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loe (2009)
이 영화는 이집트 출신의 감독 "아톰 에고이안"의 작품입니다. 2009년도 작품입니다. 원래 이런 영화는 유명한 "Nine 1/2 Weeks"를 연출한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의 전문 분야인데, "아톰 에고이안" 감독이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다만 오리지널은 아니고 2003년도의 프랑스 영화 "나탈리"를 리메이크 한 것입니다.
두 작품의 배우를 대조해보면, 리암 니슨 - 제라르 드빠르디유, 줄리앤 무어 - 파니 아르당, 아만다 사이프리드 - 에마뉴엘 베아르 입니다. 부부의 역할은 헐리웃 캐스팅이 좋고, 콜걸 역할은 프랑스 캐스팅이 좋습니다.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클로이 스위니라는 콜걸의 캐릭터로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영화가 진행이 될수록 콜걸이라는 생각이 사라집니다. 반면 에마뉴엘 베아르는 영화 끝까지 짙은 화장에 퇴페적인 표정의 콜걸의 이미지를 유지합니다. 가장 중요한 캐서린(프랑스어로는 카트린느)역할은 줄리앤 무어가 훨씬 뛰어납니다. 나이를 먹을 수록 멋있어지는 남편에 비하여 거울을 볼 때마다 늙어감이 두드러지는 자신의 외모에 절망하는 장년의 여인을 너무나 뛰어나게 연기를 합니다. 괜히 명배우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남편이 젊은 여성에게 조금만 친절하게 굴어도 심리적으로 불안함을 느끼는 장년의 여인이 클로이라는 콜걸을 시켜 남편을 유혹하게 하고, 남편이 과연 바람이 나는지 테스트를 해보려고 하는데, 도리어 콜걸의 속임수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가 모든 것이 결국 콜걸의 속임수였다는 것을 깨닫는 내용이 한 축이고, 콜걸이라는 안타까운 처지의 젊은 여인이 남자가 아닌 어머니뻘의 여인에게 애정을 느껴 동성애로 발전하는 내용이 또다른 한 축입니다.
원작에서 나탈리는 죽지 않지만, 클로이는 2층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이 영화에서 두 남자, 즉 리암 니슨과 그의 아들은 줄거리에 양념정도이고, 실은 캐서린과 클로이의 심리극이며, 사실 어떻게 보면 클로이 조차도 캐서린이 피해의식으로 만든 가상의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클로이에게는 캐서린도 일종의 희망사항 입니다. 자신에게 없는걸 가진 장년의 여인이 나의 어머니, 나의 여자친구이면 얼마나 좋을까하면서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클로이가 캐서린을 만나면서 캐서린의 남편과의 불륜을 거짓으로 꾸미고 있다는 사실은 관객이 쉽게 눈치 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캐서린은 클로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진실로 들립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즉, 내 남편이 바람을 핀다고 판단하는 자신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결국 자신이 만든 덫에 스스로 들어가 허우적거립니다. 또하나 클로이가 자신의 남편과 놀아난 장면에 대하여 그녀에 대한 질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이것은 자신이 시킨 것이기도 하지만, 캐서린 스스로도 클로이를 통하여 대리만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클로이와 동성애에 빠지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습니다.
어쨌든 바람기를 테스트하기 위한 그 덫은 영화 말미에 남편과 클로이가 만나 서로 처음 만난듯 서먹해하는 장면을 보면서 모두 사라집니다. 그러나 또다른 한 명, 즉 클로이는 그냥 끝낼 수 없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내것이 아닌걸 내것이라 생각했다가 그 욕망을 붙잡고자 아들마저 유혹하고 그럼에도 이미 상대편의 환상은 깨져있고, 자신은 범죄가가 될 예정이니 답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죽음을 택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플롯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 심리극 자체도 그렇게 깊이가 있지는 않지만, 영화 자체로는 꽤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카메라가 리암 니슨과 사랑을 나눴다고 클로이가 진술한 식물원으로 천천히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클로이와 리암 니슨이 진짜로 바람을 피웠고 그 둘이 캐서린 앞에서 서로 서먹해 한 것도 연기였다면 어땠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