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기는 박스 트라우마가 있었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되어 쓰레기장에 버려지고
박스에 갇힌 채 며칠을 굶으며
애옹거렸던 상처 때문이리라 추측했다.
그래서인지 화장실도 위가 막혀 있는 화장실은
평생 단 한 번도 들어가질 못 했다.
어느 집 고양이는 위가 막혀 있어야
아늑하게 볼일을 보신다는데
우리 애기는 사방팔방이 뚫려 있어야
마음 편히 볼일을 보았다.
화장실은 세 개를 쓰고 있었다.
감자용, 맛동산용, 비상용.
비상용은 우리 부부가 연이은 야근으로
화장실 청소를 제 때 못해 줬을 때를
대비한 용도였다.
다행히 우리 집은 화장실이 세 개여서
야몽이는 자기만의 화장실을 쓸 수 있었고
프라이버시를 존중받으며 언제든
원하는 화장실 칸에 들어가 볼일을 볼 수 있었다.
떠나고 나서 생각하면 못해 준 게 너무 많아
미안한 마음이 많지만
화장실만큼은 잘해 주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애기는
맛동산 테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복층 거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만들어 놓은 맛동산을 보았다.
응?
토끼통처럼 동글동글 자그마했고 색이 거무틔틔했다.
우리 애기가 웬일로 맛동산 테러를?
맛동산 맞지 이거?
모래갈이를 해 달라는 건가?
우리 부부는 당장 모래를 주문해서
화장실 세 개 모래를 싹 갈아주었다.
그런데 며칠 후, 이번에는 화장실 안 바닥에
보란 듯이 맛동산을 봐 놓았다.
심지어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
일하고 있던 나를 툭툭 치면서 애옹 거리기까지 했다.
마치 지가 만들어 놓은 맛동산 가서
확인 좀 하라는 듯이. 한번 봐 달라는 듯이.
그 후에도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생전 안 하던 짓을 반복하는 야몽이를
나는 혼내기도 했었다.
나이 들고서 애기 때도 안 하던 짓을 한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애기가 화장실 밖에다 본 맛동산은
대부분 작고 색이 검었다.
나는 알아 챘어야 했다.
장에 뭔가 있구나. 문제가 있구나.
평소처럼 굵지 않고 색도 예쁘지 않은
맛동산을 계속 보았을 때
이상하다 느끼고 병원을 데려갔어야 했다.
말 못 하는 우리 애기가
어떻게든 자기 배가 아프다는 시그널을
보내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그래서 맛동산 테러를 하고 나서는
가서 보라고 솜방망이로 나를 계속 쳤던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것 또한 내 죄책감이 만들어낸
해석일지 모르고 왜곡된 기억일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집사 분들에게도
공유드리고 싶고 알려 드리고 싶다.
집사들은 맛동산 색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애기들이 모래에 잘 숨겨놓은 것을 캐내면
색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맛동산 사이즈가 많이 작아지고
색이 영 거무틔틔하게 느껴진다면,
장 트러블을 겪는 건 아닌지
한번 살펴봐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매일 화장실을 치워주는 일은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이 내가 애기 속사정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고
우리 고양이가 보내는 시그널을 살펴본다
생각하면 마냥 귀찮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른 집사 분들과 고양이들이
그렇게 되기를 많이, 참 많이 소망했다.
부디 오래오래 맛동산 파티를 즐기시기를
기원하고 기도한다. 새해 행복하세요.
<심드렁하게 가로누워 있는 것을 좋아했던 우리 애기. 요러고 턱 받치고 누워 있다가, 야몽아~ 부르면>
<고개를 들어서 귀찮은데 대답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내가 계속 야몽아~ 부르면>
<귀찮아도 대답은 꼭 해 주었던 착한 애기>
<내가 일하고 있으면 내 뒤에 와서 앉아 있다가 고개 돌려 자기를 바라보면 먼저 눈인사해 주었던 야몽이>
<가끔은 세상만사 귀찮아지는 때가 있었던 것 같은 우리 애기>
<우주선 같이 앉아 있는 야몽이. 우리 부부가 참 좋아했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