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임자인 나 7-1.
7. 임자인 나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데 추우면 몸과 마음이 움츠러들고 내가 작아지는 것 같거든요. 할아버지께서 그러시는데 예전에는 사흘은 춥고 나흘은 따뜻했대요. 한동안 봄처럼 포근하더니 벌써 2주일째 마냥 춥기만 해요.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이상하게 바뀌어서 그런가 봐요. 여름은 지나치게 더워지고 겨울은 지나치게 추워지는 날이 많아졌어요. 선생님이 한 말씀이 떠올라요.
“우리나라의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매년 느껴요.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지난 여름에는 내내 장마철이었어요. 장마가 끝나면 무더위가 계속되었는데 이어서 태풍이 줄줄이 왔지요. 기후 변화가 이렇게 느껴지는 경우가 드물지요.”
지금 창밖에는 싸락눈이 내리고 있어요. 날씨가 푸근하면 함박눈이 내리고 날씨가 싸늘하면 싸락눈이 내린다지요. 지난 겨울방학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외할머니네로 눈을 치우러 간 적이 있었어요. 마을 어귀의 소나무 가지가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찢어진 것을 보고 눈의 무게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올해도 외할아버지네 동네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사람들이 꼼짝을 못하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방학이라 가족 모두가 외할아버지네로 갔어요.
아버지는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에 올라가서 눈을 쓸어내렸어요. 지붕이 무너질지도 모르고 또 두껍게 내린 눈이 녹을 때 천장이나 벽에 물이 샐지 걱정이 되어서예요. 나와 어머니는 대문과 장독대까지 가는 길을 냈어요. 추운 날씨였는데도 땀이 났어요. 그리고 아버지와 나와 동생은 아주 커다란 눈사람을 7개나 만들었어요. 우리 가족들이에요.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나, 그리고 동생. 동생이 서울에 혼자 계시는 할아버지 눈사람도 만들자고 했어요. 할아버지 눈사람을 만들지 않으면 삐치실 수 있다고 해서 모두 웃었어요. 어머니께서는 손전화로 눈사람을 찍어서 서울에 계신 할아버지께 보내드렸어요. 동생은 막내 눈사람에게 목도리를 감아주었는데 저녁에 목도리를 가지러갔더니 뻣뻣하게 얼어있었어요. 어머니께서 얼어버린 목도리를 억지로 벗기려다 꺾이면 끊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물은 얼면 새로운 힘을 갖게 되나 봐요.
다음날은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동네로 들어오는 길에 쌓인 눈을 치웠어요. 동네 아저씨께서 서울서 눈을 치우러 왔냐며 반가워하시면서 힘이 돋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날 점심으로 먹은 감자옹심이 맛은 정말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날씨가 추우면 사람들이 힘들어 해요. 할아버지께서는 예전엔 겨울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많이 내리면 다음 해의 농사가 잘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할아버지, 왜 날씨가 추우면 농사가 잘 되나요?”
“날씨가 추워지면 해충이 죽고 눈이 많이 내리면 땅속에 물기가 많이 있어서 봄철에 비가 내리지 않아도 농사를 짓는데 좋았지. 요즘은 모두 비닐하우스로 재배를 하니까는 날씨가 너무 추워지면 비닐하우스 안을 따뜻하게 해주면 되지.”
“아, 그래서 딸기가 겨울에 나오는 것이군요. 학교에서 딸기는 여름에 나온다고 배웠는데 요즘에 벌써 딸기가 나오잖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러려면 많은 힘(에너지)과 돈도 들어가고 그러면 딸기나 채소 값이 비싸지는 거예요.”
“눈이 많이 내리면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큰 해를 입게 되잖아요.”
“그래. 그 뿐만 아니라, 날씨가 추워지면 산짐승들이 먹이가 없어서 굶어 죽거나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에게 손해를 입히게 된단다. 그래서 어떤 마을 사람들은 산짐승들은 죽이는 덫을 놓거나 산짐승들이 마을까지 내려오지 못하게 산 입구에 먹이를 두고 오는 경우도 있단다.”
“예. 뉴스에서 봤어요. 계절의 날씨에 따라 사람들의 살림도 크게 바뀌는군요.”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요. 이번 가을에도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가을걷이를 도우러 왔었지요. 하루는 어둑어둑한 새벽에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산밤을 주우러 갔었어요.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밤을 주우러 간다는 마음에 따라나서는 동생의 걸음이 비틀거렸어요. 아버지와 나는 동생의 손을 꼭 잡아주었어요. 산밤은 우리가 사먹는 밤보다 아주 작지만, 토실토실하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밤을 주울 때의 기분은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뿌듯했어요. 아버지를 따라 밤나무가 있는 곳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어요. 산밤은 누가 심은 것이 아니어서 여기 저기 밤나무를 찾아다녀야했어요. 키가 커서 밤송이를 털 수 없어 그냥 바닥에 떨어진 것을 주워야 했어요. 바구니에 밤이 하나씩 담길 때마다 무척 재미가 있었어요. 동생이 벌레가 먹은 것을 버리려고 하자 아버지께서는 바지 주머니에 넣으셨어요. 아버지께서는 나뭇가지를 주워서 밤송이를 까는 것을 가르쳐 주셨어요. 처음에는 헛짓을 하였지만 조금 벌어진 틈에 나뭇가지를 넣어 힘을 주어 밀어내듯 하니 가시가 떨어져 나가고 속에 들어있던 예쁜 밤들을 챙길 수 있었어요. 어느덧 날이 밝아져 이슬이 달린 풀들이 반짝거렸어요. 거미줄에 달려 있는 이슬이 참 아름다웠어요. 우리는 제법 깊은 산속까지 들어왔어요. 이제는 바구니는 가득하고 나와 동생의 바지 주머니까지 불룩해졌어요. 아버지께서는 뱀이 햇볕을 쬐러 나올지 모르니까 산을 내려가자고 하셨어요.
아버지께서는 앞장서서 길을 내시면서 바구니 속의 밤을 여기저기에 뿌리셨어요. 나와 동생은 깜짝 놀라서 까닭을 물었어요.
“이 산속의 밤은 산짐승들의 몫이란다. 우리가 다 거둬 가면 겨울에 무얼 먹고 사니? 사람 입만 입이 아니잖니? 그리고 우리는 밤을 줍고 밤을 까는 재미를 누렸잖니.”
나와 동생은 말없이 밤을 꺼내서 여기저기 뿌려주며 내려오다 보니 바구니의 밤이 반밖에 남지 않았어요.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께서 “밤 많이 주워왔니?”라고 물으시면서 바구니를 들여다보셨어요. 나와 동생은 약속이라도 한 듯, 어리둥절해 하시는 어머니께 “우리 입만 입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어머니께서도 무슨 뜻인지 알고 활짝 웃으셨어요. 동생은 불룩한 바지 주머니에 어머니의 손을 갖다 대면서 으스댔어요. 주머니의 밤을 쏟으니 제법 많았어요. 아버지께서 벌레 먹은 밤을 꺼내시자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어요.
“벌레 먹은 밤이 더 맛나지. 벌레들은 맛없는 것은 안 먹지. 벌레 먹은 곳을 잘 도려내서 먹으면 돼. 벌레들은 누가 먹은 것은 먹지 않아서 그대로 썩어 버리니 아깝지. 그래도 나무들에게는 거름이 되지.”
나는 참 큰 것을 깨달았어요. 자연이 키운 밤나무, 그 열매를 동물과 사람이 나눠 먹어야 한다는 것, 나무는 사람도 동물도 나무도 살도록 한다는 것, 동물이 못하는 것을 사람이 헤아려야 하는 것, 나는 갑자기 내가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 좋아졌어요. 아침을 먹으면서 할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예전에 농부들은 콩을 심을 때 세 알씩 심었단다. 왜 그랬을까?”
“한 알만 심으면 싹이 안 날 수도 있어서요.”
“혼자면 외로워요.” 동생도 거들었어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한 알은 날짐승들이 먹고 한 알은 들짐승들이 먹고 나머지 한 알은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야. 산짐승들이 겨우내 먹을 것이 없어 사람이 사는 곳까지 와서 해를 입히게 되고 그러면 사람들은 그 짐승을 죽일 수도 있어. 너희들이 산밤을 주우러 간 것은 먹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라, 그냥 재미삼아 간 것이라고 쳐야 해. 너희들의 재미는 산짐승들에게는 겨울철 목숨이 달린 먹을거리이지.”
나는 주머니에 밤을 가져온 것이 참 미안했어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한 일로 이야기를 돌렸어요.
“그러니까 아빠가 한 일은 잘 한 일이라는 것이지요.”
“아빠가 잘 했어요!”
또 동생이 나를 따라 거든다. 동생이 아빠에게 뛰어가더니 아버지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아버지는 동생을 번쩍 안아주셨다. 우리는 궁금했다.
“글쎄, 솔이가 다 주고 올 걸 그랬다는 구나! 우리는 사 먹으면 된다고 하 면서. 그럼 돈은 누가 내나? 하하하하!”
나는 동생이 기특했어요. 어린 나이에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에 놀랐어요. 나는 사람과 동물은 환경에 맞춰서 살아가는 자연의 한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 동물도 생각하고 자연도 생각하면서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뭐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어요. 나는 가끔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푹 빠져버려서 어머니께 꾸중을 듣기도 해요. 이런 생각들은 책을 읽거나 어른들의 말씀을 듣거나 뉴스에서 들은 것을 기억하거나 내 멋대로 이러 저리 이어 붙인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책을 읽을 때 생긴 버릇이 있어요. 말을 들으면서 책을 읽어나가면서 머릿속에 나만의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을 쓰게 되는 버릇이에요. 예전에는 그냥 말을 듣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려고 애쓰거나 책을 읽으면 무슨 뜻인지 알아내려고 애를 썼어요. 그러나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떠오르거나 그 생각을 재빨리 쓴다는 거예요.
7-1. 나는 점점 큰사람이 되어가요
올해 나는 으뜸 학년이 되어 학교에서 맏언니로서 참 많은 것을 했어요. 누구나 6학년이 되면 그러잖아요. 나는 내 힘이 닿는 대로 학교생활을 했어요. 내 동생이 학교에 들어오면 누군가가 이렇게 본보기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힘닿는 대로 참 애써서 했어요.
나는 6년 동안 불우이웃돕기 성금, 유니세프에서 하는 모자 뜨기, 굿 네이버스에서 하는 사랑의 저금통과 편지쓰기, 크리스마스 씰, 김만덕 쌀 모으기와 같은 행사에 모두 참여했어요. 또 가끔 텔레비전에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애쓰며 사는 내 또래를 볼 때 전화를 걸어요. 그러면 전화 한 통에 천 원, 또는 삼천 원씩 돈을 낼 수 있어요. 나와 같은 마음들이 모아져서 누군가가 힘이 얻어 살기를 바랄뿐이에요. 어른들에게 받은 용돈을 모으거나 심부름으로 받은 돈을 모아서 도움을 주니까 더욱 뿌듯하고 보람이 있어요.
나는 집에서 소라게 4마리를 길러요. 엄마를 졸라서 동생이 문방구에서 사온 것인데 기르는 것은 제가 기르게 되었어요. 소라게의 종류는 인도왕소라게인데 이름은 싯다르타와 그의 제자들이에요. 싯다르타는 아직 부처가 되기 전의 왕자 때까지의 이름이에요. 삶이 뭔지 깨달아보려는 사람들처럼 매일 껍데기를 둘러쓰고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여요. 처음에는 소라껍데기의 모양과 색으로 이름을 붙였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글쎄 밤중에 몰래 다른 껍데기로 바꾸고 시치미를 떼지 뭐예요. 그래서 집게발의 색깔과 크기 따위로 이름을 붙였어요. 가장 커다랗고 허연색 집게를 가진 싯다르타, 두 번째로 크고 검붉은 색의 집게를 가진 제자 1, 세 번째로 크고 검붉은 색의 집게를 가진 제자 2, 제자 2와 크기는 비슷하나 조금 옅은 갈색의 집게를 가진 제자 3.
한밤중에는 소라게집의 벽이나 빈껍데기에 부딪쳐 딸그락딸그락 소리가 들려요. 소라게들은 그림자만 비춰도 깜짝 놀라서 껍데기 안으로 숨어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아요. 소라게가 움츠리는 것이 재미있지만 소라게의 처지를 생각해서 일부러 괴롭게 하지 않아요. 동생에게도 단단히 말해주었더니 가만히 보기만 해요.
어쩌면 소라게를 기르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요. 소라게가 원래 살던 곳에서 살도록 그 터를 보살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런데 만약 동생이 사온 소라게를 나도 기르지 않았다면 소라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