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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Piano Meets The Beatles.

The next most beautiful sound to silence

by XandO


누구나 그렇듯이

유희를 위한 음악이 감상으로 변하기까지는

감상의 경험을 켜켜이 쌓아 갈 시간과

쉽게 꺼지지 않을 장작불 같이 느긋한 열정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음악들을 다시 되돌려 듣고

철 지난 음악들의 의미를 찾아가며 다시 들어보고

새로운 음악들에 대한 궁금증을 버리지 않는 마음.


오늘은, 재즈 피아니스트들의 비틀스가 궁금하다.



음악을 들으며 가장 중요하게 듣는 것은 멜로디이다.

멜로디가 선명하고 듣기 좋아야 한다.

그리고, 연주자 나름의 감성과 곡의 분위기를 내밀하게 표현해 주는

세심한 연주력이 겸비된 음악을 좋아한다.

멜로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난해하게 헤집어 놓아

기술적인 난해함으로 빈약한 선률적 감각을 감추려는 복잡한 연주를 불편해하며

연주자의 내적인 의도가 전달되지 않는

기계적인 소리가 뒤엉켜진 음악들은 가급적 피하고 싶다.


그래서, 피아노 독주 또는 연주 인원이 많지 않은 구성의

재즈 피아노 트리오 연주를 좋아한다.

88개의 잘 깎여진 희고 검은 대리석 위를 미끄러지듯 춤추는 손가락들.

피아노 연주는

손가락 열개로

5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만드는

소리에 버금가는 감동을 전해 주는 악기이다.


1. Here, There And Everywhere - Gonzalo Rubalcaba

단 한 명의 재즈 피아니스트만 선택해야 한다면

턱을 고인채 골똘히 한참을 고민해야 한다.

결국, 조심스레 쿠바의 Mr. Adagio " Gonzalo Rubalcaba "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1963년생, 쿠바 출신의 피아니스트로

2014년 타계한

현대 재즈계의 거장이었던,

찰리 헤이든이 붙여준 별명이 Mr.Adagio인 것이 모든 것을 말해주듯

그의 발라드 연주는 우주최고이다.

진짜다!


2023년에 발매된 [ Borrowed Roses ]로 이름 붙여진

그의 3번째 피아노 솔로 앨범에 수록된 비틀스의

[ Here, There and Everywhere ]는

뭉긋하게 부숴놓은 음들 사이에 생긴 공간 사이로 펼쳐지는 리듬과 멜로디들은

듣는 이의 심장 세포 하나하나까지 뒤흔들어 놓는다.


그의 발라드 연주를 각별히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30년 전인, 1993년, 그의 앨범 [ Suite 4 Y 20 ]에서는

베이스와 드럼을 포함한 재즈 피아노 트리오 버전으로

같은 곡 [ Here, There and Everywhere ]를 연주했다.


2. Here, There and Everywhere - Gonzalo Rubalcaba

같은 곡의 연주를 통해,

한 연주자의 30년 간극을 소리로 느껴볼 수 있는 멋진 감상의 기회이다.

30년만큼의 젊음과 30년만큼의 음악적 깊이를 비교해 볼 수 있어

가끔 번갈아 듣지만

두 연주 모두 너무 사랑한다.



3. Imagine - Iiro Rantala

유럽의 재즈는

미국의 재즈와도 다르고 남미의 느낌과도 다르다.


1950-60년대의 유럽재즈는 미국의 재즈에 대한 예술적 가치를 칭송하며

미국과 북미의 재즈를 모방하는 수준이었으나

클래식이라는 비옥한 음악적 토양 위에 싹을 틔운 유럽의 재즈는


'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 ' ( The next most beautiful sound to silence )라는

그들의 컬렉션에 어울리는 슬로우건을 걸고

1969년에 뮌헨에서 설립된 ECM 레이블을 시작으로

ACT, EGEA, Label Blue, Cam Jazz 등의 재즈 전문 레이블들이 탄생한다.


Iiro Rantala는 1970년생 핀란드 출생으로,

Trio Toykeat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다.

2015년에 레이블 ACT에서 발매한 [ My Working Class Hero ]라는 앨범에서

존 레넌의 곡들을 자기만의 감성으로 해석한 피아노 솔로 연주로 앨범을 발매했다.


특히, 존 레넌의 솔로 활동 때 발표한 [ Imagine ]을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터치와 재즈의 복잡 미묘한 화성적 느낌을 활용하여

존 레넌이 전하려던 평화와 사랑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서정적인 세심한 피아노 터치로 만들어진 화음과 멜로디로

음과 음사이에 숨겨놓았다.



4. Across The Universe - Walter Lang Trio


독일의 재즈 피아노 트리오 Walter Lang Trio의 2002년 앨범

[ Beatles Song Book ]에 실린 [ Across The Universe ]이다.

2007년 우리나라에 내한하여 EBS 방송 “공감”에서 콘서트를 갖기도 했으며

일본과 독일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는 재즈 트리오이다.


섬세한 터치와 깊은 저음이 매력적인 콘트라베이스의 아르코 연주로 시작되는 도입부가 매력적이다.

이내 도입부가 끝나고 시작되는 심벌의 경쾌한 울림에 맞추어

태세를 전환한 콘트라 베이스의 피치카토 주법 연주와

간결하고 경쾌한 피아노 터치로 연주되는 비틀스의 멜로디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이슬방울같이 상쾌하고 영롱한 멜로디들이 흥겹다.



5. Here, There And Everywhere - European Jazz Trio

European Jazz Trio라는 이름과 걸맞지 않게

일본을 주무대로 활동한다는 오해를 받을 만큼 일본에서의 인기가 드높은 재즈 트리오이다.

다양한 재즈, 탑등은 물론이고 귀에 익숙한 클래식 곡들까지

European Jazz Trio의 감성과 편곡으로 지속적인 앨범 작업을 하고 있다.

앨범이 실로, 정말, 진짜 많다.


물론, 그들 특유의 매력적인 레퍼토리들과 서정적인 멜로디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내한 공연 시, 티켓팅이 쉽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몇 안 되는 재즈 트리오이다.

2018년에는 우리나라 가요곡들로만 편곡된 재즈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6. 미련 - European Jazz Trio

김건모의 [ 미련 ]을 이소정 씨가 European Jazz Trio의 반주에 맞춰 연주해 냈다.

자칫 가요에 대한 해석이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역시 European Jazz Trio에게는 그 어떤 곡도

그들만의 감성 범위 안에서 도망치지 못한다.




7. Life On Mars? - Brad Mehldau


8. Golden Slumber - Brad Mehldau


개인적으로는 Gonzalo Rubalcaba의 감성은 포기하지 못하지만,

Brad Mehldau는 언제나 옳다.

그의 피아노에는 역사 속에 남아 있는 피아노 거장들의 예술적 기품이 있다.

매번 다른 콘셉트와 음악적 시도들로

새로운 주제의 연주를 들고 나온다.

그 작품들은 늘, 전통 안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그만의 기품 있는 음악세계가

바흐에서부터 현대 재즈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구석의 끝자락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의 어린 시절을 함께 했을 비틀스의 곡들로 채워진 앨범

[ Your Mother Should Know - Brad Mehldau Plays The Beatles ]는

비틀스를 사랑하고 재즈를 아끼는 Brad Mehldau의 팬이라면

꼭 들어봐야 할 명반이라 생각한다.


The Beatles End Here, for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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