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토록 재미있는 음악이야기 / 크리스토프 로이더

음악에 대한 잡다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

by XandO

어떤 분야든 흥미를 가지고 깊이 파고들다 보면
처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의외의 재미와 뜻밖의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감탄과 놀라움.
그것이 흔히 말하는 ‘덕질’의 매력이다.


한때 필기구와 문구에 유난히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읽은 책이 < 연필 깎기의 정석 >(원제: How to Sharpen Pencils)인데,
제목부터 엉뚱하지만, 내용은 놀라울 만큼 진지하다.
엄숙한 태도로 연필 깎기를 다루면서도
곳곳에서 냉소적인 웃음을 유도하는 독특한 책이다.

이 책은 연필 깎기의 단순한 손기술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장인 정신이 깃든 행위이자,

사유의 대상으로 접근한다.


저자 데이비드 리스(David Rees)는
실제로 ‘연필을 장인 정신으로 깎아주는 서비스’를 운영하며
수익을 올렸던 인물이다.
이 이력만으로도 책의 진지함은 충분히 설명된다.

내용은 치밀하다.
연필을 깎기 전의 태도에서 시작해
주머니칼, 외날 깎기, 전동 깎기 같은 도구의 선택,
깎인 뒤 연필심을 보호하는 방법까지
사소해 보이는 요소들을 치밀하고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리고 그 과도한 성실함이
이 책 특유의 유머를 자아낸다.

이 경험은 한 가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대상이라도
충분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결은 다르지만
크로스토프 로이더의 < 이토록 재미있는 음악 이야기 >를 읽는 동안
이 < 연필 깎기의 정석 >이 계속 떠올랐다.
잘 알려진 음악가나 악기 이야기에 관련된 뻔한 음악책이 아니다.
누구도 숨기려 하지는 않았지만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명쾌하면서도 흥미롭게 콕콕 집어 짚어 나간다.

음악 안에 이렇게 많은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짧고 간결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어도 부담이 없다.

가볍게 시작해
자연스럽게 자주 집어 들게 되는,
그런 음악책이다.


.... Baby One More Time - Britney Spears


이 책은 총 375페이지 분량으로,
제목만 읽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70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짧지만, 소재 선택이 명확하다.


그중 44번째 글의 제목은
[ 눈에 보이지 않는 팝 황제 ― 모두가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이다.


1999년, 당시 17세의 신인이었던 브리트니 스피어는
이 곡 하나로 전 세계에서 약 2,500만 장에 이르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롤링 스톤지는 이 곡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데뷔 싱글’ 1위로 선정했다.

이 곡의 의미는 단순한 상업적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성인 디바와 보이 밴드가 주류였던 1990년대 후반 팝 시장에서
10대 솔로 여성 아티스트가 중심에 서는 흐름을 만들었다.
이른바 ‘틴 팝’ 전성기의 출발점이다.


동시에 이 곡은
스웨덴 출신 프로듀서 맥스 마틴(Max Martin)의 이름을
팝 음악의 핵심으로 끌어올린 작품이기도 하다.
극도로 정교하고 반복 구조가 명확한 멜로디,
감정의 고조를 계산적으로 배치한 후렴.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팝’이라 불리는 제작 방식이
미국 팝 시장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맥스 마틴은 이 책에서 말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팝 황제’다.
대중에게 얼굴도 이름도 익숙하지 않지만,
차트의 결과만 놓고 보면 팝 음악사에서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데뷔 작업에 참여하며 미국 시장에 진입했다.
그리고 1998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이 싱글을 통해
자신의 제작 방식을 전 세계 팝시장에 각인시켰다.

이후 케이티 페리, 테일러 스위프트, 위켄드, 아리아나 그란데 등
수많은 아티스트의 핵심 히트곡을 만들어 왔다.
빌보드 핫 100 기준으로
프로듀서로 참여한 1위 곡은 24곡에 이르며,
비틀스의 조지 마틴이 세운 기록 ( 23곡 )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곡가로서의 성과 역시
폴 매카트니 ( 32곡 - 1위 )에 이어 최상위권 ( 28곡 - 2위 )에 위치한다.


팝 음악이 누구에 의해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누가 실제로 그 시스템을 설계해 왔는지를

아무도 감추지는 않지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런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고,
그러나 놓치지 않고 가벼운 잡담처럼 늘어놓는다는 점이다.


The Fate Of Ophelia - Taylor Swift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프 로이더는 작가이면서 음악가, 재즈 피아니스트이다.

베를린 예술대학교(UdK)와 라이프치히 음악·연극대학교에서
재즈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했다.

여러 재즈 앙상블에서 활동했으며
유럽을 포함한 국제무대에서

클래식과 재즈, 팝등 장르 간의 경계를 넘나 들며 다양한 공연 경력을 쌓았다.


독일의 전통 공연 양식인 ‘뮤직 카바레’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는데
음악과 풍자를 결합한 무대가 특징이다.

2017년, 독일 튀링겐 카바레상 (Thüringer Kleinkunstpreis)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음악은 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주제로
음악 심리학 강연도 활발히 진행한다.

이 책은 그의 이러한 공연과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쓰였다.


이 책의 독일어 원제 < Alle sind musikalisch! (außer manche) >은

직역하며 < 모든 사람은 음악적이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라는

역시나 원제 또한 재미있다.


어떤 악기가 내게 맞을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린
결혼식에 부적합한 음악

음악은 왜 존재할까?

음악을 들으면 똑똑해진다.

치즈도 음악성이 있다.

뮤지션을 대하는 방법 등등


이 책은 다루는 소재의 폭부터 인상적이다.
각 장의 제목만 봐도 저자의 재기와 유머 감각이 드러난다.
그 덕분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음악의 실체에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자칫 개인적인 감상이나 주관적인 추측으로 흐를 수 있는 소재의 설명을
심리학과 뇌과학의 검증된 연구를 근거로 논의를 전개하기도 하고

음악가의 돈벌이 수단, 오디션을 위한 준비법등

음악 전공자나 교육자들에게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꿀팁들도 언급한다.


음악의 즐거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또는

음악과 전혀 관련 없는 분야의 분들에게도,

그리고 음악이라는 것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궁금한 분들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유익하지만

쉽고 재미있는 심심풀이 오징어와 땅콩 같은 책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