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도 이런 막장은 없었다 / 사랑과 전쟁
뮤지션의 사생활과 음악적 업적은
별개로 평가해야 할까?
아니면, 음악은 곧 내면의 진솔한 표출이기에
분리할 수 없는 것일까?
오늘은 조금 걸출한 음악가의 막장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이 질문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1970년대 하드록을 사랑한 올드 록 팬들에게,
'세계 3대 기타리스트'라 불리던
에릭 클랩튼, 지미 페이지, 제프 벡의 명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지미 헨드릭스는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외계인 같은 존재’이니 잠시 제외해 두자.
오늘의 주인공은 3대 기타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에릭 클랩튼이다.
그의 음악, 그리고 ‘사랑과 전쟁’의 이야기들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록 역사상 단 하나의 명곡을 꼽으라면,
언제나 손에 꼽게 되는 곡이 바로 [ Layla ]이다.
특히, 후반부에 흐르는
듀안 올맨의 슬라이드 기타는 이 곡의 백미다.
1970년, 클랩튼은 Derek & The Dominos 시절
드러머 짐 고든과 이 곡을 공동 작곡했다.
하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고든은 이 멜로디를 당시 여자친구의 곡을 표절한 것이며,
심각한 조현병으로 인해 친모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수감된 이후로는
이 곡의 자작권에 관한 법적 소송도 유야무야 끝났다고 한다.
Layla는 12세기 페르시아 시인
네자미 간자비의 시 < 레일라와 광인 >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을 향한 절규.
그리고 그 현실적 모티프는,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의 아내, 패티 보이드를 향한
클랩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절친의 아내를 향해 "당신을 원한다"는
처절한 사랑 고백을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쏟아낸 이 노래는,
그 자체로 막장이자 걸작이다.
1977년, 조지 해리슨과의 결혼생활이 끝나기 2년 전,
클랩튼은 Wonderful Tonight을 발표한다.
패티 보이드를 향한 사랑을 노래한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싱글 차트 16위에 오르며
그의 대표 발라드로 자리 잡았다.
클랩튼은 기타의 신이라 불리던 남자였고,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이 서정적인 멜로디는
한 여인에게 바치는 러브송으로
온 세상 여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3. Tears In Heaven
그리고 1991년.
클랩튼은 세상을 뒤흔드는 슬픔에 휩싸인다.
당시, 4살이던 아들 코너 클랩튼이
맨해튼의 53층 아파트에서 추락사한 것이다.
이 비극 이후 탄생한 노래가 바로 [ Tears in Heaven ]이다.
이 곡은 그해 영화 Rush의 OST로 사용되었으며,
또 하나의 의미로는,
1990년 클랩튼이 탑승 예정이었던 헬기에 대신 오른
스티비 레이 본의 비극적인 사망을 추모하는 곡이기도 하다.
이 노래로 그는 그해 그래미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남성 팝 보컬상’을 수상한다.
비로소, 사랑과 상실의 서사가 완성된 셈이다.
오늘의 주제인 막장 스토리의 전모를 정리해 보겠다.
클랩튼의 인생은 사랑, 우정, 질투, 죄책감이 뒤섞인 한 편의 영화 같다.
1막 – “그녀는 누구의 아내인가”
패티 보이드는 원래 모델이자 사진작가로,
비틀스의 영화 A Hard Day’s Night에 출연하며
조지 해리슨과 처음 만나 결혼했다.
그녀는 후에 에릭 클랩튼의 아내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만 들어도 그녀는 전생에 인류를 구했을지도 모른다.
2막 – “넘지 말아야 할 선”
조지 해리슨은 인도 크리슈나교에 심취해
‘임신을 위한 행위 외에는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계율을 핑계로
패티에게 소홀했고, 천하의 바람둥이로 지냈다.
그 틈을 타 에릭 클랩튼은 친구의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했고,
그 울부짖음이 바로 Layla다.
조지는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놀랍게도 그 역시 비틀스 멤버 링고 스타의 아내 모린 콕스와 불륜을 맺는다.
이후, 이 네 사람은 모든 사실을 서로 고백하며
결국 각자의 결혼은 모두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1979년, 클랩튼과 패티는 결혼한다.
3막 – “쿨한 우정일까, 상상 초월한 집착일까”
결혼 이후에도 클랩튼과 조지는
기타를 들고 서로의 집을 오가며 친분을 이어갔다고 한다.
결혼식에서는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폴 매카트니가 직접 축가를 불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클랩튼은 진정 패티를 사랑했을까?
그는 결혼 후에도 여러 명의 여성과 관계를 가졌고,
결국 1988년 이혼에 이른다.
그나마 유일한 보상은
Layla의 저작권을 패티에게 전부 양도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뮤지션의 사생활과 그의 음악은 분리될 수 있을까?
혹은, 예술이란
결국 내면의 고백이기에,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일까?
또는,
이 모든 것이 그저 너무도 뜨거웠던
젊은 영혼들의 방황이었을까?
답은 모두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