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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라면서 언니 오빠들은 변변히 배우지도 못한 채 도시로 돈 벌러 떠나버렸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도 돌아가시고 집에는 막내오빠와 나 아버지 어머니 네 식구뿐이었다. 농토라고는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아버지께서는 그쯤 몸이 좋지 않으셔서 일을 못하셨는지 항상 어머니 혼자서 밭일이며 논일을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아침 일찍 들에 가시면 해가 저물어서야 들어오셔서 부랴부랴 밥상을 차려 어두운 호롱불 밑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느 해 서리가 내리고 가을걷이가 끝났다. 무척 추운 아침이었다고 기억된다. 아침상을 차려서 들고 들어오셨는데 시래기죽이 한 양푼이 올려져 있었다. 그날 아버지께서는 어디서 무얼 하시고 계셨는지 밤새 들어오지 않으셨다. 밥상을 들고 들어오신 어머니께서는 뒤로 돌아앉아 울고 계셨다. 막내오빠랑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어머니께서 우시니까 덩달아 울었다. 그렇게 서럽게 우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머니와 함께 했던 순간을 돌이켜 보아도 처음이었다. 그런데 마당에서 인기척이 나서 문을 열어보니 아랫동네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쌀자루를 이고 들어오셨다. 그 할머니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자네 한해 농사지어 장래쌀 다 갚고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아 쌀을 가지고 왔노라고 어머니께서는 그 할머니 손을 잡고 더 서럽게 우셨고 우리 남매도 그때는 이유를 모른 채 엄마 따라 울기만 했다. 어른이 되어 기억해 보면 어머니의 심정이 어땠는지 알고도 남았다. 가난하다 보니 미리 쌀을 빌려먹고 농사지어 이자 쳐서 갚고 나니 집에 쌀 한 톨 남지 않았던 것이다. 쌀싸라기에 시래기 넣어 아침부터 새끼입에 넣어 주려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아팠을까 그러도록 아버지께서는 어디에 계셨는지 왜 가정을 돌보지도 않으시고 항상 어머니 혼자 뼈 빠지게 일을 하셨는지 내 기억엔 아버지께서 들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본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