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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비행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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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옂 May 18. 2024

비행, 여행이 가지는 의미와 마음가짐

누구나 살다 보면 방황하게 될 때가, 혹은 방황하고 싶어질 때가 온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방황이 방황인지 모른 채로 살아가곤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시작한 줄도 모르게 계속되어오고 있는 방황은 돌이켜 보니 날 망가뜨렸다. 쓰레기만도 못한 도파민, 일정한 규칙도 없이 졸리면 오는 잠, 대충 때우는 끼니, 가는둥 마는둥하는 학교, 미래에 대한 막연한 걱정, 그리고 반복.

방황은 방황을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방황임을 인정하고나서부턴 차라리 ‘그래 나 방황하고 있어’ 하면서 마음껏 방황해보고 싶었다. 기왕지사 하게 되는 걸 제대로 하고 싶었고, 피할 수 없는 방황을 즐겨보기라도 하고 싶었다. 어디를 갈 지도, 무얼 할지도 모른 채로 침대에 드러누워 내일은 어디에 있을지 조차 모르는 방황을 말이다.

관광학과로서 할 소리겠냐만은, 나는 여행이 싫다. 여행이 싫다기보단 여행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느낌이 싫다. 단어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낭만과 설렘 같은 느낌이 싫다. 습관처럼 내뱉는 여행 가고 싶다는 말과 생각 없이 건네는 여행 한 번 다녀오라는 말 같은 것도 싫었고, 젊을 때 여행은 빚을 내서라도 가야 하고, 여행을 다녀오면 보이는 게 다를 것이라는 말도 듣기 싫었다. 제대로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으면서 뭘 안다고 괜히 싫었다.

이렇게 꼬인 생각들로 가득한 여행에 대한 나의 마음은 지금까지 계속되어 왔다. 실은 부러웠으면서, 밥 먹듯 서울에 다녀오는 친구들이 부러웠으며, 군대에서 나와 멀리 여행 가는 동기들이 부러웠다. 은연중에 드는 질투심으로 나는 여행에 관심 없는 척해 왔다. 일본은 관심 없으며, 더 먼 나라는 비싸기만 할 뿐이라고.

시간이 지나면서 궁금해졌다. 얼마나 재밌고 좋길래 다들 그럴까 하고. 과연 내가 갖고 있는 여행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 정말이지 열등감과 질투심에서 오는 의도적인 배척인지, 아니면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맞을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돈 펑펑 쓰고 오면 좋기야 하겠지. 다른 나라 가서 콧바람 좀 쐬고 오면 신나기야하겠지. 근데 그렇게까지 무얼 배워서 올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느껴보기로 했다. 왕복 비행기삯은 육만 원이 조금 넘었으며 첫날 잡은 숙소는 이만 원짜리 게스트하우스였다. 배울 게 있다면 가격이 중요하겠는가. 으레 쓰이는 뜻과는 다른 의미겠지만… 도저히 멀리 갈 수는 없어서 경주로 가기로 했다. 십 년도 더 전에 선생님 따라서 수학여행으로 갔던 경주의 불국사와 첨성대는 지루함 투성이었으며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불국사 옆에서 팔던 찰보리빵인지 뭔지를 사갈까 말까 했던 기억뿐이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경주에 대한 추억과 점차 잊혀가는 경주에 대한 기억들은 경주를 선택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매일같이 슬퍼하고 외로워했다.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는 세상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도 아무도 몰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거리를 뜻하진 않지만 멀리 떠나고 싶었고, 숨고 싶었다. 작년과는 또 다른 우울이 찾아온 듯 싶었다. 매일같이 쓰는 일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울적한 글 밖에 쓸 수 없는 내가 싫었고, 남들 앞에서 내 우울을 가벼이 여기는 척하는 내가 싫었다.

나도 이제 나에게 내 시간을 건네주고 싶었다. 나에게 투자하고, 나를 사랑하면서. 뭐든지 간에 하나쯤은 미래에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교수님은 우리에게 인풋만큼 아웃풋이 나오지 않으니 가능한 많이 투자하라고, 그리고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다.

첫날 숙소를 제외하고선 어떤 일정도 정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잘 놀지 못하는 나는 놀거리를, 숙소를 정해버리면 그거에 맞춰 움직임과 동시에 그것들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숙소는 돌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면서 돌아가야만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내보고 만족스러웠으면 만족스러웠다고, 내 취향이 아니었으면 아니었다고 글로 쓰면 된다. 그리고 다음에 갈 여행에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 끝끝내 경주가 재미없으면 다른 도시로 옮기면 된다. 실로 간단하다.

내게 있어서 이번 여행은 멀리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비행飛行이며, 혼자서 하는 객기에 가까운 일탈과도 같은 비행非行이기도 하다.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는 스물네 살의 비행은 앞으로 스스로에 대한 생각의 변환점이 될 것이다. 아침 일곱 시 비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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