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관행 0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옂 Jul 31. 2024

관행, 마음껏 슬퍼하기 위하여


해가 길어졌다. 옷차림이 얇아졌다. 부지런히도 찾아오는 봄은 온데간데없고, 순식간에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것만 같다. 지난 몇 개월간 꾸준히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자 끝도 없이 다짐했건만, 지독하리만큼 지겨운 권태 속에서 또 하루를 보낸다. 

벌써 네 달도 지난 비행 이후로 나는 뭘 배워왔을까. 질문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지만 분명히 배워온 건 있었을테니까. 대릉원 앞에서 김밥을 먹는 법? 혼자 정육점에 가서 육사시미 일 인분어치 주문하는 법? 유명 관광지에 가서 한 명이라고 하는 법? 전부 맞다. 내가 배운 건 혼자서도 잘해요였다. 홀로서기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 한참 아랫단계인 ‘혼자서도 잘해요’이다.

남들이 다 하는 그것 말이다. 혼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흘동안 굶을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된 여행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뭐라도 하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잘 하는 건 기대도 안했다. 울지나 않았으면 했다.

비행을 좋게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동궁과월지가 얼마나 예뻤든, 글을 얼마나 잘 썼든 못 썼든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제 혼자서 하는 어떤 것도 겁이 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즐거울 따름이다. 스물네 살이나 쳐먹고 이제야 깨닫는 게 우스울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다. 외로움을 활용할 수 있는 법에 대해 알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얼마 전, 주변인들에게 슬픔과 우울의 차이를 물어보곤 했다. 결국 돌아오는 대답은 그렇다 할 차이는 없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취미를 가져라, 무언가에 미쳐봐라 같은 이야기였다. 그래, 난 뭐에 미쳐 있을까. 내가 미친 건 나의 정신건강 뿐이다.

슬픈 건 감정이고, 우울한 건 상태이다. 감정은 언젠간 사라지지만 상태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울한 건 대충 뭔지 알 것 같고 해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우울해결법은 이 년간 고통스러웠던 과정의 산물이다.

그럼 슬픔은?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는가. 슬픔을 벗어나기 위해 미뤄봤자 결국 돌아오는 건 이자가 달린 슬픔 뿐이다. 그것도 아주 높은 금리인. 편법이나 뒷구멍 같은 건 없었다. 한없이 슬퍼하는 것 말곤 하릴없다. 

핑계인 걸 알지만 제주도에서의 나는 슬플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학교를 가고 사람을 만난다. 과제를 해야 하고 알바도 간다. 슬픔을 미뤄봤자 돌아오는 건 이자가 잔뜩 붙은 슬픔 뿐이지, 결코 슬픔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는다.

마음껏 슬퍼하고 싶었다. 무책임하게 슬퍼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총량을 채우다 보면 슬픔은 사라지고 무無의 감정만 남지 않을까 했다. 언젠가 찾아올 더 큰 슬픔에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냥 내가 가진 진심을 다해 슬퍼하기로 했다.

거의 도피에 가까운 이번 여행은 감정에서 도망치는 것인지, 감정을 위해 도망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아마 여행이 끝날 때까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여행지가 어디인지조차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낯선 곳이면 충분했다. 여행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에 숨겨진 도피일 뿐이다. 난 이번 여행을 여행이라고 부르는 행위 조차 꺼려질 수준이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아무도 읽지 않아도 된다. 비행 땐 부끄럽지 않을 글이면 충분하다고 했는데, 이번 여행기는 부끄러울 것 같다. 추하고 못날 것만 같다. 오히려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바람이 몰아칠때 다 부러져가는 삼단 우산을 들고 어떻게든 안 맞으려고 했던 지난 날들이었다. 자동차를 부러워했고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다. 그리곤 인정하지 않았다. 이 정도 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맞아도 하나도 안 젖는다고. 머리카락은, 옷가지는 다 젖어가는데 구태여 아닌 척 우겨왔다. 그렇게 쌓여온 슬픔만 수두룩 빽빽.

차츰차츰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한꺼번에 끌어올려야 했다. 자꾸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었다. 내 얘기는 아닌데- 하면서 은근슬쩍 내 얘기를 꺼내는 내 자신이 싫었다. 또 그렇게 가벼운 사람으로 남긴 싫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젖는 것 뿐이다. 비를 맞는 건지, 씻고 나와서 닦지 않은 건지 모를만큼. 그런 다음에 지독한 독감에 걸릴지라도, 링겔의 가격이 우산의 가격보다 열 배나 비싼 가격을 받아도. 평생 살면서 비 한 번 안 맞고 살 순 없다는 게 생각이었다. 언젠간 독감에 걸릴 필요가 있었다.

하나도 안 슬픈 척 하면서 표정은 나라를 잃은 표정이었고, 밥을 잘 먹고 다니는 척 하면서 빵쪼가리로 이틀을 보낸다. 어찌 보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제일 친한 친구들에겐 끝도 없이 푸념을 읊어놓지만, 겉으로 보기엔 허허실실 웃는 것. 거의 재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여행부터 난 참 여행을 여행답지 못하게 떠난다는 느낌이다. 먼 여행지까지 가서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거나, 수도 없이 많은 감성 카페를 옆에 두고 스타벅스를 가는 것. 기념품으로 중고책이나 사오는 것들 전부 다 여행답지 못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만족스러웠는데,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무슨 그런 여행을 가냐고 하더라.

근데 이게 다 관행이 아닐까, 여행지에선 이렇게 해야 한다. 사진 오백만장을 찍고 오십만장을 올려야 한다. 힐링 같은 단어를 어디 적당히 끼워 넣은 다음에 잔뜩 행복해야 한다. 나만 아는 관광지여야 한다. 관광객이 많으면 안된다. 현지 맛집이어야 한다. 여행 왔으니까 돈을 흥청망청 써야 한다. 난 그런 관행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처럼 가는 여행 또한 여행일 것이고, 만족만 한다면 성공적인 여행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유명 관광지보단 그냥 사람 사는 동네가 좋다.

관광경영학도의 여행.. 줄여서 관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