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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모든 것이 없어지고 가족만이 남았다

<미나리>

by 그린
기본 정보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5분

감독 정이삭

출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앨런 김, 노엘 조, 윌 패튼

시놉시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낯선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은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기 시작하고 엄마 '모니카'(한예리)도 다시 일자리를 찾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을 위해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함께 살기로 하고 가방 가득 고춧가루, 멸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를 담은 할머니가 도착한다. 의젓한 큰딸 '앤'(노엘 케이트 조)과 장난꾸러기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은 여느 그랜마같지 않은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데… 함께 있다면,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하루하루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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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소개(*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롤로그

1980년대, 미국 아칸소의 한 시골로 이사 온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는 트레일러 집에 정착하며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제이콥은 농장을 일구려 하고, 모니카는 아이들의 건강과 정착 문제로 대도시를 그리워하며 불안해한다.

전반부

농장을 일구려는 제이콥과 가족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모니카의 의견 차이는 갈등을 불러오고, 둘은 토네이도가 몰아치는 날 부부 싸움을 한다. 제이콥은 기계와 동료 폴을 구하며 농장의 기반을 다지고, 모니카와 함께 병아리 감별사 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다.

중반부

제이콥과 모니카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외할머니 순자를 모셔온다. 낯선 조부모와의 만남에 데이빗은 불편해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순자와 정을 쌓아간다. 한편, 제이콥의 농장은 물 부족 문제에 봉착하고, 생활용수를 밭으로 돌리며 집에는 물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후반부

순자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모니카는 지쳐간다. 하지만 데이빗의 심장병이 호전되고, 한인마트에서 제이콥의 농장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희망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나 집을 비운 사이 순자가 실수로 불을 내 저장고가 전소되고, 농장은 큰 피해를 입는다. 죄책감에 순자는 집을 떠나려 하지만, 아이들이 달려가 붙잡고, 가족은 한자리에 모여 함께 잠든다.

에필로그

제이콥과 모니카는 이혼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기로 한다. 제이콥은 다우징로드를 받아들이고, 수맥을 찾아 다시 농사를 시작한다. 제이콥이 아들 데이빗과 함께 순자가 심어둔 미나리를 발견하고 수확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인물 소개(*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이콥

미국에서 성공하고자 아칸소에 농장을 꾸린 한국인 이민자 아버지로,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립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이다.

모니카

가족의 안정과 아이들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현실적인 어머니로, 남편의 무모해 보이는 계획에 불안과 좌절을 겪는다.

데이빗

심장병을 앓고 있는 막내아들로, 한국 문화를 낯설어하는 어린 미국 아이지만 외할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성장을 경험한다.

책임감 있고 조용한 첫째 딸로, 가족 내에서 동생을 돌보고 부모의 갈등을 지켜보며 묵묵히 견딘다.

순자

한국에서 온 외할머니로 전통적인 여성상과 다른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녔으며, 데이빗과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가족의 중심이 된다.

과거 한국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독특한 성격의 이웃 농부로, 제이콥의 농사 파트너가 된다.




관람 포인트

엇갈린 아메리칸드림

제이콥과 모니카는 줄곧 의견 차이를 보인다. 제이콥은 농장을 성공적으로 일구어 정착하고자 한다. 그는 모든 것을 농장에 올인한다. 반면, 모니카는 아칸소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막내 데이빗의 심장병도 걱정되고, 대도시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 모니카는 화를 내기도 하지만, 제이콥을 믿어준다. 그러나 농장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생활용수를 밭으로 돌리며 집에는 물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 펼쳐진다. 여기에 엄마인 '순자'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모니카는 한계에 다다른다. 영화 막바지에 데이빗의 심장병이 호전되고, 농장은 계약을 따내는 긍정적인 조짐이 보이지만, 이미 모니카는 지칠 대로 지친 후였다. 더는 못하겠다는 모니카와 이제 좋아지는데 왜 그러냐는 제이콥의 감정이 맞부딪힌다. 목표는 같았으나, 다른 방향을 향하던 두 사람의 아메리칸드림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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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할머니

먼저 '할머니'라는 역할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다. 미국식 문화에 익숙한 손자 데이빗에게 순자는 낯설고 이상한 존재다. 이상한 한국말을 하고, 카드놀이와 프로레슬링을 좋아한다. 데이빗은 그런 순자가 할머니 같지 않다고 말하지만, 가족은 그 다름을 극복하며 점차 하나가 되어간다. 갈등이 많고 위태로운 가족 안에 순자는 처음에 낯선 변수로 등장하지만, 점차 관계를 붙들어주는 중심 축이 된다. 특히 데이빗과의 관계 회복 과정은 영화의 가장 따뜻한 장면이며, 감정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그녀의 품은 끝까지 집으로 남는다.

순자는 전통적인 어머니상과도 연결된다. 병든 몸을 이끌고 집안일을 돕다 불을 내고, 창고를 전소시키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녀는 조용히 떠나려 한다.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뒷모습을 보이는 장면은 이민자의 세대 간 희생과 침묵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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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를 좋아하세요?

미나리는 신경 쓰지 않아도 저절로 잘 자란다. 어디서든 뿌리를 내린다. 이는 낯선 미국 땅에 뿌리내리려는 이민자들의 삶과 닮아 있다. 말없이 심어두었던 미나리가 자라나는 장면은, 비록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가족의 삶이 그곳에 스며들고 있었다는 증거이자 희망의 은유다.

미나리는 순자가 가져온 소박하고 흔한 한국의 채소로, 순자의 인물성과 겹치며, 소박한 미국 내 이민 가정의 서사와도 연결된다. 순자의 마음이 깃든 미나리는 보살핌의 상징이며, 그것이 뿌리를 내려 자라는 장면에서 돌봄의 대물림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 바로 냇가에 심겨진 미나리였다. 이는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조차 남아있는 가족의 연대를 상징한다. 모든 것이 없어지고 미나리 만이 남았다. 모든 것이 없어지고 가족 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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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포인트

할머니 집 냄새가 난다

순자와 손주들의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맡던 그 냄새가 풍겨왔다. 미국과 이민이라는 특수한 배경을 그리고 있음에도,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순자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할머니'와는 조금 다르다. 욕도 하고, 화투를 치고, 프로레슬링을 본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엄마 아빠가 아이를 혼낼 수 없게 하고, 무서운 밤에는 손주 곁을 지켜준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났다. 은은하게 그립다가 눈물이 흘렀다. <미나리>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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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늘 곁에 있으니까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이 극단에 치달았을 때,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진다. 제이콥이 모든 걸 걸었던 농장의 결과물은 한순간에 재가 된다. 부부는 불타는 저장고 안으로 뛰어들어 무엇이라도 건져보려 애쓰지만, 이내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그날 밤, 가족은 모두 한자리에 누워 잠이 든다. 그리고 조용한 아침이 다시 밝아온다.

의지할 수 있는 것들이 모조리 무너진 뒤에, 끝내 곁에 남은 것은 가족뿐이었다. <미나리>가 말하는 핵심은 바로 그것이다. 모든 것이 사라져도, 가족은 늘 곁에 있다는 것. 그렇지만 우리는 사라질 것들만 바라보다가, 곁에 있는 가장 소중한 사람들을 놓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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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없어지고,

가족만이 남았다.

<미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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