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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비행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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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옂 May 18. 2024

비행, 사후비행검토

비행이 끝났다. 집에 돌아왔다. 갖고 갔던 짐을 풀었다. 빨래통이 금세 차올랐다. 택배 박스를 뜯었다. 손을 씻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이제 뭘 하지. 글로서의 비행을 마무리해야지.

수험생부터 시작해 사 년을 넘게 생각해오던 비행이었다. 이젠 비행이라는 단어도 민망하니까 대충 여행으로 얼버무려야겠다. 마음 같아선 전국팔도를 기약 없이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사는 게 마음대로 되나. 썩 만족스러웠다.

처음 계획했던 보름에 비해 턱없이 짧은 나흘이었지만 생각보다 피곤했던 여행에서 보름은커녕, 일주일도 간신히 여행하겠다 싶었다. 체력은 국력이다…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군.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느끼고서부턴 새로운 눈이 뜨인 기분이었다. 거창하게 알을 깨고 나온다기보단, 세상을 대하는 다른 시야를 지니게 된 느낌. 작은 성취감 같은 감정에 가까웠다. 꼭 무얼 이루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구나- 싶다가도 정의를 내리기에 따라 이번 일도 이뤘다고 볼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러면서 느꼈던 당연한 생각들은, 다음엔 어디 가지 하는 생각이었다. 이번의 비행을 발판 삼아 다음에 갈 여행에 대한 이름과 여행지, 기간과 시기 같은 걸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여행에 이름을 붙이는 게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 ‘삼박사일짜리 경주와 대구 여행’ 보단 ‘비행’이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사실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난 비행이라는 단어가 만족스럽다. 중의적 표현도 좋고, 비행을 마쳤다는 표현도 좋다.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사후비행검토니까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생각해 봐야지. 본질을 잊지 말자. 본질... 좋았던 건 당연하게도 신경 쓸 것도, 책임질 것도 없는 자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 중간에 일정을 바꾸거나 미뤄도, 예약한 숙소가 개떡같아도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쏟을 수 있었다는 것. 그야말로 나만의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쉬웠던 건 정보는커녕, 하고 싶었던 것도 없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는 것과 가방이 무거웠던 것. 어디를 갈지는 몰라도 뭘 할지 정도는 간단하게 생각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방은 나흘 내내 무거워했으니까...

재밌었다. 이게 내 비행의 요약이다. 여행을 가게 된 계기가 어떻고, 가서 뭘 했고 뭘 느꼈고... 결국 줄이고 줄이면 재밌었다는 게 결론이다. 이만 자 가까이 되는 비행이었지만 네 글자로도 줄일 수 있다. 이것 또한 재밌다.

세상엔 재밌는 일 투성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욕심에, 누릴 수 있는 재미는 뒤로한 채로 누리고 싶은 욕심만 가득했던 지난 시간들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만, 안분지족 안빈낙도. 둘 다 분수를 지키라는 뜻을 가진 성어들. 가난과 주제 파악. 뜯어보면 슬픈 뜻이지만 긍정적인 의미만 수용하기.

세상엔 행복할 수 있을 방법들이 수도 없이 많을 테니까 앞으로 행복을 찾아 노력하는 데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다른 곳에 노력을 쏟기 바빠서 행복 같은 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행복 또한 마찬가지로 노력해야겠구나 싶었다.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얘기다.

난 언제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을까? 분명 어릴 땐 글 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 없었는데. 처음에는 단순히 기록하기 위함이었고, 시간이 지나서는 우울함의 발로였다. 나중에는 발악에 가까운 발버둥이었다. 나 좀 봐주세요.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까. 근데 내 우울함은 끝도 없었으니까. 어디라도 토해내야만 했다.

비행을 읽지 않아서 아쉽기는커녕, 읽어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 옳다. 지극히 개인적인 스토리,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지는 문체, 끝도 없이 긴 분량.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면 가치가 없고, 남들이 내게 원하는 글을 쓰자- 는 마음으로 비행을 시작한 게 아니니까. 그냥 다른 방식으로의 기록이었다.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사가는 방식의 기록도 좋지만, 그냥 새로운 시도.

본질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 여행을 포함해서, 왜 글을 쓰는지, 왜 이걸 시작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이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인지와 같은 아주 간단한 본질 말이다.

답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지만 질문은 하나 쥐고 돌아온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선택과 집중.

온종일 내렸던 비가 그쳤다. 창문을 열어본다. 나흘간 퀘퀘묵은 방 안의 공기를 환기한다. 이참에 내 생각과 마음도 같이. 도롯가에선 젖은 아스팔트 비린내와 흙냄새가 올라온다. 별은 커녕 달도 보이질 않는다. 빨래를 돌렸다. 뉴스를 십 분쯤 보다 껐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렸다. 오늘은 곤히 잠들겠군. 전등을 끄고 눈을 감았다. 내일은 뭘 하면서 살아볼까. 어떤 시간들로 나를 채워갈까. 나를 어떻게 사랑해 볼까. 어떤 사람이 될까. 앞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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