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잘 되었다.
역세권 신축 아파트로 이사 온 첫 해
우리나라는 역대 최소 인원으로 역대급 메달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열대야도 신기록 중이다.
26일 동안 밤낮없이 푹푹 찌는 여름을 살다 보니
역세권의 장점은 사라지고
신축 아파트의 장점이 드러났다.
장점이 사라진 이유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안 하게 되었기 때문이고
드러난 장점이라 함은
시스템 에어컨이다.
우리 부부는 시스템 에어컨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우리 집을 장만했을 때
장인 장모님께서 선물로 해 주신 스탠드형 에어컨을
10년 가까이 쓰고 있었다.
벽걸이와 트윈이어서 안방에는 벽걸이를 달고
거실에는 스탠드를 놓고 살았었다.
평창동으로 가면서 집이 커졌을 때도
에어컨은 들고 와서 살았다.
집 평수에 비해 에어컨이 작아서
거실은 시원해도 주방, 옷방, 피아노방은 푹푹 찌곤 했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아내가 작은 소리로 "나중에
공사 다시 하면 시스템 에어컨 꼭 할 거야... 말리지 마..."
라고 중얼중얼 거리곤 했었다.
신축 아파트에 와서 처음 써 본 시스템 에어컨.
이것은 과연 신문물이었고
돈이 좋긴 좋았다.
방방마다 시원하고
에어컨이 눈에 띄지 않으며
공간 효율도 좋았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천장에서 꾸르륵 꾸르륵 꾸르륵 하고
희한한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거실에서 영화를 보거나 할 때는 신경이 안 쓰이는데
자려고 누웠을 땐 많이 거슬린다.
스탠드 에어컨 삶을 살 때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다.
나는 더워도
여름엔 더워야 제 맛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폭염에도 뜨아를 마셔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나도 올여름은 많이 덥고 몸이 축난다.
그래서 올여름 우리 부부는
난생처음 흑염소를 찾게 되었다.
때는 말복을 앞둔 며칠 전.
어디서 무얼 보고 왔는지 아내는 나에게
"오빠 흑염소 먹어봤어?"라고 물었고
나는 "흑염소? 안 먹어봤는데 어쩐지 망설여져. 자라탕 같은 느낌일까..."
라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말복에 가까워진 어느 날
"오빠 우리 말복날 흑염소 안 먹어볼래?"
라고 아내는 재차 흑염소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흔쾌히 가 보자! 했다.
사진으로 본 흑염소는 추어탕 같아 보였다.
수육을 먹으면 탕도 준다는 말에
우리 부부는 수육을 시켰다.
수육에서는 특이한 향이 났다.
양고기보다 순하지만 독특한 향이었고
고기는 내가 먹어본 고기 중에 가장 부드러웠다.
살짝 데친 부추와 함께
잘게 썬 생강과 함께
겉절이 김치와 함께
단무지볶음과 함께
양념장과 함께
한 점 한 점 감사하게 달게 먹고 나섰다.
탕은 된장을 푼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었다.
흑염소 집을 들어가기 전에 아내는
연이은 야근 탓인지 여름을 나는 탓인지
볼이 쏙 들어가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섰을 때는
기분 탓인지 아내 볼이 오봉봉해 보였다.
흑염소에게 감사했다.
다음 날 아내는 힘이 뻗친다 하였고
난생처음 10킬로 덤벨을 들어 올렸다고 했다.
흑염소에게 또 한 번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