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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비행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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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옂 May 18. 2024

비행, 우리는 너무 쉽게 행복을

며칠 만에 잠을 푹 잤다. 방이 어두운 덕에 잘 잘 수 있었다. 조명도 어두웠거니와 커튼도 두꺼워 해가 뜬 줄도 모르고 잤다. 싸구려 모텔방에서 머리를 말렸다. 드라이기의 문제인지 머리가 푸석했다. 상관없었다. 이백사십 만의 대구 시민들은 내 머리카락에 아무도 관심이 없을 테니까.

마지막 날이다. 길 것만 같았던 여행도 끝나간다. 과연 이런 것들도 여행이냐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낯선 곳에 대한 설렘을 안고 있으니 여행이 맞다. 내가 여행이라고 하면 여행이 되는 것이다. 마음가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조식을 제공하지 않는 러브모텔… 아니 숙소에서 나와 스타벅스로 향했다. 나는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고 싶었고, 기프티콘은 가난한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치킨샌드위치랑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샌드위치와 함께 칼과 포크를 같이 줘서 칼을 써서 먹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들고 먹으면 없어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한 번 잘라서 먹었는데 불편해서 들고 먹었다. 실제로 난 없는 사람이기도 해서 상관없었다.

어제 못 간 더현대를 가야겠다. 전화해 보니 물품 보관함이 있단다. 듣던 중 어떤 것보다도 반가운 소리다. 나흘 내내 가방이 무겁다고 쓴 것 같은데, 그럴 만한 게 정말 무거웠다. 벽돌만 한 노트북과 며칠 짜리 옷가지를 쑤셔넣은 가방은 그야말로 짐덩어리였다. 이참에 더현대에 가서 갖고 온 짐들을 전부 때려박고 돌아다녀야겠다 싶었다.

길을 걷다가 한약 냄새가 나서 둘러보니 주변에 한약방이 세 개가 있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참 좋았다. 나는 한약 냄새가 좋다. 맡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고기 냄새나 향수 냄새는 오랫동안 맡기 힘들 것이다. ‘지속 가능한’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는 요즘 지속 가능한 향기 또한 중요하구나 싶었다. 저 멀리 낡은 간판에 대구약령시라는 글자가 쓰여있었다. 광역시의 옛말인가 싶어 찾아보니 한약재를 파는 시장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구나, 여기가 한약 골목이었던 것이다. 새로운 단어를 하나 알아간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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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영이를 만났다. 어떻게 대구까지 가서, 그것도 더현대에서 가영이를 만날 수 있나 싶었다. 한 달 만에 만난 가영이는 그대로였다. 말차라떼를 얻어먹었다. 내 생각이 나서 샀다고 했다. 참 고마웠다. 갈증이 나던 참이었는데 마침맞았다. 난 아무것도 줄 게 없었다. 미안했다. 십 분 정도 근황을 나눴던 것 같다. 반가웠다며 개강 때 보자며 헤어졌다. 경주에서도 대구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게 신기했다. 저 멀리 연고도 없는 땅에서 만날 수가 있을까. 먼 훗날 이번 비행의 기억들을 구태여 톺아보지 않아도 추억의 한구석에 조용히 남아있을 것이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여행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몇백 킬로미터나 되는 경상도까지 와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자니 한심할 따름이다. 난 무얼 배우려고 여기에 오지 않았다. 답은커녕 질문도 놓고 온 여행에서 깨달음을 찾아내고 싶지 않았다. 알게 된 만큼 알고, 가져갈 수 있게 된 것만 가져가고 싶었다. 이런 시간들 속에서 겪었던 순간들은 의도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기억되곤 한다. 여행에 와서 하루에 세 시간씩이나 글이나 썼던 기억으로 남을 수도, 평생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혼자라는 상황에서 원하는 걸 다 했던 첫 번째 순간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관점의 차이일 것이다.

더현대 대구는 생각보다 별 게 없었다. 볼 건 많았지만 한 시간을 넘길 만큼의 재미는 없었다. 다섯 시간 동안 박혀 있을 예정이었던 나에게는 큰 사고였다. 더 이상 할 게 없다.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산을 갖고 오지 않은 나는 더현대에 갇혀있는 것 말고는 하릴없었다. 다시 한번 한 층씩 올라갔다. 괜스레 여성복 매장도 한 번 훑어보고, 가구들도 구경했다.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옥상에 올라가 바깥에 나가보니 비가 그쳐 이때다 싶어 밖으로 나갔다. 동성로까진 십 분이 걸렸다.

동성로에 가는 길에 지하상가를 둘러보았다. 어제 급하게 다니느라 통로로밖에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온 김에 구경하고 가야지. 우리 동네 지하상가랑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 봐야지. 크게 다를 바 없는 지하상가에는 닭강정을 팔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때웠던 나는 배가 고파졌다. 점심도 저녁도 아닌 세 시에 닭강정을 사서 길에 나앉아 물도 없이 먹었다. 그냥 닭강정 맛이었다. 차갑게 식은 닭강정은 맛이 없었다.

어제에 이어 이틀 연속으로 온 동성로는 쓸데없이 넓었다. ‘쓸데없다’는 표현은 크고 넓을 때만 사용하는 것 같다. 쓸데없이 작거나 쓸데없이 좁다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우리는 필요도 없이 크고 좋은 것만 찾아간다. 더 큰 집, 더 좋은 핸드폰 같은 것들 말이다. 막상 다 가져도 별것도 안 하면서. 욕심은 끝도 없다.

할 게 없어 공항에 빨리 갔다. 공항에 빨리 간 난 또 뭘 하겠는가. 노트북을 꺼내 일기를 적었다. 면세점도 없는 대구공항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옆에 있는 아주머니의 통화 소리가 시끄러웠다. 늙으면 청력이 약해진다고 했다. 배려심이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신체적 변화가 온다고 했다. 그 나이까지 되지 못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아주머니 통화의 마무리는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인사였다. 누구에게 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나 보다.

여행인지 방황인지 모를 시간들을 보냈다. 맛있는 칼국수를 먹기도 했으며, 대구에서는 길을 잃어 세 번이나 같은 장소를 돌았다. 덕분에 주변의 지형지물은 잘 알게 되었다. 세 번째 바퀴 땐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했다. 두 번은 멀쩡하게 지나갔으면서. 길을 잃은 건 비단 도로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길도 잘 못 찾아서 같은 장소를 몇 번이고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는 청춘은 낭비됨으로써 완성된다는 말을 누구에게 했던 적이 있다. 그런게 어디있냐. 괜히 멋진 척한다고 그럴듯하게 말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평생을 열심히 사는 방법에 대해 배운다. 교과서엔 바른 삶을 죽 나열해 놓고, 자기개발서에는 성공 신화 스토리들이 우후죽순 적혀있다. 평생을 그런 것만 배우는 우리는 허비하거나 흥청망청 쓰는 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한다. 남들의 일탈을 곁눈질로 보고 어쭙잖게 따라 할 뿐이다. 넘어져 봐야 일어나는 법도 배울 수 있다. 낭비할 줄도 알아야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운다. 삶도 마찬가지다. 청춘이 가지는 의미의 마지막은 그렇다. 젊은 우리는 그런 걸 배워본 적도, 배우려고 해본 적도 없으니까.

우리는 너무 힘들게 살아간다. 각자만의 슬픔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지만 다들 그걸 숨기기에 바쁘다. 약한 모습은 숨기며 잘난 모습만 남들에게 보여주곤 한다.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나약하다며 비난한다. 실은 본인도 별반 다를 것도 없으면서. 나는 우리 세대가 슬퍼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 몇 년 전부터 서점 베스트셀러 매대에 올라와 있는 ‘오늘은 이만 쉴게요’ 같은 책들을, 누워서 마카롱 두어개 주워 먹는 일러스트를 그려놓고 ‘나는 대충 살기로 했다’ 같은 양산형 에세이 같은 책들의 내용을 운운하는 게 아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방향도 없이 방황하면서 스스로를 잃어가곤 한다.

감성 운운하면서 예쁜 말로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울 줄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슬퍼하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비행을 시작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슬퍼서 도망쳤다. 누군가는 나보고 혼자 가는 여행이 멋지다고 했지만, 어디에서도 두 발로 땅을 딛고 서 있을 수가 없어서 도망친 것이다.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슬퍼할 줄 아는 것만큼은 더 이상 슬프지 않은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다 보여주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언젠가부터 너무나 각박해져 버린 우리의 슬픔 속에서 당신과 내가 해야될 숙제는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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