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ants Of Jazz / Studs Terkel
대중적이지 않은 취향 탓에
좋아하는 책이나 음반은 서둘러 사두지 않으면
어느새 절판되어 판매처를 찾기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그래서 마음에 들거나 조금이라도 궁금한 책과 음반은
가능하면 그때그때 사두는 편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제로 읽거나 듣는 것보다
쌓아두는 비율이 훨씬 높다.
구매한 것의 절반 이상은 그대로 남아 있다.
누군가 말했다.
책은 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사서 쌓아 둔 것들 중에 읽기 위해 미리 사두는 거라고.
당연히 충동에 가까운 구매도 많다.
그래서 기대와 달리
실망을 안긴 책과 음반도 적지 않다.
끝내 손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늘 같은 생각이 뒤따른다.
조금 더 알아보고 살 걸.
반대로,
정말 읽고 싶고 듣고 싶은 책과 음반을
너무 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중고 시장을 뒤지다 웃돈을 주고 사거나,
운 좋게 중고서점에서 헐값에 발견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대중적이지 않은 취향은 꽤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반복되는 기쁨과 허탈감,
그 사이 어딘가에서
오늘도 손가락에 힘을 꽉 준채
정보의 바다 위를 분주하게 헤엄친다.
보통의 재즈 교양서들은 재즈의 역사를 연대식으로 기술하거나
대표적인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작품에 대한 서술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터즈 터클(Studs Terkel)의 < Giants of Jazz >는
그 서술 방식이 매우 독특하면서
그 내용면에서도 철저하게 검증된 정보들이
아주 꼼꼼하고 치밀한 서사로 연결되어
읽는 내내 감탄을 자아내는 최고의 재즈 입문서이다.
스터즈 터클은 퓰리처상 수상 작가로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그는 시카고에서 오래 활동한 라디오 DJ였다.
음악을 틀고, 사람을 만나고, 남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그의 일상이었다.
< Giants of Jazz >는 그 경험이 처음으로 글로 응축된 결과물이었다.
< Giants of Jazz >는 1957년,
< Thomas Y. Crowell Company>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초판은 오렌지색 양장본으로 출판되었고,
당시에는 12명의 재즈 거장들을 다루었다.
연대기적 정리나 이론 설명보다는
연주자들의 목소리, 기억, 감정이 마치
어릴적 읽던 전래동화처럼 이어진다.
각 연주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철저한 고증을 거친 정보와 관계들이 쌓인다.
여기에 인간적인 친분과 음악사적으로 검증된 기록들이 더해진다.
이 모든 요소가
하나의 거대한 재즈 역사 속에서
하나의 세계관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서술 방식이
따뜻한 아랫목에서 이불 덮고 귤 까먹으면서 듣는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종종
‘가장 인간적인 재즈 교양입문서’로 불린다.
이 방식은 이후 스터즈 터클의 퓰리쳐 수상 대표작들로 이어진다.
< Working >, < The Good War >에서 보여준
그의 구술사 작업은 이미 < Giants of Jazz >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재즈라는 주제를 빌렸을 뿐,
그가 탐구한 것은 사람의 삶에서 시작된
가장 인간답고 따뜻한 이야기였다.
1975년, 같은 출판사를 통해 개정판이 나왔고
저자의 인터뷰와 서술이 더 보완되었다.
2002년, < The New Press > 출판사에서 전면 개정/증보판이 출간된다.
이 판본에서는 존 콜트레인이 추가되며 총 13명의 재즈 거장을 다루게 된다.
현재 유통되는 판본의 기준이 되는 결정적인 개정이다.
2006년에는 일러스트가 포함된 페이퍼백 판이 출간되었고,
현재까지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4년, 문학동네에서
< 재즈, 매혹과 열정의 연대기 >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번역은 전문번역가 이정득 님께서 2006년 < The New Press >를 원본으로 하셨고
< Jazz It Up >의 저자시며, 재즈 평론가 남무성 선생님의 감수와 추천이 더해졌다.
당시 재즈 붐과 맞물려 입문서로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 책이 주목받은 이유도 내용이
지루한 정보나 연표 위주가 아니라
구수한 이야기들로 재즈 거장들의 이야기를 단편 소설 같은 문체로
위대한 재즈의 세계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 책이 현재 절판 상태라는 사실이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국내 출판 시장의 구조에 있다.
저작권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고, 초판 재고도 소진된 2010년대 이후
재즈 관련 서적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었다.
그 흐름 속에서 추가 쇄를 진행할 현실적인 근거가 애매해졌던 모양이다.
그 결과 이 책은 별다른 논의 없이 절판 수순을 밟았고
현재는 중고 시장에서만 구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보관 상태가 좋은 책들이 중고시장에 적지 않다.
가격도 2천 원에서 3천 원대에 형성되어 있어
부담 없이 구입해 읽을 수 있어 금상첨화이다.
개인적으로 재즈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가장 먼저 추천하는 입문서이다.
초기 재즈의 탄생부터 모던 재즈시기까지의 대략적인 흐름과
가장 중요한 재즈 음악가들의 기록들이
옴니버스 형식의 단편 소설들이 이어진 것 같은 재즈 입문서이다.
많은 재즈 교양입문서의 단점 중 하나가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을 여기저기에서 주워 모아 책으로 엮은 것들을 자주 보았다.
하지만 이 책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가
모든 서술 냉용이 철저히 검증된 사실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 재즈 : 매혹과 열정의 연대기 >의 간략한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재즈의 제왕 - 조 올리버
2. 재즈의 친선대사 - 루이 암스트롱
3. 블루스의 여제 - 베시 스미스
4. 나팔을 든 젊은이 - 빅스 바이더벡
5. 유쾌한 천재 - 패츠 월러
6. 삶의 소리 - 듀크 엘링턴
7. 스윙의 제왕 - 베니 굿맨
8. 환희의 점프 - 카운트 베이시
9. 신의 은총 - 빌리 홀리데이
10. 타고난 지도자 - 우디 허먼
11. 소리의 탐험가 - 디지 길레스피
12. 야드버드 - 찰리 파커
13. 끝없는 탐구 - 존 콜트레인
14. 재즈, 만인의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