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시대의 카피라이터

저거 사람 아니지

by 일조

얼마 전 아내와 같이 TV를 보고 있었다. 광고 한 편을 보고 아내가 불쑥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저 씬에 나오는 저거 사람 아니지?" "어 저거 사람 아니야" 당시에는 그냥 그런 대화 한 토막이었는데, 곰곰이 생각을 계속하게 됐다. 저거라... 왜 사람 아닌 것을 사람이 쓰는 것처럼 등장시켰을까? AI로 광고를 만들었다라고 광고하고 싶어서? 제작비가 아까워서? 시대를 앞서가는 브랜드처럼 보이고 싶어서? 씬 스틸러가 필요했는데 적절한 모델이 없어서? 섭외해 둔 유명 모델이 촬영 당일 날 펑크를 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따라가 보니 내 속에 AI가 사람처럼 제품을 쓰는 이미지 자체를 싫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입력하면 무엇이든 만들어 내는 AI가 생각하고 사고하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싫은 것이다. 창작을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 경쟁의식이 생겨서 이러는 건 아니다. 나는 사람과 생각, 상상력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창작 과정에서 AI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시대의 맥락을 빨리 파악하기에 AI는 정말 너무나 훌륭한 도구이다. 목표 달성의 지름길을 탐색하는 내비게이션으로 쓰기에도 정말 좋다. 나는 AI를 Pre 단에서 쓰고 있다. 실제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철저히 나의 사고와 상상력을 믿고 움직인다. 고객하고 만나는 결과물에서도 AI는 배제하고 있다. 개인적인 신념이다. 내가 마음이 동하지 않는 글을 다른 사람에게 카피라고 보여주지 않겠다는 신념. 나는 AI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보고 마음이 동한 적이 없다. AI가 생성한 카피를 보고 편리하다고는 느꼈지만 기가 막히다라고 울림을 받아 본 적은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니 무엇을 사고 싶지 않다. 설득은 당연히 안 된다. 나조차도 설득이 안 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 내가 AI를 더 효율적으로 잘 쓰게 된다면 또 다른 관점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 수준은 여기까지이다. 저거 사람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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