸는 화분이에요. 나의 화분에는 장미허브가 심어져 있어요. 우리 반 친구들이 장미 냄새를 맡고 기분이 좋아지라고 산 것이에요. 장미허브는 모습이 장미하고는 하나도 닮지 않았어요. 엄지손톱 크기의 초록색 잎은 통통하고 줄무늬가 있는데 살짝만 건드려도 장미꽃 냄새가 나요. 5학년 때까지는 화분은 그냥 화분이고 나무는 그냥 나무였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나무는 나무지만 그냥 나무는 아니에요. 모두와 함께 어울려 있는 것으로서의 나의 쪽인 나무예요.

여러분도 나의 나무를 사귀어 보세요. 졸업을 하고 이다음에 배움터에 찾아오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은 만날 수 없지만 나의 나무는 나를 반겨줄 거예요. 그 때까지 누군가 나의 나무를 잘 지켜봐주고 돌봐주었으면 좋겠어요. 내 친구는 졸업 사진을 친구의 ‘나의 나무’ 옆에서 찍을 거라고 해요. ‘친구야, 눈치 채지 않게 찍어. 비밀이니까.’


나의 나무는 해와 바람과 비와 흙이 키워주어요. 나무는 그렇게 절로 자라나지요. 하지만 내 화분의 장미허브는 내가 돌보지 않으면 죽어요. 화분은 오직 나와 친구들을 위해 화분에 갇혀서 길러지는 것이에요. 그러고 보니 내가 기르는 왕소라게도 외할머니께서 기르는 구피도 오직 사람만을 위해 길러지는 셈이네요.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허브장미를 학교 꽃밭이나 외할머니네 꽃밭에 심을까? 왕소라게를 동네 웅덩이에 풀어줄까?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은 오히려 그들의 목숨을 해치는 일이예요. 추운 겨울에 허브장미는 얼어 죽을 것이고, 소라게는 자라게 되면 큰 껍질이 없어서 죽어버릴 거예요. 아아, 처음부터 키우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며칠 동안 이 생각이 떠오르면 마음이 괴로웠어요.


7-3(1). 나의 바람은 어떤 바람일까요

나의 나무인 오동나무도 나의 나무의 동생인 단풍나무도 사람인 나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는데 나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해주면서 살아가고 있을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일까요? 나는 어떤 구실을 하며 살아야할까요? 나의 바람은 무엇일까요? 나의 바람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바람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해 줄게요. 바람은 무엇일까요? 공기의 흐름이라고요? 예. 맞아요! 그러나 그것 말고 바람이라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선생님과 친구들이 바람을 깊이 묻고 따진 이야기 해 줄까요?

“‘바람’이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나요?”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자 친구들은 이런 답을 했어요. 날아단다, 흔들린다, 태풍, 해일, 마른다, 시원하다, 공기, 숨을 쉰다, 불, 돛단배, 비행기, 선풍기, 에어컨, 공기 청정기, 커튼, 타이어, 보이지 않는다, 느낀다, 안다, …. 아마 한 명도 빠뜨리지 않고 말했을 거예요.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둘러보시더니 “이 가운데 으뜸인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물으셨어요. 우리는 “숨을 쉰다.”라고 답을 했지요. 선생님께서는 흐뭇한 웃음을 웃으면서 말씀하셨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여러분은 어떤 것을 하고 싶을 때 ‘바란다’라고 하 지요. 그리고 ‘바람’이라고 하잖아요. 바람이 없으면 우리는 숨을 쉴 수 없어요. 바람과 마주하는 숨 탄 것들이 하는 일 가운데 으뜸인 것은 바로 숨이에요. 바람은 숨을 쉬게 하고 우리는 숨을 쉬지요. 그래서 으뜸인 바람이 뭔지 알아요?”

우리는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어요. 선생님은 말씀을 이으셨어요.

“사람마다 바람이 달라요. 누구는 저만 잘 되기를 바랄 수도 있고, 누구는 저들끼리만 잘 되기를 바랄 수도 있고, 누구는 남까지 잘 되기를 바랄 수 있고, 또….”


우리들 가운데 몇몇이 “것까지 잘 되기를 바랄 수 있어요.”라고 크게 말했어요. 지난번에 말씀 해 주신 것을 기억하고 있던 친구들이에요. 우리는 모두 활짝 웃었어요.


“그래요. 바람은 사람마다 갈래도 다르고 크기도 달라요. 그런 온갖 바람 가운데 으뜸인 바람이 바로 사는 것이지요. 오래도록 잘 사는 바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숨을 쉴 수 없으면 살 수 없어요. 아무리 살아도 바람이 없이 살면 그냥 살아지는 거지요. 사람이 숨을 쉬는 것은 바람 덕분에 절로 하게 되지만, 바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제 뜻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사는 바람과 이루는 바람이 우리에게 으뜸인 바람인 거지요.”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말하지 않았던 바람까지 낱낱이 말씀해 주셨어요. 바람에 그런 뜻이 담겨있었다니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어요. 맞아요! 바람이 숨을 쉬도록 해야 내가 숨을 쉬는 거예요. 바람과 내가 숨 쉬는 일을 하는 거예요. 내가 쉰다고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쉬도록 해야 내가 숨을 쉬는 거예요. 그런데 ‘숨을 쉬다’고 할 때 ‘쉬다’가 뭘까 궁금했어요.


“선생님, 쉬다가 뭐예요. 숨을 쉬다고 할 때와 우리가 쉬는 시간에 쉬는거랑 글자가 같아요.”

“좋은 질문이에요. ‘쉬다’에서 ‘숨’이라는 말이 나왔어요. 숨만 쉬는 것이 쉬는 거예요. 숨을 참아보세요.”

우리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숨을 참았어요.

“어떤가요?”

“힘들어요.”

“그래요. 숨은 참으면 힘 드는 거예요. 숨을 쉬면 쉬는 거지요.”

“예?”

“일을 하면 힘들고 일을 하지 않으면 힘들지 않잖아요. 그런데 숨은 쉬지 않으면 힘들고 쉬면 힘들지 않아요.”

“와!”


우리는 뭔가 홀린 것 같았어요.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숨만 쉬어야 하는데 더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웠어요. 그럼 쉬는 시간에 쉬지 못한 셈이 되는 거잖아요. 나는 속으로 웃었어요.


나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까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내가 동물이나 식물로 살 수는 없잖아요. 내가 사람으로서 가진 가능성을 이루며 살아야 해요. 사람의 가능성으로 잘 생각하고 잘 가지고 잘 쓰고 잘 버리며 살아야 해요. 사람은 말을 할 줄 알고 생각을 할 줄 아는 가능성과 힘을 지녔어요. 말을 잘 어우르고 아울러서 쓸 곳과 쓸 데와 쓸모를 살펴서 살아야 해요. 마음으로 알아주는 것을 바탕으로 봐주고 도와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해요. 나는 내가 잘 하는 일로 나의 가능성을 펼쳐갈 거예요. 내가 바라는 것, 내 꿈이 무엇일지 맞춰 보세요. 내가 바라는 바람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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