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볼 - 마크 포스터

Monster's Ball (2001)

by 인문학애호가

이 작품은 2002년 아카데미에서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흑인 여배우("할리 베리")에게 여우주연상을 준 작품입니다. 그런데 여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여배우 중에 "물랑루즈"의 "니콜 키드만"이 있습니다. "물랑루즈"를 본 사람이라면 이렇게 노래까지 잘하고 연기도 잘했는데 여우 주연상을 흑인 여배우에게 줬다고 했을 것입니다만, "몬스터 볼"에서 "할리 베리"는 가난에 찌들고, 인종차별이 가득한 사회에게 흑인이 가지는 고뇌를 관객이 공감하게끔 하는 연기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물랑루즈"보다는 "몬스터 볼"이 심사위원들에게 더 깊은 의미를 주었을 것입니다.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인종차별"은 여전히 미국사회에서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몬스터 볼"은 사형 집행전에 사형수와 같이 하는 마지막 "파티"를 말합니다.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설탕"에 쩔어 뚱뚱한 아들을 하나 두고 있는 "레티시아 (할리 베리)"에게는 사형수인 남편이 있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다음날 사형이 집행될 예정인 남편과 마지막 면회를 합니다. 남편은 자신의 죄로 인한 이 결과에 절망하고 아들과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사형집행을 기다립니다. 이 사형수에게 사형을 집행할 교도관 "행크 (빌리 밥 손튼)"는 어머니가 일찍 자살했고, 폐암에 걸려 오늘내일 하는 노쇠한 아버지, 그리고 같이 교도관을 하고 있는 아들(히스 레저)과 한 집에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행크"는 인종차별 주의자이며, 아들은 그들과는 달리 흑인들과 친하게 잘 지냅니다.


이제 사형집행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사형수는 그림을 매우 잘 그려 사형집행전에 자신이 옥중에서 그렸던 모든 그림을 가족에게 전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교도관 "행크"와 그의 아들의 초상화를 마지막으로 그려 줍니다. 이제 사형 집행이 시작되고, 죄수를 "전기의자"가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가는데 아들이 죄수를 데리고 가다가 "사형집행"을 감당하지 못하고 토하고 맙니다. 사형이 끝나고 "행크"는 화장실에서 못난 아들을 패버립니다. 다음날 "행크"는 못난 아들을 집에서 나가라고 하고, 아들은 총을 들고 아버지를 협박하며 할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밀쳐버립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싫어하지만, 자신은 아버지를 사랑했다며 손에 쥔 총으로 자살을 해버립니다.


"사형수" 남편을 잃은 "레티시아"는 몰던 차가 고장이 나서 계속 직장에 지각을 하고, 결국 음식점 종업원 자리에서 쫒겨납니다. 그리고 가까스로 야간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이 곳에 "행크"가 들어와 "초코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한 잔 시키고 "레티시아"와 처음으로 만나게 됩니다. "레티시아"는 차에 아들을 태우고 집에 가다가 결국 차가 완전히 고장이 나고 아들과 걸어서 일하는 곳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나게 됩니다. 뚱뚱한 아들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옆을 지나가던 "행크" 덕분에 병원에 가지만 결국 사망하게 되고, 절망에 빠져 통곡하는 "레티시아"를 "행크"가 집에 데려다 줍니다.


"행크"는 이제 교도관을 그만 두고, 근처의 주유소를 구매하여 운영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조금씩 심경의 변화가 생깁니다. 동네의 흑인이 운영하는 카센타의 아들 둘을 그렇게 증오했는데, 왠일인지 더이상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걸어서 출퇴근 하는 "레티시아"를 자기의 차에 태워주고, 그러다가 친하게 되고, 그의 호의에 결국 "레티시아"도 마음을 열게 되고 관계를 갖게 됩니다. "행크"는 자살한 아들(히스 레저)이 몰던 트럭을 고쳐서 줍니다. 그런 그가 너무나 고마운 "레티시아"는 "행크"에게 멋진 모자를 하나 사서 전달하려고 "행크"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의 아버지에게서 심한 인종차별적인 험담을 듣고 뛰쳐 나갑니다. "행크"는 화가 나서 결국 아버지를 "요양원"에 넣어 버립니다. 이제 "레티시아"를 달래러 갑니다. 그녀는 집세를 내지 못해서 결국 집 밖으로 쫒겨나 있던 상태이고, 마침 나타난 "행크"와 같이 그의 집으로 갑니다. "행크"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간 뒤에 그녀는 그의 방에서 자신의 남편이 그려줬던 그와 그의 아들의 초상화를 보고 경악을 합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더이상의 선택지가 없습니다. 결국 "행크"를 받아들이며 영화가 끝이 납니다.


이렇게 이 영화는 인간성의 회복을 통한 인종차별의 극복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습니다. "레티시아"도 아들이 죽었고, "행크"도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둘 다 독신입니다. 피부색을 떠나서 둘이 마주한 인생의 험로에서 상대편을 이해하고 마음을 열며, 상대편의 외로움과 자신의 고독에서 느끼는 공감대가 어떻게 피부색의 차이를 극복하는지를 감독은 극단적인 요소 없이 절제된 표현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약간 심심하기도 합니다.

재미있게도 같은 해의 남우 주연상도 흑인인 "덴젤 워싱턴"이었습니다. 최초의 흑인 남우 주연상은 1964년에 "시드니 포이티어"가 받은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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