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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셰린의 밴쉬 - 마틴 맥도나

Banshees of Inisherin (2022)

by 인문학애호가

때는 1923년, 장소는 내전이 한창인 아일랜드의 외딴 섬마을 이니셰린. 인구도 얼마되지 않아서 이웃에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고, 들어오는 사람도 나가는 사람도 얼마안되는 한마디로 살아도 사는게 아닌, 시간이 느리게느리게 가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온 두 주인공 중 한 명이 어느날 느닷없이 상대편과의 관계를 차단하면서 일이 시작됩니다. 이유는 "지긋지긋하다". 나 혼자 있게 그냥 둬라. 얼마 남지 않은 인생 더이상 어리석은 잡담이나 하면서 보내고 싶지 않다. 뭔가 후대에 남기고 싶다. 한쪽은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그 한 명을 놓치고 싶지 않아 끝까지 쫒아다니고, 절교를 선언한 반대쪽은 손가락 5개를 모두 직접 잘라 상대편 집의 문에 던져버릴 정도로 가혹한 경고의 메시지로 절교를 선언합니다. 절교가 가능할까요? 그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걸까요.


이 영화는 한 편으로는 코믹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블랙코미디 같기도 합니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매우 철학적인 영화이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는. 인생에 있어 인간 관계란 무엇일까요. 우리의 인생에서 한 편으로는 너무나 중요하고,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정말로 아무런 간섭없이 혼자지내고 싶기도 하고... 영화를 보다보면 두 주인공의 심리상태가 모두 공감이 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1923년이고, 촌구석 섬마을이니 TV가 있을리도 없고, 전화가 있을리도 없고, 오직 우편이 전부인 곳. 어떤 새로운 소식을 알려면 우편 외에는 답이 없는 곳. 매일매일이 똑같고, 시간은 느릿느릿 가며, 그 지루함에 모두 미쳐 돌아가는 상황. 반면에 매일매일 드라마틱한 일이 터지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며 지루할 틈이 없는 오늘날의 우리. 결국 본토에 자리를 잡은 주인공의 여동생이 그 지루한 곳에 있지말고, 자리 봐 두었으니 본토로 오라는 편지를 보내고, 주인공은 그냥 이니셰린에 머무는 것을 결정합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도대체 왜 살아가고 있는지.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 입니다. 밴쉬는 아일랜드의 여자 요정을 일컷는 말이고, "이니셰린의 밴쉬"는 절연을 고하고 손가락을 절단하는 주인공이 작곡하는 음악의 제목입니다만, 이니셰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일컷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영화는 완전한 아일랜드 영어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알아듣기가 거의 불가능하네요. 이렇게 발음이 희한하다니...


척박한 이니셰린을 보면서 느닷없이 든 생각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인생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남의 광대놀이에 바치고 있는가.

혹은, 남의 광대놀이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이 긴 인생을 슬기롭게 살아갈 방법을 찾을 것인가.

하루하루 값지고 보람있게 인생을 보내는 방법이 가능은 할 것인가.

연예인이나 셀럽의 가장 큰 역할은 우리가 우리의 인생이 어떻게 소리소문 없이 낭비되는지 인식 못하고 아무생각없이 살게 해주는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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