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째 둘 째날
우리가 일본에 도착한 날은 학교 입학하기 10일 전쯤인 3월 20일 정도로 기억한다.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리무진을 타고 일본 신주쿠로 갔다. 결혼하고 한 달 만에 그것도 갓 임신한 몸으로 출발한 일본은 낯섦 그 자체였고 몸 안에 새로운 생명체가 자라고 있어서 변화가 예빈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가고 싶은 유학길에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모든 것이 신기해서 기대로 설렘으로 가득했다.
일본날씨는 그날도 회색 빛이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밝은 빛보다는 봄비인 듯 비가 가볍게 내리는 우중충한 날로 기억한다. 나는 일본날씨에 외투가 어울린다고 했기에 결혼할 대 장만한 바바리코트를 입고 출발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한 달 정도였기에 그냥 신혼여행의 일부인 듯 행복했던 거 같다. 그 앞날에 대한 불안감도 없이...
우리 일행은 4명이었다.
오빠친구, 오빠, 그리고 우리 부부, 신주쿠역에 내린 시간은 저녁 무렵으로 기억한다. 신주쿠역 니시구치(서쪽입구)에서 저녁을 먹으러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오빠 친구가 일본에 유학한 적이 있기에 우리를 안내해 주었고 저녁으로 카레를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 거리를 구경하면서 숙소를 찾아다녔다. 그때 처음으로 히가시구치(동쪽입구)를 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히가시구치는 한국거리도 있고 음식점도 많은 곳이었다. 신주쿠의 도회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조금 오래된 듯한 건물로 즐비하다. 오빠가 우리 부부가 묵을 숙소를 찾아주었는데 참 야릇함 분위기의 숙소였다. 방 안에 거울이 사방에 달려 있었고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우리가 신혼부부이긴 했지만 민망해지는 방이었다.
일본에서 살 집을 얻기 위해 전철을 타야 했다.
남편과 같은 학교를 랭지지코스로 처음에 지원했는데 나만 떨어졌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의 학교를 다녀야 했다. 남편은 신주쿠에서 40분 정도 전철을 타고 가야 하는 하치오지라는 곳이고, 나는 도쿄 시내에 있는 일본어전문학교였다. 집은 두 학교의 중간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이세키 사쿠라가오카라는 곳에 얻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집을 얻으려면 보증인 제도가 까다로웠는데 우리는 다행히 오빠친구가 유학당시 아는 분이 있어 소개받기로 했다.
보증인인 이나바상이 히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나바상 집은 일본집으로서는 정말 큰 저택이었다. 일본에 9년 살아보니 그 집이 얼마나 컸는지 점점 실감하게 되었다. 50대 중반정도의 단아한 모습의 미인으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는데 오빠친구와는 유학시절에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오빠친구가 이나바상이 재혼한 거 같다고 했는데 남편은 집에서 만날 수 없었다. 거실로 들어가서 우리는 차를 마시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요리를 좋아해서 단골 한국가게도 있다며 얼마나 본인이 한국인과 한국을 좋아하는지를 말해 주었다. 본격적인 일본생활에 앞서 그녀는 우리에게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게 해 주었다.
그 후 집 안내를 해주었는데 나중에 알았지만, 이나바 가문은 에도시대 명장 가문이었다. 그 집은 구옥과 신옥으로 되어 있었고, 신옥에서 구옥으로 복도를 따라가면 한 공간이 옛날 무장이 입던 갑옷과 투구 신발 등이 마치 살아서 옷을 입고 있는 듯 전시되어 있었다. 그 몇 채나 서 있는 모습은 왠지 옛날 사람이 살아 돌아올 듯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