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 맞벌이를 할 때
로망이 있었다.
둘 다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지라
늦은 시간에 퇴근하여
우동을 한 그릇 먹으면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회사 욕을 실컷 하는 로망이었다.
아내가 은퇴를 결심하고
이내 시행해 버려서
나의 로망은 이뤄지지 못한 채
흐려지고 있었다.
허나 세상 일은 모른다.
은퇴하고 마냥 행복하게 살던
아내가 어느 날
남은 삶에 의문을 갖게 되었고
그 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
예전 직장 동료가
좋은 자리를 제안해 주었다.
그렇게 아내는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했다.
눈치챘겠지만
서설을 길게 쓰는 이유는
로망을 이뤄서다.
그렇다.
요즘 나는 퇴근하고
아내와 함께
동네 아지트에서
늦은 저녁밥을 먹으며
회사 이야기를 나누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 아파트는
주변에 아지트 삼을 만한 곳이 많다.
아주 예전에 유행하던
형 어디가, 쪼끼쪼끼 같은
술집도 있고
근처 시장에는
곱창, 가마솥 삼겹살, 숯불닭갈비 같은
밤에 유난히 맛있는
음식점들이 불야성이다.
그중에 우리 부부가
아지트로 삼은 곳은
청국장 맛이 말도 못 한다.
희멀건한 색을 보고
으음? 하고 한 수저 떠먹고는
우리 부부는 동시에
눈을 벙글벙글 거리며
으응?!!! 했다.
그뿐 아니다.
삼겹살을 주문하면
비닐을 주섬주섬 가져와
식탁 위에 깔고
부루스타와 집에서 쓰던
네모난 프라이팬 같은 것을 놓는다.
그 위에 살짝 언 삼겹살을
놓고 구워 먹으면
딱! 집에서 신문지 깔고
구워 먹던 그 맛이 난다.
갈 때마다
아내와 나는
이 집이
동네를 떠날 때까지
우리의 아지트가
될 거라는 것을
점점 강하게 확신하게 된다.
맞벌이 부부에게
동네에 그런
집이 있다는 것은
상당한 메리트다.
연차와 연봉을 떠나서
남의 돈을 받는
회사 생활에서는
근로 노동자의 스트레스를
반드시 받기 때문이다.
들어갈 땐
스트레스 가득한 직장인에서
나올 땐
기분 좋은 동네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 나오는 아지트.
이 동네가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