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싶어도 끝내 검은 죽음으로 스러지는 존재여.

영화 <석류의 빛깔>

by 그린

한 편의 시였다.

시퀀스의 유연한 연결보다는

뿔뿔이 흩어진 파편이

한 편의 시를 써냈다.




어린 시절, 그는 소리와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감각하고 구성한다. 반면, 어른들의 세계는 마주할수록 회의감이 든다. 깊은 곳까지 엿보기도 하고 명확한 자극도 받지만, 자꾸만 믿음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 소년은 세계와 어긋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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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랑은 불타오른다. 석류의 빛깔처럼 붉다. 인생에 단 한 번뿐인 혼인이라는 의식을 올리고, 탄생의 축복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기쁨은 곧 희미해지고, 사랑의 감정은 휘발된다. 뜨겁게 타올라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깨닫는다. 영원한 것은 없구나. 우린 죽음으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구나. 아무리 의미를 찾고, 무상감에서 벗어나려 해도 결국 그러한 사유조차 죽음으로 향하는 길일뿐이다. 인간의 숙명이로구나. 그렇다면 죽고 싶다. 생을 마치고 싶다. 새로운 욕망이 생긴다. 삶을 끝내고 싶을 정도로, 생이 지쳐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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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를 버리고 수도원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의식이 반복되며, 육체는 정결을 향해 간다. 그럼에도 영혼은 끝내 평안을 얻지 못한다. 씻고 또 씻어내도 순결에 도달할 수 없다. 대주교조차 죽음에 무너진다. 죽음은 신앙까지도 초월한 절대적인 힘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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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가지 진리를 마주한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죽음을 이긴 유일신.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와 죽음을 이기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감당한 존재. 그 앞에서 인간의 한계는 더욱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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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이후에도 속세로 나아가는 것은 두렵다. 창문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바라보는 것조차 힘겹다. 눈을 가린 채 살고 싶어질 만큼, 세상은 여전하다. 결국 죽음을 택한다. 죽음 앞에서 그는 세상을 노래한다. 그는 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날갯짓하며 날아오르고 싶었지만, 닭처럼 푸드덕거릴 뿐이었다. 평생 하얘지고 싶었으나, 나의 여생은 어둡고 무상할 뿐이었구다.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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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의 빛깔은 붉다.

영화를 뒤덮는 이 색은 욕망, 사랑, 삶, 죽음이

공유하는 단일한 본질을 상징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주어진 색.

인간이 가장 강하게 느끼는

심장의 색이자 피의 색, 감정의 색이다.


붉은색이 진해지면 어두움에 도달한다.

죽음, 소멸, 그리고 무상의 색이다.


나의 사랑은 불타오르지만

결국 검은 옷을 입고 말 거예요.


정반대에는 정결과 구원의 색이 있다.

수도원의 의식, 순례, 몸을 씻겨내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흰색은

인간이 도달하고 싶은 이상적인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닿으려야 닿을 수 없다.

인간의 삶은 석류의 빛깔의 선 위에서 움직일 뿐,

정결과 구원은 도달 불가능한 절대성에 가깝다.


하얗고 싶었으나, 결국 검정으로 스러지는,

구원을 동경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스러지는 존재.


영화의 모든 상징은

시인의 내면을 설명하는 문화적 언어다.

확실한 건 모두가 고요하고 정적인 사유는 아니었다.

몹시 혼잡하고, 끈적하고, 감정이 요동친다.


그의 삶은 조용한 묵상이 아니라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흔들렸다.




삶은 석류의 빛깔 위를 흘러갈 뿐,

하얗고 싶어도 끝내 검은 죽음으로 스러지는 존재여.

<석류의 빛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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