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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비행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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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옂 May 18. 2024

비행, 경주는 기억으로 덧칠하고

다섯 시 알람이 나를 깨웠다. 일곱 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매일 같이 늦게 자던 탓에 어젯밤 늦게 잠이 들어 간신히 두 시간을 좀 더 잤다. 눈을 뜨자마자 가지 말까 싶었다. 간신히 일어나 나갈 채비를 마쳤다. 필요한 것만 넣은 가방이 무거웠다.

항상 비행기는 출발이 늦다. 일곱 시 비행기는 일곱 시 이십 분에 출발했다. 제주공항만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제시간에 출발하는 적이 없다. 보통 이십 분 정도씩 늦는 것 같다. 그만큼 여유로우라는 뜻이겠지. 항상 이십 분 만큼이나 여유를 갖고 살자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대구는 생각보다 추웠으나 하늘은 맑았다. 대구의 버스 정류장은 ‘~~건너’가 많았는데, 예를 들어 정류장 이름이 동대구역이라면 맞은편 정류장 이름은 동대구역건너 같은 식이다. 이름도 귀엽고 반대로 탈 일이 적겠거니 싶었다. 새로 온 도시는 정류장 이름조차 새롭다. 좋은 경험이다. 버스비는 천오백 원이었는데, 천백오십 원의 제주도는 정말 싼 편이었구나를 느꼈다. 오자마자 가게 돼 아쉽지만 언제 올지 모를 대구를 위해 눈에 담아두기로 했다.



세 시간이 걸려 도착한 경주는 경주답게 건물 지붕에 기왓장이 즐비했다. 안내판엔 첨성대가 그려져 있으며, 어디를 가도 불국사에 대한 표지판이 있었다. 그래 제주도도 어디에 가도 귤 그림이 그려져 있지 하면서 걸었다. 지역의 특색이 있는 건 좋은 거지. 청주는 아무것도 없어서 녹색도시라는 슬로건 아래에 초록색 나무나 몇 개 그려놓을 뿐이다.

경주에서 첫 끼로 맥모닝을 먹었는데 부지런한 사람만의 전유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어디에 갈지를 생각했다. 불국사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베이컨이 들어간 맥머핀을 으적으적 씹으며 그래 나 여기 가려고 경주 왔었지 하고선 불국사로 가는 버스 노선을 알아보았다.



십일 번 버스를 타고 불국사에 가던 도중 다음 정류장에 국립경주박물관이 보였다. 십 초 정도 고민한 후에 벨을 눌렀고 그 길로 내려 박물관에 가게 되었다. 혼자 가는 여행의 묘미지 하며 박물관으로 향했다. 뭐 하는 곳인지도 모르는 박물관은 입장료도 없이 들여보내 주었다. 명실상부 천년 신라 경주였다. 입장료 하나 없는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의 유물들이 가득했다.



의도치 않은 이론 공부를 마치고 다시 불국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첨성대는 어디 붙어있는지 구경이나 해보자 하고 지도를 켰는데 도보로 이십 분 거리에 있었다. 어쩌겠는가.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국의 피사의사탑 첨성대는 정말 그게 다였다. 감동이나 웅장함은커녕 돌덩이 몇 개로 지은 기둥 같았다. 사진이나 한 장 찍고 돌아왔다.​​

2013년과 2024년

정말 불국사로 가는 버스를 탔고, 진짜로 출발했다. 사람들이 잘 안 타는 버스인지 정류장들을 두세 개는 뛰어넘고 달렸다. 택시가 부럽지 않은 버스를 타고 불국사에 도착. 십 분을 걸어 올라가야 대웅전에 갈 수 있었다. 올라가는 길에 갈증이 나서 자판기에 갔는데 캔으로 된 포카리스웨트가 천오백 원이나 하고 있었다. 차라리 목이 말라 죽고 말지 하는 마음으로 올라갔는데 웬 약수터가 보였다. 바가지 있고 흐르는 물 있는 그런 약수터. 원효대사도 해골물 마시고 멀쩡했는데 이 샘물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두 모금 정도 마셨다. 물도 맑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제주도에 사는 나는 제주도 바닷가를 놀러 가면 그게 여행일까, 경주에 사는 사람들은 불국사에 방문하는 걸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길이 설레지 않고 익숙해지는 순간 여행이 아니라는 친구의 말을 떠올리며 여행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했다. 낯선 길에 대한 설렘... 그럼 매일이 낯선 난 인생이 여행일 것이다.

불국사 대웅전과 다보탑, 그리고 석가탑은 절보단 관광지의 느낌에 가까웠다. 월요일 대낮임에도 놀러 온 사람들로 붐비는 불국사는 정신 사나울 뿐이었다. 절이 주는 평화로움은 커녕 도떼기시장과 다를 게 없었다. 사진 찍기 바빴으며 대웅전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은 많아 봐야 둘셋이었다. 본질을 잃은 불국사는 더 이상 절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쉴 겸 앉아있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사진을 찍어달라길래 몇 장 찍어드렸다. 이참에 나도 찍어달라고 할 심산으로 다 찍었다고 하자마자 돌아서서 결국 찍어달라고 하지 못했다. 대웅전 아래에는 찰보리빵 가게가 있었다. 십 년 전 그 위치에서 똑같이 장사하고 계셨는데 낱개로도 팔까 싶은 마음에 갔던 가게는 개당 천 원에도 팔고 있었다. 한 개 사서 까먹었다. 별 맛은 없었다. 십 년 전 갈증을 이제야 해결하는 기분이었다.​​


또 십년이 지나고 불국사에 와도 변함없이 찰보리빵을 팔고 있을까, 주인아주머니는 그때도 천 원짜리 손님은 대충 받아줄까, 대웅전에는 그때도 사람이 그득할까, 다보탑과 석가탑은 그때도 포토존으로 쓰이고 있을까, 그때는 누구랑 올까, 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재밌다.

불국사도 다 보고 오갈 데 없는 길거리 벤치에 앉아서 어디에 갈지 고민했다. 바로 옆에 석굴암에 가야지. 버스가 삼십 분이 남았는데 여기까지 와서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버스로 십이 분 걸리는 석굴암은 걸어서는 두 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다. 게다가 석굴암은 사진 촬영도 안 돼서 더욱 보기 힘들기도 했고. 조금 더 솔직해지면 석굴암이 아니면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버스를 삼십 분 동안이나 기다려 석굴암에 도착했다. 제주도의 516도로 만큼이나 굽어진 길은 281번 버스를 탈 때만큼이나 어지러웠다.

석굴암에 도착하니 또 십오 분을 걸어 올라가야 한단다. 하루 종일 걸을 일만 있구나 싶었다. 노력 없이 얻는 결과는 의미 없음을 이젠 알기에 또 묵묵히 올라갔다. 가방이 무거워서 행군할 때가 생각났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가는 나는 생판 다른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석굴암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별 게 없었다. 기대한 만큼 실망스러웠다. 그냥 크기가 큰 돌부처였고, 그런 돌부처는 아까 박물관에서도 실컷 봤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도 석굴암에 갔기에 아쉬워할 수 있는 것이고, 또 별로면 별로였다고 일기에 적을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경주에… 언제 올 진 모르지만 다음에 올 경주에선 안 가면 된다. 같이 간 사람도 없어 미안해할 일도 없었다. 이런 마음으로 또 십오 분을 걸어 내려갔다.

호준이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시간이 맞아 함께 저녁을 먹었다. 경주에서 만나는 대학 친구... 참 신기했다. 하루 종일 다섯 마디도 안 했을 텐데, 덕분에 실컷 이야기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혼자 돌아다니는 탓에 이런 시간도 즐겁다. 황리단길은 참으로 경주다웠다. 모든 건물이 낮고, 기와집 같은 건물들은 외국인이 보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기와집이 너무 많아 과하다 싶다가도 경주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어디가 이런 거리를 조성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이천 원 할인받은 만팔천 원 짜리 게스트하우스는 혼자 자기에 충분했다. 사장님도 친절했으며, 다음 날 조식도 있었다. 따뜻한 물도 나왔고 전기장판도 있었다. 처음 자보는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추억이 퍽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혼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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