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장르가 아니고 태도이다.
음악책을 써보고 싶다.라고 생각만 했다.
생각만 많고 게으른 성격 탓에
1년, 5년,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중간중간, 글감이 될만한 메모도 남겨보고
SNS에 어설픈 글도 끄적여 보았다.
결국, 용기를 내어 작년에는 브런치 스토리를 시작했다.
생각과 실천은 천지차이임을 거듭 느끼며
그간 읽었던 훌륭한 작가님들의 멋진 음악책들을 다시 정독해 본다.
재즈를 좋아하게 되는 동기나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처럼 갈급한 필요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찾아 듣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어렵게 어렵게 좋아진 경우도 있지만,
어느 겨울 프랑스 파리 여행을 하고 있던 스물두 살의 제가
재즈 클럽 "선셋 사이드"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어쩌면 평생 재즈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재즈의 계절, pp. 12 )
재즈를 알리는 시나리오 작가로 자신을 소개하는 김민주 님은
재즈 전문잡지 < 재즈피플 >에 꾸준히 칼럼을 연재해 왔고,
국내 주요 기업과 브랜드의 영상 프로젝트에서 수석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재즈 플레이리스트 채널 < Jazz Is Everywhere >를 운영하기도 하며
오랜 시간 재즈를 삶과 글 속에 녹여 온 찐 재즈 애호가이기도 하다.
2022년 9월, 북스톤에서 출간된 < 재즈의 계절 >은
작가가 세상 여기저기에서 우리가 마주칠 수 있는 예술가들의 삶과 태도를
재즈가 가진 고유의 감각과 연관 지어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재즈를 특정 음악 스타일로만 다루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고 다양한 방면의 문화생활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다양한 소재들과 연관 지어 재즈를 이야기한다.
작가가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소설 속의 담긴 이야기들
그리고 광고 크리에이터, 그래픽 디자이너, 미슐랭 세프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가들의 삶의 태도와 예술가적 정신을
재즈라는 음악이 가진 속성과 연관 지어
무겁지 않지만 깊이 있게 풀어낸다.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오직 그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감각에 집중해 음악을 창조하는 즉흥연주는
삶의 많은 것들을 틀 안에 가두고 통제하려는
경직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었고요.
수십 년간 지켜져 온 어떤 경향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자기만의 문법을 발명한 재즈 뮤지션들의 이야기는
창작을 위한 영감이 되어 주었습니다.
( 재즈의 계절, pp 16 )
재즈가 지닌 자유로움과 즉흥성,
그리고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는
음악을 넘어 예술가들의 삶과 작업 속에 살아 숨 쉰다.
재즈는 세상을 변화시켜 온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을 지속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동력이었고,
그들의 일상과 선택에 깊이 스며든 하나의 정신이었다.
작가는 영화와 음악, 다양한 예술 작품의 창작 과정들 속에
재즈적 태도가 어떻게 감각을 확장하고
새로운 발상을 가능하게 했는지를 차분하게 짚어준다.
주방에서 레몬 타르트를 떨어뜨린 사건에서 착안한 디저트
[ 앗! 레몬 타르트를 떨어뜨렸네 ]는
미슐랭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경직된 파인 다이닝의 관습에 던진 유머이자 질문이었다.
건강 악화라는 한계 속에서 탄생한
앙리 마티스의 [ 컷아웃 ] 기법 역시
도구와 방식의 전환을 통해 표현의 영역을 넓힌 사례였으며,
마르셀 뒤샹의 [ 샘 ]은
보는 아름다움을 넘어
사유를 요구하는 예술로의 이동을 선언한 혁명이었다.
이 사례들은 공통된 질문으로 이어진다.
재즈가 지닌 혁신과 변화의 정신은
과연 소리로만 존재하는가.
어쩌면 이들이 보여준 혁신은
음악이 아닌 다른 형태로 구현된
또 다른 모습의 재즈 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미친 이들이 있습니다.
부적응자, 혁명가, 문제아
모두 사회에 부적격인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사물을 다르게 봅니다.
그들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고 현상유지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찬양할 수도 있고
그들과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그들을 찬미할 수도, 비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뭔가를 바꿔 왔기 때문입니다.
( 재즈의 계절, pp. 38 )
책은 총 12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달의 이름을 빌려 한 편씩 이어간다.
각 달의 제목이 물리적인 계절감과 직접 대응하지는 않는다.
각 글은 한 달의 입구에서 작가가 마주한 다양한 영화, 음악,
그리고 예술가들의 삶이 중심이 되어
영화 이야기와 재즈에 관한 서사가 자연스럽게 섞여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어떤 태도로 자신의 삶과 작업을 지속해 왔는지가 드러난다.
재즈는 그렇게 일과 일상,
그리고 삶을 대하는 방식의 문제로 확장된다.
남들을 따라가는 유행보다 자기만의 개성을,
수동적으로 부여받은 규칙보다는
스스로 원칙을 세우는 자유를,
계획과 계약으로 얻은 안정적인 삶보다는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즉흥적인 모험을
기꺼이 선택하는 사람들.
그들의 삶 속에
이전보다 더 많은 순간 재즈가 흐르는 장면을 발견하곤 합니다.
....
소수만 탐닉하는 취향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풍요로운 재즈의 계절
그 시간이 정말 가까워진 것 같아요.
( 재즈의 계절. pp.303 )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재즈를 단편적인 음악적 장르 또는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으로 가두려지 않는 데 있다.
작가는 재즈를 ‘듣는 음악’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로 다룬다는 점이다.
글을 통해 재즈의 즉흥 연주처럼,
우리의 삶 역시 예측 불가능한 변주로 가득하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재즈 아티스트들이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독자 자신의 일상과도 자연스럽게 겹칠 것이다.
각 챕터에는 재즈 거장들의 일화와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들이 함께 등장한다.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작가의 경험과 해석이 더해진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글은 가볍게 읽히지만,
글의 내용이 주는 의미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재즈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읽는 데 어려움은 없다.
여러 방면의 재즈와 얽힌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재즈라는 음악이 어느새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 재즈의 계절 >은
술술 읽히는 문장 속에
삶과 일에 대한 질문을 조용히 숨겨 놓은 책이다.
리듬을 잃어버린 일상 속에서
자신만의 호흡을 다시 찾고 싶은 분들. ,
재즈를 사랑하는 이들을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은 분들.
이 책은 충분히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재즈의 계절은
이미 우리들 곁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재즈는 단지 음악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자
존재하는 방식이자
사고방식이다.
- Nina Simone
( 재즈의 계절, pp.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