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회복, 초록색 치유

영화 <오늘의 카레> <리틀 포레스트>

by 그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오늘의 카레>를 보았다.


전반적으로 촘촘해서

깊게 몰입하기 좋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였다.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다.


두 작품은 결이 다르다.

하나는 사람의 온기 속에서 노랗게 데워지고,

다른 하나는 숲의 고요 속에서 천천히 치유된다.

그러나 결국 둘 다

회복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겹쳐졌다.


그래서 두 영화를 나란히 적어보았다.

노란색 회복과 초록색 치유.

각기 다른 색과 온도,

서로 다른 회복의 방식이 만들어내는

두 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만나보시라.




노란색 회복, 초록색 치유

1) 향수의 온도차

이슬이 이진을 찾아오며 영화는 시작된다. 이진이 살고 있는 전주는 유난히 따뜻한 도시다. 이진의 친구들은 이슬을 기꺼이 맞아주지만, 이슬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툴툴댄다. 둘은 배다른 자매다. 이슬의 어머니와 이진의 아버지가 재혼하며 가족이 되었고, 일주일 먼저 태어난 이슬은 본인이 언니라고 우긴다.

전주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두 사람은 부딪히기도 하고, 다시 안아주기도 한다. 정반대의 결핍을 지닌 두 사람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천천히 균형을 찾아가고, 특히 이슬의 회복에는 이진의 친구들이 큰 역할을 한다. 묵묵히 바라봐 주고, 뒤에서 따라오고, 웃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 그 온기가 이슬의 마음을 녹인다.

영화 속 전주는 누군가의 고향이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결이 촘촘한 도시에 가깝다. 도시의 사람들 사이에서 이슬도, 이진도 서서히 자신을 회복해간다. 카레 냄새는 이들의 관계를 감싸는 노란빛 공기로 흐른다.

전주라는 공간에는 감독이 품어온 향수가 깊이 스며 있고, 기억과 온기, 사람들의 미세한 뉘앙스가 겹겹이 쌓여 있다. 상처를 감싸는 따스함은 한 번에 솟구치지 않고 천천히 올라온다. 촘촘히 엮인 관계의 농도가 영화를 진하게 만들고, 서로의 삶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인물들 자체가 영화가 말하는 회복의 방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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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에서의 치유는 완전히 다른 리듬을 따른다. 회복은 자연의 질서와 계절의 흐름 속에서 일어난다. 음식을 만들고, 흙을 만지고,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작은 반복들이 모여 초록빛 숲의 리듬을 이룬다. 정서적 온도는 낮고 담백하다. 흥분도, 격정도 없이 내면의 고요함으로 걸어 들어간다. 감정의 잔물결이 오래 남으며, 혜원은 관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인다. 친구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혜원의 삶의 속도를 함께 걸어주는 정도의 존재로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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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노란색, 초록색 치유

치유는 관계의 영역이다. 이슬은 도기에게 사랑을 받고, 이진의 친구들과 어울리며 점점 신이 난다. 사람들과 스치고 엮이고 충돌하고 다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간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또렷해지고, 그 마음은 꿈으로 이어진다. 폭력적인 남자친구에게 쫓기듯 도망쳐 오던 날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된다.

따뜻한 사람들. 깊은 관계성. 식탁 위에서 나누는 회복의 순간들. 카레 냄새가 은근히 번진다. <오늘의 카레>의 치유는 노란색에 가깝다. 누군가 곁에, 앞에,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색.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데워지는 감정의 온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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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의 회복은 개인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혼자 음식을 만들고, 혼자 흙을 건드리고, 혼자 계절을 기다리며 마음을 다시 정리한다. 치유는 타인의 도움이나 온기에서 오지 않는다. 그저 자기 감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완성되는 과정일 뿐이다. 초록빛이 천천히 번져가듯, 내면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되는 방식. 흙냄새와 바람, 변화하는 계절의 결을 따라 스스로를 되살리는 회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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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보고 있자니 배가 고프다

카레는 향수 그 자체다. 한 도시가 가진 따뜻한 기억을 불러오는 상징이자,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어딘가에 간직한 '어린 시절 엄마의 카레'라는 공통된 기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사람마다 디테일은 다르겠지만, 그 기억은 대체로 따스하고 정겹다. <오늘의 카레>에서 카레는 '이곳에 오면 다시 살아진다'는 감정을 품고 있다. 사람의 삶, 관계의 농도, 도시의 온기를 노랗게 끓여 낸 하나의 감정적 표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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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에서 음식은 생존의 방식이다. 스스로의 삶을 지탱하는 기술이자, 마음을 재건하는 도구. 재료를 손질하고, 계절의 흐름을 기다리며 삶을 조금씩 다시 짜는 과정은 초록빛 숲이 건네는 자기 치유의 노동이다. 천천히 끓고, 서서히 익어가는 음식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혜원의 마음도 평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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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과 치유의 방식은 정말 다양하다.

어떤 형태이든,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세상이 각박하고 차갑고 어렵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따뜻함을 발견한다.


<오늘의 카레>는

그런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영화다.

자매의 케미와 친구들의 캐릭터성,

그리고 인물 사이를 잇는 촘촘한 연결이 인상 깊었다.

관계성으로 얻는 회복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인간은 관계로 인해 회복할 수 있다고

<오늘의 카레>는 보여준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다시 치유될 수 있다고

<리틀 포레스트>는 증명한다.


각자에게 맞는 방식이 있을 뿐,

정해진 하나의 답은 없다.

노란색의 회복이든, 초록빛의 치유든

우리는 하나를 택해 다시 살아가면 된다.


문득,

전주에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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