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by 일조

역세권 아파트를 사면서

처음 계획은 이랬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짧으니

집에 와서 저녁 간단히 먹고

저녁 시간을 즐겨 보자.

첫 문장은 맞았고

두 번째 문장부터 달라졌고

세 번째 문장은 다시 맞았다.

집에 와서 저녁 간단히 먹고 가

생각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아무리 짧아도

퇴근은 퇴근인지라

집에 와서는

누구도 저녁을 준비하고 싶지 않았고

- 이 글은 맞지 않다.

정정한다.

사실 저녁을 준비하는 것은

늘 아내였기 때문이다 -

그런 덕분에

집 근처에 퇴근하고 나서

먹을 만한 밥집을 알게 되었다.

저녁에 퇴근할 때면

그날 날씨와 해 질 녘 분위기와

하루 동안 보냈던 기분들의 조건으로

먹고 싶은 입맛이 생긴다.

저녁에 먹고 싶은 게 뭔지 물어보면

오늘 아내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감이 오는 느낌이랄까.

정말 기묘하게도

나와 아내는 그날 먹고 싶은 맛이 같은 적이

정말 많았다.

고기를 먹고 싶다.

양념된 고기 말고

담백한 생고기라든가,

빨간 국물 맛이라든가,

뭔가 따뜻한 거라든가,

신선한 맛이 먹고 싶다든가,

오늘은 회라든가,

그중에 드물게 찾아오지만

정확히 같은 맛이었던 것이 있다.

집밥이었다.

집밥은

집에서 먹는 밥이 아니라

갓 구운 생선과

갓 무친 나물과

방금 지은 것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과

실제로 집에서 밥 먹을 때

올라오지 않는 반찬이 있는,

이를테면 도라지오이무침 같은

반찬과

김이 있는 밥상이었다.

다행히도

우리 집 근처는

밥집이 있었다.

심지어 이름에도

엄마가 들어간다.

이름을 넣어도 된다고

허락을 받지 않고 쓰는 글이기에

상호명을 쓰진 못하겠다.

그 집에 가면

정말 희귀한 장면을 볼 수 있다.

항상 밥을 조금만 먹고

나에게 덜어주는 아내가

제 몫의 밥 한 그릇을 다 비우는 모습이다.

그뿐 아니라

국그릇에 담겨 나오는 국도

거의 다 호로록 먹곤 한다.

나는 그 모습을 보게 된 것이

너무 신기하고 좋아서

기억에 한 장 담아 두었다.

같이 맛집은 많이 다녀 보았지만

아내가 집에서 편하게 저녁 먹듯이

홀가분하게 한 그릇을 다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은 소중하다.

그래서 나는 동네가 더 좋아졌다.

백반집뿐이 아니다.

우리 동네는 중소업체들이 종종 보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집들도 많다.

- 나는 단어를 많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유리창에 붙어 있는 글에서

한 글자도 알아보지 못한 가게도 있었다.

에시다? 그 비슷한 말이었던 것 같다.

아내는 공장 지대에서 단추 구멍을 만드는 데

쓰이는 말 같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중소업체들이 많은 동네가

맛집이 많다고들 한다.

여기서 맛집이라 함은,

내는 돈에 비해

얻는 양과 맛이 많다는 뜻이다.

그 말이 맞았다.

아내와 실컷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도

계산을 치르고 나면

돈을 번 기분이 든다.

가장 비싸게 주고 먹은 밥이

14,000원이었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백반저녁은

7,000원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짜장면은

3,000원이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서면

아내에게 이렇게 말을 하곤 한다.

여보,

우리 여기서 돈 많이 모읍시다.

외식을 하면서

이런 말 하는 게 맞아???

하면서도 그런 대화를 나눈다.

맞벌이 부부가

먹는 문제를 기분 좋게 해결하는데

좋은 동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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